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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8-120'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어제는 객지친구이자 섀시(chassis)전문가인 박사장을 따라, 어느 댁 대문 교체공사를 도와주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보조수였다. 사실 나는 사무직으로 사반세기 지냈는데, 사무든 막노동이든 세상만사 정리정돈에서 시작해서 정리정돈으로 끝난다는 걸 굳게 믿는 터. 특히 막노동판에서 보조수는 연장만 잘 챙겨도 한 몫을 한다는 거. 몇 차례 그를 따라 날품팔이 아닌 날품팔이를 하면서 연장 챙기기 등으로 신뢰를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가 작업을 하는 동안 연장도 척척 챙겨주었지만, ‘쉴 참’에 그가 그저께 깬 바닥의 콘크리트 조각들을 쓰레받기에 담아, 개울가로 갖다버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기겁을 했다.
“윤 형, 그러면 안 돼. 건축물 폐기물은 함부로 버리면 큰일 나. 내 편하자고 그럴 수는 없어.내가 잠시 후에 내 공장에서 마대를 가져올 테니, 거기 담아 우선은 내 공장에 가져가세나.”
괴이한 일이다. 콘크리트도 석회암 즉 돌에서 왔으니, 돌로 버려지더라도 부셔져 자갈이 되고 또 그 자갈은 모래가 될 터인데... . 하지만, 그는 법령에 건축물 폐자재에 대하여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고 나를 달랬다. 그가 화물차를 몰고 자기네 공장으로 마대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꽤 굵은 콘크리트 조각만 따로 남긴 채 나머지 파편들은 죄다 개울가로, 아니 지연으로 돌려주고 말았다. 다시 돌아온 그는 다시 나를 탓했다.
꽤나 내 글 도입이 장황했다. 하지만, 나는 그날의 해프닝을 통해, 또 다른 기억을 더듬게 되었으니... . 지난 봄, 나는 내 농장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면소재지 산속, 레미콘 공장에 들른 적이 있다. 내 농장을 건너는 좁은 콘크리트 다리를 더 넓혀, 콘크리트 포장을 하기 위해서였다. 사무실에 들러, 여직원한테 사정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레미콘은 어디에 쓸 거냐, 레미콘은 어떻게 운반할 거냐, 그 면적은 얼마나 되느냐 등을 차례로 물었다. 나아가, 규격은 어떤 걸 원하느냐까지 물어댔다.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레미콘에도 규격이 있다니? 나는 그저 ‘시멘트 가루+ 자갈+ 모래+ 물’로만 혼합된 게 레미콘인 줄 알았더니... . 그날 설명을 듣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레미콘에는 무려 100여 종의 규격이 있다는 거 아닌가. 그 규격 가운데 ‘기초 레미콘’이 바로 위 제목에서 밝힌 ‘25-18-120’이다. ‘관련규정- 관련법규 -특징’의 조합이다. 이를 다시 풀이하면, 25는 굵은 골재의 최대수치, 21은 재령 (材齡) 28일의 호칭, 120은 슬럼프(미끄러짐)다. 이 ‘25-18-120’은 5층 이하 건축에 쓰이는 ‘기초 레미콘’을 일컫는다. 사실 조각가 밀러의 <비너스>가 가장 이상적인 여성 몸매‘37-26-38’를 띠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레미콘에도 몸매가?
레미콘, ‘ready mixed concrete’의 약자(略字)라고 한다. ‘ready mixed’라...‘ready made(기성의)’를 떠올리게 하고, 이어서‘다다이즘’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 (Henri Robert Marcel Duchamp,프랑스, 1887 ~ 1968)을 연상케도 하는 용어다. 참, 뒤샹은 남자 소변기를 떼다가 그걸 거꾸로 돌려놓고 ‘Fountain(샘)’이라고 명명하여 출품했다는 거 아닌가. 분명 오줌이 배설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샘이 되기는 한다. 어쨌든, 그 전시회에 일대 소동을 일으킨 적 있음을 문득 떠올려본다.
이제 내 이야기는 조심스레 시멘트로 옮겨간다. 위에서 이미 언뜻 이야기하였지만, 시멘트는 석회암을 부순 가루이지 않은가. 해서, 예전 어른들은 그걸 ‘돌가루’라고 불렀다. 그 신비스럽고 유용한 시멘트를 고안해내지 않았던들, 이처럼 화려한 도시가 생겨날 수 없었으리라. 참말로, 시멘트는 문명사회를 만들어낸, 인류의 훌륭한 발명품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없다. 내가 지금 근무하는 아파트마저도 무려 17층 건물인데, 시멘트로 만든 궁궐(?)이지 않은가. 나쁘게 이야기하자면, 이 아파트야말로 거대한‘석회암 동굴’이지만.
다시 말하거니와, 시멘트는 위대한 인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해서, 인터넷을 셔핑하여 시멘트의 발명에 관해 살펴보게 되었는데... . 지금부터 시멘트 발명 약사(略史)를 소개코자 한다.
< 시멘트는 약 5000여 년의 역사를 가졌으며, 시멘트 공사로서는 지구상에 현존하는 최고의 것으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유적. 이때 사용한 시멘트는 석회와 석고.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는 석회에 모래를 혼합하면 수경성 모르타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시기에 포졸란 석회를 소성하기 위하여 수직형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음.
1756년 영국의 존 스미턴(Smeaton, J.)은 에디스톤(Eddystone) 등대건설공사를 할 때 수중공사에 적합한 시멘트를 만들고자, 점토분이 있는 석회석을 소성하면 좋다는 수경성 석회(Hydraulic Lime)를 발명.
1796년 영국의 제임스 파커(Packer, J.)에 의하여 점토질 석회석을 더 높은 온도로 소성하면 보다 좋은 시멘트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됨. 그는 이 시멘트와 물을 5:2의 비율로 혼합하면 1시간 이내에 응결 경화하는 급결성 시멘트를 발명. 이를 후에 로만 시멘트(Roman Cement)라 부르게 됨.
1811년 영국의 프로스트(Frost, j.)는 석회와 점토를 2:1의 비율로 시멘트를 제조하여 ‘Frost Cement’라 함.
1818년 프랑스의 루이스 요셉 비카트(Vicat, L. J.)는 석회석과 점토질 암석을 혼합, 소성하여 인공포졸란(천연시멘트)을 발명.
1824년 영국의 연와공 조셉 애스프딘(Aspdin.J.)은 석회석과 점토를 혼합하고 융제(Flux)를 사용해서 융점을 낮추어 제조하는 시멘트를 만드는 방법을 발명하여 특허를 얻음. 이 시멘트가 영국의 포틀랜드 섬에서 산출되는 석재와 그 색이 비슷하다 하여 ‘포틀랜드 시멘트(Portland Cement)’라 명명. 이는 포틀랜드 시멘트의 기원.
1907년경 프랑스와 미국에서 석회석과 보크사이트(Bauxite)를 원료로 하는 알루미나 시멘트가 제조 되었음
1936년에는 시멘트의 수축성을 보상하는 팽창 시멘트가 발명되는 등 20세기에 들어와 시멘트의 종류도 다양화하기 시작.
각국의 시멘트 제조연대는 영국 1825년, 프랑스 1846년, 독일1855년, 미국 1871년, 일본 1873년,한국은 1919년 일본 ‘小野田시멘트’에 의하여 건설된 평양공장이 처음.>
[출처] [발명] 시멘트는 누가 발명 했나요? |작성자 오토가이
어찌되었든, 시멘트는 석회암을 고열(高熱)로 구워 바순 돌가루다. 20kg들이 한 포대에 5,000원 안팎에 지나지 않는 건축재료다. 그러한 시멘트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얼마나 유익한지 모르겠다. 시멘트는 인류에게 유익한 재료이니, 그걸 발전시켜발명해 낸 위 인물들 모두한테도 감사해할 따름이다.
수필작가인 나는, 돌에서 온 돌가루가 자갈과 모래와 물로 혼합되어 다시 돌로 재구성이 되는 과정을 놓칠 수가 없다. 실은, 내가 1998년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의 재판본(再版本)을 내면서 ‘다시 책머리’에다, 시멘트가 콘크리트가 되어가는 과정에 빗대, 나의 글들이 경험 내지 체험의 ‘재구성’임을 적은 바 있다. 그 책을 낸 지 30여년 되었으나, 그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돌이 열정(熱情)으로 바수어져 시멘트 가루가 되고, 그 가루들은 자갈과 모래와 물과 잘 섞이어, 제법 쓸 만한 콘크리트가 되는 과정. 진짜로, 그것은 ‘재구성(restructure)’이다. 그 재구성은,‘25-18-120’를 비롯한 100여 종류의 규격 내지 패턴을 지닌다는 거. 마찬가지다. 수필 장르를 두고, 결코‘무형식의 장르’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또, 위에서 보듯, 시멘트도 진화(進化)해왔고, 또 쓰임에 따라 진화해나가리라는 기대를 버려서는 아니 되겠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는 여태 전통적인 수필쓰기만을 고집하지 않아 왔다.
다시 말하거니와, ‘25-18-120’은 그 많은 규격 가운데 하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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