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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있는 일
윤근택(수필가/문장치료사/수필평론가)
우리는 곧잘 이 말을 쓴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이 이야기는 《신당서(新唐書) 〈배도전(裵度傳)〉》에 나오는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에서 항상 있는 일이다(一勝一負, 兵家常勢).”라는 헌종의 말에서 유래되었다. 전쟁에서 패한 장군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실패를 거울삼아, 재도전에 성공한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 가운데에서 이미 내가 써서 인터넷 매체에 도배를(?) 해둔,‘인생을 바꾼 사물들’이란 작품에서 일부분을 자기표절해 보기로 한다.
< 3. 개구리
사실 나는 멋모르던 문단데뷔 초기에 두 권의 수필집을 연거푸 낸 적이 있다. 그 두 번째 수필집, <이슬아지>의 맨 앞부분에 ‘화투’라는 수필을 실은 바 있다. 그 ‘화투’는 총 13편의 연작수필로 되어 있다. 화투장 가운데 12월 광(光)에 그려진 ‘우산 쓴 영감’이 실존했던 일본의 선사(禪師)이며, 그가 득도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라고 적고 있다. 나는, 꽃피고 새우는 산속에서 온갖 유혹 참아내며 득도해나가는 그 선사를 떠올렸다. 내가 누군가가 버려둔 농막(農幕)에서 정확히 24개월 지내면서, 그 12개월의 화투장 그림에 내 생활을 대입해본 글이었다. 사실 그 글은 많은 애독자들과 문학비평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한데 그 ‘우산 쓴 영감’이 선사가 아닌 ‘오노노도후[小野道風, 894~966)’라는 서예가였음을 이 글을 적기 직전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서예가’도 도(道)의 경지로 따져 ‘선사’와 크게 다를 바 없으니, 내 두 번째 수필집 내용은 그대로 유효하다.
사건인즉 이러하다. ‘오노노도후’는 공부에 실패하자 하산하는 길이었다. 일본은 아열대성 기후라서 12월에도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한다. 그는 비가 내리자 우산을 쓰고 하산하고 있었다. 그는 웅덩이 앞에서 발을 잠시 멈춘다. 개구리가 버들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따먹으려고 거듭거듭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저 미물(微物)도 실패에 굴하지 않거든, 하물며 인간인 내가... .”
그는 다시 산으로 올라갔고, 공부에 정진하였다.
4. 접시
아주 먼 옛날, 기원전 320년경 인도에는 어떤사내가 있었다. 그는 마가다 난다왕조의 난다왕자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로도 알려져 있다. 왕궁에서 어떤 연유로 궁궐 밖으로 쫓겨난다. 그는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공작새를 조련하는 이한테서 길러진다. 그러다가 영리한 힌두 사제 ‘카우틸리아’를 만난다. 카우틸리아는 ‘왕놀이’를 하는 그의 비범함을 보고, 진짜 왕이 되는 비결을 넌지시 알려준다. 그는 보병 60만, 기병 3만, 코끼리 9천 마리로 변방부터 공격해 들어가 왕궁을 뺏는다. 그는 인도 역사상 첫 통일국가 ‘마우리아제국’ 즉, ‘공작제국’을 세워 광대한 영토를 확보한다.
그는 전쟁터에서, 어릴 적 어머니의 충고를 떠올린 덕분이다.
“얘야, 접시 중앙의 음식은 뜨거워 입을 델 수 있으니, 음식이 식어가는 가장자리부터 떠먹으렴.”
그가 바로 ‘찬드라굽타’다. 사실 위 단락은 나의 수필, ‘찬드라굽타의 발’에서 인용하였다.
중심이 아닌 변방(邊方)부터 공격해 들어간 그의 전법(戰法). 그 전법은 ‘인류의 위대한 10대 전법’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덤으로, 찬드라굽타의 손자 ‘아소카’는 불교를 중국, 한국, 스리랑카 등지에 전파하는 등 위대한 업적을 남겼음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과 정보 공유하고자 한다. > (이상 본인의 수필, ‘인생을 바꾼 사물들’에서 일부 발췌.)
나는 위 예화(例話) 가운데에서도 ‘찬드라 굽타’의 “얘야, 접시 중앙의 음식은 뜨거워 입을 델 수 있으니, 음식이 식어가는 가장자리부터 떠먹으렴.” 부분을 다시 떠올린다.
다들 종종 경험하겠지만, 나도‘뜨거운 감자’나 ‘뜨거운 국물’따위를 먹다가 입천장을 데는 예가 많다. 그 일은 ‘늘 있는 일’이다. 때로는 맛있는 음식을 게걸스레(?) 먹다가, 내 이빨로 내 혓바닥을 깨물기도 한다. 이 또한 ‘늘 있는 일’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입천장을 데거나 혓바닥을 깨문 후에도 큰 문제가 없었다는 거. 생체의 비밀이기도 하지만, ‘자기치유(自己治癒)’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곧바로 낫더라는 거. 다들 입천장이 데었을 때를 떠올려보시라. 얇게, 아주 얇게 입천장 피부가 벗긴다. 그 벗긴 살갗을 손가락으로 긁어내었던 기억들. 만약에, 만약에 이 때 그 얇은 살갗의 자기희생이 없었다면, 일은 더 커졌을 터. 마찬가지로, 혀가 깨물렸을 적에도 그 상처 난 부위가 ‘SOS!’ 타전(打電)함으로써 이런저런 호르몬 따위가 그 상처 난 부위로 달려가서 코팅을 해주어 낫게 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겪는 일. 참말로, ‘늘 있는 일’에 불과하다. 25년 여 제대로 된 직장생활을 할 적에도 여러 고비를 겪었지만, 그때는 목숨처럼 여기며 숨죽여 지냈다. 하지만, 여벌의 인생을(?), 여벌의 직장생활을 해왔던 나. 온갖 모함이나 잦은 갑질(甲질)에 꿇릴 수는 없다. 내가 양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는 그런 게 아닐뿐더러 명색이 예술가인 터에.
나는 또다시 이력서를 들고 이곳저곳 아파트 경비원 자리 혹은 아파트 전기주임 자리를 찾아 나선다. 이 일은 나한테만은 ‘늘 있는 일’이기에. 상종(相從)하지 말아야 할 인간이 내가 새로 갈 그곳에도 있다면, 나는 주저 않고 길을 나설 것이다. 그 또한 나한테 ‘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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