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열 다섯 번째, 일백 열 여섯 번째 이야기-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열 다섯 번째, 일백 열 여섯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15.
“으뜸아, 창 너머 저 ‘선의산(仙義山)’ 꼭대기를 내다보렴. 이 ‘만돌이농원’이 자리한 경산시 남천면 송백리와 청도군 청도읍 운산리 사이에 있는 해발고도 756.4 미터 저 산꼭대기에는 하얗게 눈이 쌓여있네. ”
녀석은 “야! 아름다워!”하면서도 이내 그 꼭대기에서 눈을 뒤집어 쓴 나무들을 안쓰럽게 여긴다.
“한아버지, 저 나무들은 눈[雪]을 맞은 말의 갈기 같애. 어쩌면 참빗 같기도 하고. 근데(그런데) 산꼭대기에 서 있는 저 나무들은 겨울바람에 몹시 춥겠어!”
‘누군가가 녀석더러 예술가의 외손주가 아니라고 할까 보아서... .’
“으뜸아, 한라산 높이는 ‘한 번 구경 오십시오(1950미터)’, 백두산 높이는 ‘이질설사(2744미터)’. 그런데 그 높은 산꼭대기로 차츰 올라갈수록 차차 나무들 키가 작아진다? 왜 그렇다고 생각해? ”
녀석은 잠시 그 작은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이마를 짚으며 나름대로 기억을 더듬는다.
“아하, 떠올랐어. 언젠가 한아버지가 으뜸이한테 알켜(알려) 줬다? 나무는 자기가 자라는 산 높이 만치 이미 키를 따먹고 있으니, 굳이 자기 아래쪽 나무들 키와 견주지 않아도 되니깐.”
맞는 말이다. 산의 맨 꼭대기에 서 있는 나무는, 키가 설혹 한 뼘에 불과하더라도 그 산에서 가장 높이 선 나무다.
“으뜸아, 또 다른 숨겨진 비밀이 있단다. 백두산·설악산·한라산 등 높은 산에는 ‘눈-’이란 이름이 붙은 나무들이 산단다. 그것들 이름 앞에 붙은 ‘눈-’은 ‘눈[雪]-’을 뜻하는 게 아니라 ‘누운-’ 곧 ‘누워있는-’을 뜻한단다. 그러한 나무들을 ‘변이종(變異種; a variable species)’이라고 불러. 같은 종류의 개체 사이에서 형질 즉 유전인자가 달라진 종류를 변이종이라고 해. 변이종은 ‘생태종(生態種)’과는 다소 다른 개념인 걸. 생태종은, 변이종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에 속하나 사는 곳에 따라 다른 형태나 성질을 가지며 그 특징이 유전적으로 고정되는 생물의 무리를 일컬어. 사는 장소의 환경 조건에 적응되나 종 분화에까지 이르지 않으며, 변이종과 달리, 교배가 가능한 걸 생태종이라고 하거든. 변이종 가운데에는 누운향·누운주목·누운갯버들·누운산버들·누운잣나무·누운측백 등이 있단다. 이들 ‘누운-’의 나무들을 학명으로 표기할 적에는‘variable(변이성의)’의 약자인 ‘var.’을 붙여. 예를 하나 들어보렴? ‘var.sargentii Henry’라고 쓰면, ‘누운향’이야. ‘Henry’라는 분이 최초 명명했다는 뜻도 포함된 것이고.“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은 고개를 갸우뚱대며 말한다.
“한아버지, 이번엔 너무 어려워. 변이종과 생태종의 개념 차이도 어렵기만 한 걸.”
녀석의 어지럼증을 달래주려고 잠시 엉뚱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으뜸아, 백두산에서 자라는 ‘들쭉나무’이야기 네게 들려준 적 있지? 진달래과 산앵도나무속에 속하는 ‘키 작은 떨기나무(小灌木)’. 그 열매로 빚은 들쭉술은 북한에서 외국손님들을 접대할 때 자주 이용해서 대외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 않았던?”
그러자 술꾼인 이 외할애비의 유전형질을 일부 지녔음인지, 녀석이 입맛을 다신다.
사실 들쭉나무도 백두산·한라산 등 고산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키 1미터 안팎으로 자라기에 변이종 또는 생태종의 개념과도 전혀 무관치 않다.
“으뜸아, 하여간 ‘누운-’이 붙은 나무는 이미 위에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같은 종에 속하나 사는 곳에 따라 다른 형태나 성질을 가지며 그 특징이 유전적으로 고정’되었단다. 해서, 가령‘누운향나무’를 환경이 좋은 곳에 옮겨 심더라도 다시는 위로 곧게 크지 못하고 비스듬히 누워 자란단다.”
녀석이 다소 안타까워한다.
“아주 나쁜 환경에서 대를 이어온 나무는 환경이 나아져도 그처럼 유전형질로 굳어진다니!”
이에, 이 할애비는 녀석한테 한마디를 더해 준다.
“으뜸아, 하더라도 ‘누운-’이 붙은 나무들도 그 쓰임새가 있는 걸. 가령, 돌계단 사이사이나 비탈진 곳에 심긴‘누운향’은 관상가치가 매우 뛰어나니까.”
오늘도 녀석이 노변담화 마무리를 짓는다.
“한아버지, 높은 산의 꼭대기를 올라갈수록 차츰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 굳이 뽐내지 않더라도 산 높이 만치 이미 키를 따먹으니깐. 글고(그리고) 니이체가 말했듯, 언뜻 약점으로 보이는‘누운-’도 ‘곱사등이의 혹’이야. 니이체는 곱사등이의 혹을 떼는 게 그로부터 생명을 앗는 짓이라고 했거든. ”
참으로 녀석의 ‘새겨들음’이 놀랍다.
다시 산골 외딴 농막에는 어둠이 내리고.
116.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 으뜸이. 무료한지 녀석은 줄자[卷尺;tape measure]를 폈다 감았다를 거듭한다.
“한아버지, 으뜸이는 외우고 있다? 1미터는 100센티미터, 1센티미터는 10밀리미터,1야드는 91.44미터.”
총명한 녀석은 ‘도량(度量)’도 이미 이렇듯익히고 있다. 이 외할애비는 기왕에 녀석이 커가면서 ‘도량(度量)’ 즉,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어 사람이나 사물을 잘 포용하는 품성’을 차츰 더해갔으면 하고 내심 욕심을 부려본다.
“으뜸아, 길이단위와 관련된 나무도 있다면?”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며 다음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
“으뜸아, 우리네 어른들은 ‘리(里)’라는 길이를 즐겨 쓰셨단다. 오리(五里)·십리(十里)시오리[十五里] 하시면서. 1리는 39.2727센티미터야. 그러니 10 리는 약 4킬로미터 거리가 되지.”
녀석이 재촉한다.
“한아버지, 이야기 빙빙 돌리지 말고... .”
사실 위에서 이미 길이단위와 관련된 나무이름 힌트를 주었건만... .
“으뜸아, 그 나무가 바로 ‘오리나무[五里木]’야. 요즘처럼 고급스런 이정표(里程標)가 나오기 전 옛 어른들은 오리마다 길가에다 이정표 삼아 오리나무를 심었다고 해.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오리나무래.”
조손(祖孫)은, 그 하고많은 나무들 가운데에서 왜 하필이면 자작나무과(-科) 오리나무속(-屬)에 든 오리나무가 뽑혀 그렇게 이정표 삼아 오리마다 심겨졌을까에 관해 수목학도답게(?) 함께 탐구한다.
“으뜸아, 이 할애비는 짚이는 게 하나 있어. 지난 날 수목학 강의 중에, 지금은 작고(作故)하신 노은사(老恩師)께서 이르셨어. 오리나무 가운데에는 ‘사방오리(砂防五里)’와 ‘좀사방오리’도 있다고. 여기서 말하는 ‘砂防-’은 말 그대로 산사태를 막으려고 즐겨 심었던 나무임을 뜻하잖니? 대체로, 절개면(切開面)은 토양이 척박한데도 오리나무는 여느 나무에 비해 잘 자란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잖니? 민둥산과 마찬가지로, 신작로변(新作路邊)도 척박한 토양이니... .”
외손주녀석도 이 할애비 못지않게 유추력과 연상력을 발휘한다.
“한아버지, 사실 ‘새 길’을 낸 절개면에는 싸리나무를 많이들 심어놨던데... . 한아버지가 일찍이 으뜸이한테 일러줬다? 싸리나무는 콩과식물, 콩과식물은 뿌리혹박테리아를 지닌 식물, 뿌리혹박테리아는 콩과 식물의 뿌리에 뿌리혹을 만들어 식물과 공생하면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함으로써 비료를 만들어 준다? 그렇다면 혹시 오리나무도 뿌리혹을 지닌 비료식물(肥料植物)?”
녀석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이답지 않다. 이 할애비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이에, 이 할애비는 잠시 농막 안으로 들어가 책꽂이에서 평소 애지중지하는, 그 낡은 <樹木學>을 빼서 다시 헛간 나무난로 앞으로 돌아온다. 돋보기를 벗어 ‘호호’ 입김으로 돋보기알 성에를 닦고 책을 펼친다.
‘1977년 9월 10일 제 삼판(三版), 농학도용 서적 전문회사, ‘鄕文社’. 이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인쇄되어 있다.
‘내가 오늘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내 생애의 가장 기록될 날이다. 훗날 내가 이 책을 다시 손에 들었을 때 오늘과 그 날을 비교하고, 나의 지식이 넓어졌음을 감개 깊게 느낄 것이다.
년 월 일
성명 ’
이 할애비는 그 당시 ‘ 년 월 일 성명 ’란에다 빈 칸으로 뒀음을 정확히 44년 지난 지금 무척 후회한다. 녀석 몰래 눈자위에 맺히는 이슬을 두루마리 화장지로 찍어낸다. 그러고는 128쪽 ‘오리나무속’의 기술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위 녀석의 추리력이 정확하다.
‘뿌리에 박테리아가 奇生하여 토양 중의 질소를 고정하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 나무를 심을 때 肥料木으로서 흔히 심고 있다.’
‘우리나에는 5種이 自生하고 있으며, 사방오리나무(A.firma S.et Z.) 및 좀사방오리나무(A.penndula Matsum.)가 남부지방의 砂防事業에 많이 심겨졌다.’
“으뜸아, 오늘 노변담화는 여기까지야! 이 할애비는... .”
녀석한테 결국 들키고 말았다.
“한아버지, 지금 울고 있는 거 맞지? 한아버지의 볼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다음 호 예고)
말채나무·층층나무 등의 이야기로 구성하려고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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