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고(八苦)에 관해수필/신작 2015. 3. 21. 15:04
‘팔고(八苦)’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해질 무렵, 그녀를 묻었다. 그녀는 진정한 보헤미안이었으며 집시였다. 참말로, 그녀는 짧은 생애 동안 그 어느 것에든 얽매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그녀는 특유의 보헤미안 내지 집시 기질로 말미암아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만... .
지금은 다시 산골 농막 수필가의 밤. 내 불찰(不察)로 인한 별리(別離)라서 통음(痛飮)을 하고나니, 문득 불가(佛家)에서 이르는 ‘팔고(八苦)’가 떠오른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사고(四苦)에다 ‘애별리(愛別離;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고통)’, ‘원증회(怨憎會; 원망과 증오를 만나 는 일)’, ‘구부득(求不得; 구하되 얻지 못하는 일)’,‘오온성(五蘊盛; 온몸이 성해 겪는 일; 몸이 성하면 육욕(肉慾)이 생긴다는 뜻 함축한 듯함.) 등의 사고(四苦)를 더한 말이다.
사실 내가 그녀를 얻게(?) 된 것부터가 고통이었다. 그녀 출생의 비밀, 그 족보를 밝히면 참으로 비극적이다. 이 숯골[炭谷] 저수지 바로 위에는 ‘보명사’라는 절이 있고, 그곳 주지스님은 백구(白狗)를 묶어 키운다. 사돈할 자리가 따로 있지, 인사성도 없고 이미지가 퍽이나 안 좋은 그 땡땡이중이 이 천주교인하고 사돈을 덜렁 맺었다는 게 말이나 되냐고? 더군다나 그 어미와 붙어먹었던 놈이 다시 그 딸년까지 범해 자식을 낳았으니,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겹사돈도 유분수지!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몇 해 전 그 절의 백구가 바람이 나서 내 ‘만돌이농원’ 뒷동산에 묶어둔 ‘발발이’ 가시내를 한 차례 범하고 갔다.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했으니, 우리 ‘발발이’ 가시내가 암내를 풍겨 그렇게 되었다고 함이 옳다. 그 ‘발발이’ 남매는 내 작은딸 ‘미카엘라’가 자기 친구 ‘세정이’한테서 얻은 녀석들이었다. 세정이는 시집을 가면서, 자기가 키우던 녀석들을 ‘미카엘라’에게 선물로 주었다. 사실 우리 가족은 반려견 ‘만돌이’와 사별(死別) 이후 다시는 생명 지닌 이를 가까이 하지 않으려 별렀다. 하지만, 내 작은딸의 말이 너무도 가상하여 또다시 팔고(八苦)를 감내(堪耐)코자 하였다. 그 녀석이 당시 이렇게 말했다는 거 아닌가.
“엄마, 아빠가 산골 농막에서 혼자 지내시기 적적할 텐데, 강아지 데려다 주면 안 돼? ”
그랬던 이 천주교인댁 ‘발발이’가 그 덩치 큰 땡땡이중네 ‘보명이(‘보명사’의 개이니까, 그렇게 별명을 붙여 불렀다.)‘한테 당해서(?) 아이들 넷을 한꺼번에 낳았고, 그 가운데 둘은 그것들 부모와 마찬가지로 이미 게걸스런 이들로부터 된장이 발려 버렸다. 남은 남매는 다시 성견(成犬)이 되어 뒷동산에 매여 있다. 매여 있으되, 빨랫줄처럼 두 나무 사이에 매어둔 줄 사이를 단거리 선수마냥 오가며 어느 정도 자유를 누리는 편이다. 그런데 ’발발이‘의 딸이며 ’보명이‘의 딸이기도 한 우리 ’경숙‘ 가시내가 다시 일을 저질러버렸다. 자기 아버지인 ’보명이‘한테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첫 팬티‘를 벗고 말았으니... . 해서, 그것들 무리의 족보는 비극적이게도 ’개 족보‘인 셈이다. 순수혈통이 아닌 개를 싸잡아 ’똥개‘라고 한다는 것도 최근에야 동물병원 원장으로부터 들었다. 그것들은 한 배에 여러 자녀를 낳게 되는데, 부계(父系)와 모계(母系)의 양친으로부터 아주 먼 조상들에 이르기까지의 유전형질을 제각기물러 받는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다. 즉, 한 배의 아가들도 한 날 한 시에 났음에도 색상이며 크기며 성질이 제각각이라는 점.
내가 오늘 해질 무렵 사별(死別)하여 장례를 치른 그녀도 그러한 비극 중에 태어났다. 제 어미이자 동서(同壻)이자 동서(同棲)인 ‘경숙’이가 곁에서 멀거니 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또한, 자기 동기(同氣)인 흰둥이, 검둥이, 누렁이 셋이 멀거니 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엄마 쪽으로 따져 외삼촌이자 자기 아빠 기준으로 따져 오라버니인 ‘컹컹이’가 ‘컹!컹’ 짖어대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 그녀는 살아생전 6개월여 옅은 갈색을 띠고 있었다.
그녀의 족보는 대충 위 단락에 소개하였다. 이번에는 그 보헤미안이며 집시였던 그녀의 짧디짧은 삶이 어떠했는지 소개 아니 할 수가 없다. 하도 가슴이 아파, 내 신실한 독자들께 나의 잘못을 이렇게 고백할밖에. 지난 해 팔월중순께 그녀의 어미인 ‘경숙’이가 암내를 풍겨 자기 아버지인 ‘보명이’를 꼬드겼다. 나는 그 두 연놈의 사랑 행각을, 아니 불륜(不倫)을 똑똑히 목도하였다. 나는 지난 날 경험을 토대로, 임신기간 63일을 감안하여 시월중순께가 산월(産月)일 거라고 예측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월 중순께 가시내는 자녀 일곱을 낳았다. 새벽에 밥을 주러 갔다가 그 꼼지락대는 녀석들을 보게 되었다. 어미 개의 모성애와 모성본능 참으로 갸륵했다. 그 가운데 영 아니 되겠다고 여겨진 한 녀석을 에미가 며칠이 지난 후 깔아뭉갰음을 알 수 있었다. 녀석들 여섯은 날이 갈수록 어미 곁을 떠나 활동영역이 마치 동심원을 그리듯 차츰 넓어져 갔다. 유년기에 그것들이 겪게 될 첫 겨울을 생각하자니 마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녀석들을 필요로 하는 이한테 거저 입양(入養)하라고 수소문을 해 보았으나, 겨우 튼실한 녀석 둘만 분양할 수 있었다. 이곳 연수원 경비실에 격일제로 근무하는 관계로 하루씩 농막을 비울 수밖에 없는 처지. 하지만, 녀석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겨우내 뒷동산 고분(古墳) 봉분이나 가랑잎 등에서 서로 몸을 맞대어 볕을 쬐기도 하고, 이리저리 우루루 달음박질도 하고, 출퇴근 시간에 맞춰 내 뒤를 조르르 달려오기도 하고... . 마음 같아서는 그 녀석들 넷 모두에게 끝끝내 목을 채우지 않고 싶었다. 참말로, 한껏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두고 싶었다.
그러나 서서히 봄볕이 따사로워지자 이웃들은 들일을 하러 밭으로, 논으로 나서고 있었다. 농작물 등을 해칠세라, 단속할밖에. 해서, 녀석들을 차례차례 붙들어 목을 채우고자 애썼다. 그 녀석은 넷 가운데 가장 완강했다. 잘 뛰어다니는 길목에다 철사로 만든 올가미를 놓았더니, 용케도 걸렸다. 나는 아내의 도움을 받아, 녀석의 목에 목도리를 채우고자 하였다. 그랬더니, 녀석은 결사항전(?)하며 내 아내의 손가락을 물어버렸다. 우리 내외는 혼비백산했다. 광견병이나 파상풍에 관한 예방접종도 아니 한 터. 아내한테 속히 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권하는 한편, 녀석을 철사 올가미가 달린 채로 해방시켜(?) 주었다. 기회 보아가며 녀석을 쉽게 붙들 거라 벼르며, 마치 우리가 목에다 넥타이를 묶듯 한 상태로 녀석의 목에다 철사 줄이 달린 채로 올가미를 걸어두고 있었다. 그게 첫 번째 나의 잘못이다. 녀석은 그처럼 올가미가 걸린 채로 온데 잘도 쏘다녔다. 철사줄이 나무 그루터기 등에 걸리면 헤어나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목에 감긴 철사 올가미는 더욱 조여들어 살갗을 파고들어 맥을 추지 못하는 것 같았다. 혼쭐이 난 녀석은 나의 눈치만 살피고 멀찍이 홀로 떨어져 지내곤 하였다. 한마디로, 녀석은 ‘너무나 먼 당신’이었다. 그러다가는 생사람이 아닌 생개 잡겠다고 여기며 하루라도 속히 녀석을 붙들어야겠다고 여러 차례 시도를 해보았으나, 참으로 어려웠다. 동물병원에서 안정제를 지어다가 먹여 꼬박꼬박 졸게도 해보았고... . 결국은 119에 도움을 요청해서 구조대원들의 마취총으로 녀석을 포획하고, 목에 감긴 철사 올가미를 제거할 수 있었다. 참말로, 내가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었다. 목불인견(目不忍見). 녀석의 목은 마치 날카로운 칼로 반쯤 벤 듯했으니까. 두 번째 나의 실수는, 녀석을 목도리로 구속했다는 거. 그냥 건맨처럼 겨드랑이를 매어 줄 것을. 물론 분사용 소독약을 사다가 틈틈이 상처부위에다 분사를 하긴 하였지만, 119 구조대원들의 권고를 빠뜨린 게 하나 있다. 차일피일 미루며 항생제를 사다 먹이지 못했다는 점. 오늘은 녀석이 다시 이 잔인무도한 주인한테 묶인 지 닷새 쯤 되는 날이었다. 하루 종일 딴 데서 품앗이를 하고 돌아 왔더니, 녀석은 기척이 없었다.싸늘한 시신(屍身)으로 변해 있었다. 나의 불찰이 부른 고통이다.
나는 녀석을 고이 묻으며, 눈물을 내내 줄줄 흘러야만 하였다. 하느님께 기도도 경건하게 드려야만 했다.
“정말 미안하대이. 그 맑았던 눈동자 쉬이 잊지 않을 게. 너는 진정한 보헤미안이었어. 집시였어. 부러 정 붙이지 않으려 그렇게 외면했건만... .”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수필 > 신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지[枝] (0) 2015.04.01 수필로 쓰는 작은 수필론 - 길가에 집을 짓자니 (0) 2015.03.30 '대롱(37)' (0) 2015.03.19 오른손을 놀려두라 (0) 2015.03.12 매실나무 전정을 마치고 (0) 2015.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