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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눈
윤근택(수필가)
‘앎’이란 끝이 없다. 체험보다 더 훌륭한 스승은 없다. 체험보다 더 훌륭한 수필창작 스승도 없다. 수필작가로 지내온 지 30여 년. 나는 색다른 체험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내 글감으로 키우고, 거기에다가 또 다른 생각을 얹어 수필작품으로 곧잘 빚어내는 편이다.
이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세대에서, 베란다 쪽 천정에 물기가 잡혀 페인트 도색이 벗겨지고 얼룩이 졌으니, 얼른 와보라는 민원을 받았던 것이다. 시쳇말로, 기술은 개뿔도 없으면서, 어느 아파트의 ‘전기·영선(營繕) 주임’으로 재취업해 있는 처지인데... . 짐작컨대, 지은 지 24년째 되는 아파트이니 또 윗층 베란다 바닥의 방수(防水)에 문제가 생겼겠지 여기며 그 세대의 윗집으로 올라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 윗집 베란다 바닥에 깔아둔 타일(tile) 가운데 한 장이 깨져 있었다. 사실 그 타일을 떼어내고, 동일 색상과 동일 크기의 타일로 바꾸어 붙이되, 방수액을 골고루 섞어 갠 모르타르(mortar) 바른 후에 붙이면 될 일. 아니면 실리콘을 잔뜩 발라버려도 될 일.하지만, 아마투어인 내가 적극 나설 일은 못되었다. 속된 말로, ‘아파트 일이란, 잘 해보았자 본전’이기에. 해서, 전문가에게 의뢰하기를 권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 이야기는 곧바로‘타일’의 구조와 그 타일붙이기와 관련된 몇 몇 사항으로 옮겨간다. 다들 너무도 잘 알겠지만, 타일은 점토를 구워 만든 건축자재다. 그 타일의 표면은 아주 매끈해서 물이 스며들 일이 없다. 그리고 그 타일의 바닥면에는 마치 모눈종이처럼 생겨먹었고 가로세로 요철(凹凸)로 되어 있다. 그 요철은 모르타르와 단단히 결합하여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바닥면에 붙이든 벽면에 붙이든 천정에 붙이든 타일 낱장들 사이에는 실선(實線)처럼 생겨먹은 모르타르 줄이 생기기 마련인데... . 바로 그 줄을 ‘줄눈’이라고 한다.
줄눈, 참으로 흥미로운 명칭이다. 그 줄눈은 타일붙이기의 마감재이기도 하지만, 방수에도 큰 몫을 차지한다. 한편, 그 줄눈 자체도 미적효과를 거두게 된다. 그 줄눈들이 어우러져 바둑판 혹은 모눈종이를 연상케도 한다. 이처럼 가로줄눈과 세로줄눈이 상통(相通)하는 줄눈을 ‘통눈[通눈; straight joint)’이라고 한다. 줄눈은 벽돌 벽면이나 벽돌탑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것들은 타일바닥의 줄눈과 달리, 바둑판이나 모눈종이의 줄 모양과는 판이하다. ‘ 세로줄눈이 벽돌 한 켜마다 엇갈리게 서로 통하지 않은 줄눈’임을 알 수 있다. 이를 두고 ‘막힌줄눈(breaking joints)’이라고 한다. 벽돌 등에 가해지는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어긋매끼게’ 벽돌 등을 쌓아올리기에 그러한 ‘막힌 줄눈’이 생긴다. 사실 아직까지도 우리네 건축 용어는 일본어 일색인데, 이 ‘줄눈’만은 아름다운 순우리말 건축 용어이니 정겹게 다가온다.
‘줄눈’에서 시작된 내 생각은 어느새 ‘눈금’과 ‘모눈종이’에까지 닿았다. 줄눈이든 눈금이든 모눈종이든 모두 ‘눈-’혹은 ‘-눈’이 들어간 낱말이지 않은가. 자[尺]에 밀리미터 단위로 그어놓은 작은 줄을 ‘눈금’이라 부른다. (네)모[角]진 작은 칸을 지닌 ‘그래프 페이퍼’를 ‘모눈종이’라 부른다. 모두 우리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금[線]이기에 ‘눈-’혹은 ‘-눈’을 붙였던가 보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나의 연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Pieter Cornelis Mondriaan, 네덜란드,1872~1944)’에까지 닿고 말았다.
‘네이버 백과사전’그에 관해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 그는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데 스테일’ 운동을 이끌었으며,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는 양식을 통해 자연의 재현적 요소를 제거하고 보편적 리얼리티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의 기하학적인 추상은 20세기 미술과 건축, 패션 등 예술계 전반에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나는 ‘몬드리안의 구성’에 관해 이렇게 요약코자 한다. ‘칸딘스키’가 ‘빗금의 구성’을 취했던 데 비해, 그는 빨강·노랑·파랑 3가지 기본색과 기본 톤(tone)만을 사용한 ‘줄눈의 구성’을 취했다. 그가 취한 구성이 ‘줄눈’이었으되,수평과 수직을, 이곳 경산도 말로 ‘새리빼딱하게’ 즉 비균형적이게 구성한 줄눈이었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부지불식간에 종종‘몬드리안 구성’ 곧 ‘몬드리안 줄눈’을 취하게 되는데, 그게 언제일까? 어느 분한테 선물코자, 사각진 통에 선물을 넣고 포장지로 예쁘게 포장한 다음, 맨 나중에 리본으로 묶을 때가 바로 그때다. 그 포장의 평면도로 따져, 그 리본의 모양이 ‘+’이되, 정중앙이 아닌, 어느 한쪽으로 쏠린 ‘+’로 묶지 않느냐고? 그게 바로 ‘몬드리안 구성’이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그 ‘몬드리안 구성’이 ‘격자무늬 구성’의 변형임을 아시게 되었을 테지. 또, 그 몬드리안 구성은, 위에서 주욱 소개했던 ‘줄눈구성’의 변형임을. 하여간, 몬드리안 구성은 미적(美的)으로 매우 빼어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몬드리안 구성을 자주 만나게 된다. 냉장고의 문, 창호(窓戶), 기둥 등에서.
자, 두서없는 나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아야겠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줄눈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고사찰 전탑(塼塔), 보도블럭, 욕실 타일, 벽돌담장 등에서도 줄눈을 늘 보게 된다. 다만, 그 명칭을 정확히 모르고 지냈을 뿐이다. 사실 나도 요 며칠 전에 설비업자로부터, 어느 세대의 방수공사 때에, 그 아름다운 명칭을 알게 되었다. 미적 효과는 물론이고 방수와 모르타르에 의한 접착강화와 하중분산 등에 없어서는 아니 되는 존재가 줄눈이다. 이름조차 아름다운 줄눈.
작가의 말)
그 어떤 소재라도 내 더듬이에 닿기만 하면, 곧바로 글로 둔갑시킨다. 모름지기 작가는 연상작용이 뛰어난 사람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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