ABOUT ME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신작 및 기발표작 모아두는 곳임.

Today
Yesterday
Total
  • 재전송
    수필/신작 2014. 11. 13. 19:31

    재전송(再電送)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문학작가한테 퇴고(推敲)는 필수불가결한 작업이다. 하더라도, 석물조각가에 비하면, 문학작가는 퇴고의 절차가 있어 거저 먹기.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석물조각가야말로 그 많은 장르의 예술가들 가운데 으뜸이다. 왜 그런고 하니, 그분들은 원석(原石)을 가지고 정 따위로 쪼다가 실수하게 되면, 그때까지 작업한 걸 통째로 버려야 하는 경우도 왕왕 있을 터. 가령, 불상(佛相)을 쪼다가 실수로 그만 코가 떨어져 나가거나 하면, 다시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 하여간, 석물 조각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다.

         나는 몇 아니 되는 분들께 거의 매일 새벽에 한 통의 e메일을 부치게 된다. e메일의 따로붙임은 대개가 밤새 적은 신작(新作) 수필이다. 내가 만든 우스갯소리이긴 하지만, 매일 쓰고 매일 읽어봐야 하기에 메일(mail)이다. 하여간, 나는 거의 매일 한 통의 e메일을 그렇게 부친다. 달리 말해, 나는 거의 매일 한 편의 수필작품을 적는다. 그런데 신작 수필작품을 그렇게 부치고 돌아서면, 이내 후회하게 된다. 다시 읽어보면, 어법상(語法上) 문제가 있거나, ·탈자가 있거나, 문장리듬에 문제가 있거나, 주어와 술어가 서로 호응이 아니 되는 경우가 있거나 하다. 그러면 나는 그분들께 본디 e메일 제목 바로 옆에다 ( )처리 하여 그 괄호 안에 재전송이라고 한 후, 다시 보내기 단추를 종종 누르게 된다. 심지어, 삼전송을 하는 예도 있다. 어차피 글은 작가가 쓰지만, 작품은 편집자에 의해 완성된다고는 하지만 .

     

        위와 같은 일을 밥 먹듯 하다 보니까, 오늘 밤엔 문득 중국 당()의 시인 장적(張籍, 768~830)이 떠오를 게 뭐람? 그는 추사(秋思)라는 시를 다음과 같이 적었다.

        洛陽城裏意見秋風(낙양성리의견추풍) 欲作家書意萬重(욕작가서의만중) 復恐悤悤設不盡(부공총총설부진) 行人臨發又開封(행인임발우개봉).

         우리말로 풀어 쓰면 다음과 같다.

         낙양성 안에서 가을바람 맞고 보니 집으로 편지를 쓰고자 하나 마음이 만 겹이네. 바빠서 사연 다 적지 못했을까 하여 사동(使童;배달부)이 떠나려는데 다시 봉투를 개봉하네.

        이 시에서 쓰인 행인임발우개봉은 지난 날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춘향전에도 그대로 인용된 바 있다. , 예비고사에나 대학 입학시험에도 종종 출제되던 문제이기도 하다. 나야말로, 거의 매일 새벽 e메일을 여러분한테 띄운 다음, 행인임발우개봉의 심정이 되곤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오랜 기간 무수한 연애편지를 쓸 적에 자주자주 봉투를 뜯었던 기억. 봉함의 자리에다 봉할 ()을 적어두고서도 그게 훼손될세라, 못 핀 등으로 조심스레 얼마나 자주 뜯었던가.

        정말로, 입으로 내뱉는 말이든 글로 내뱉는 말이든 늘 나의 말과 나의글은 미완성작품에 불과하다. 유명한 고전음악 작곡가들의 작품은, 후세 사람들이 미완성교향곡 등의 이름으로 불러, 완성작 이상으로 치더라만 . 일단 신작 수필이 내 손을 떠나면, 좋든 나쁘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애독자님들의 몫이라고 여기며 더 이상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틈만 나면, 다시금 저장 파일을 불러내어 소리 내 읽어보게 된다. 눈으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입으로 읽어 버릇하는 편이다. 그러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잘 발견된다. 그러한 점에서도 중국의 두보(杜甫)는 본받을 점이 참으로 많다. 그는 앞 못 보는 조모(祖母)한테 자기가 갓 빚은 시를 읊어주곤 했단다. 그러고서는 조모의 표정을 통해,자기 작품의 완성도여부를 알았다지 않은가. 사실 내 곁에도 두보의 조모 같은 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그 어떤 문학단체 등에도 들지 않았을 뿐더러 . 진정한 문우(文友)가 단 한 명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참 좋겠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문학작가는 퇴고라는 게 있어서, 자기가 눈 감기 이전에는 언제든지 자신의 작품을 고칠 수 있다. 그 점 대단한 행운이다. 사실 1989, 내 나이 서른 둘일 적에 어느 문학잡지에 초회추천 받은 작품, 우산도 대여섯 번씩이나 개작(改作)했던 것이다. 퇴고 내지 가필정정 내지 개작에 관한 한 헤밍웨이를 따를 이가 없다고 하였다. 그는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를 수 없이 개작했다고 들은 바 있으니까.

    이제 퇴고의 원조격인 당()의 시인, 가도(賈島)의 일화를 들려드리는 것으로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그는 나귀를 타고 가다가 鳥宿池邊樹僧推月下門(새는 연못가 나무에 자고 중은 달 아래 문을 민다)’이라는 시를 떠올리고 ‘(문을) 민다[]’보다 두드린다라고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며 걷다가 한유와 마주쳤다. 한유 앞에 불려간 가도가 사실대로 이야기하자, 한유는 보다 가 좋겠다고 하며 가도와 나란히 행차했다.

    퇴고의 기본은 따로 있게 마련이다.

    첫째, 부가(附加)의 원칙으로, 쓰려던 것이 잘 쓰였는가 살펴보고 빠진 부분을 보충할 것.

    둘째, 삭제(削除)의 원칙으로, 거짓이 없는지 살피면서 지나치게 조잡하고 과장된 부분을 빼고 함축시킬 것.

    셋째, 구성(構成)의 원칙으로, 문장구성과 주제, 전개양상을 부분적으로 고칠 것.

    아울러 전체·부분, 문장·용어·표기법 등을 검토해야 한다. (이상 가도이야기는 ‘Daum 백과사전에서 따오면서 부분부분 재편집함.)

    끝으로, 나의 신작 수필을 거의 매일 읽으시되,’재전송이나 삼전송으로 e메일 받으시는 분들의 수고에 머리 조아려 감사 드리며, 이 글 접는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약을 노래함  (0) 2014.11.17
    황을 노래함  (0) 2014.11.15
    베갯속을 갈고  (0) 2014.11.13
    감을 깎다가  (0) 2014.11.11
    나무를 심은 사람들  (0) 2014.11.08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