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나무난로 앞에서- 일백 열 일곱 번째, 일백 열 여덟 번째 이야기-

윤근택 2021. 1. 8. 04:02

나무난로 앞에서

- 일백 열 일곱 번째, 일백 열 여덟 번째 이야기-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117.

신선로(神仙爐) 모양의 무쇠나무난로다. 조손(祖孫)은 다시 나무난롯가.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아직도 오지 않은 외손주녀석 으뜸이한테 말을 건넨다.

“으뜸아, 지난 번엔 (제 118화) 이 할애비는 ‘오리나무[五里木]’가 거리상 5리마다 이정표로 심은 데서 붙여진 나무 이름이라고 들려준 바 있다? 길과 관련된 나무이름이 또 있다면?”

녀석은 의자를 이 할애비쪽으로 더욱 바짝 당기며 경청하려 든다.

“으뜸아, 아주 오래 전 옛날 교통수단은?”

녀석이 모를 리 없다.

“한아버지, 그야 당근(당연히) 말[馬]이었지. 그러기에 요즘 우리가 쓰는 동력의 단위 ‘마력(馬力;horsepower)’도 거기서 생겨났잖아.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가 짐마차를 끄는 말이 단위시간에 하는 일을 측정해서 정한 마력(HP)을 처음으로 사용했고. 사실 기차의 바퀴도 네 발로 달리는 말의 다리의 움직임을 본따 ‘링크’를 붙인 거라고 동화책에서, 그림책에서 읽고 본 적 있는 걸! 심지어, 기차를 ‘철마(鐵馬)’로 부르기까지 하잖아. 모두 말[馬]이 기준이었다?”

‘고 녀석, 알분떨어(아는 체하는 게 많아) 무슨 말을 못하겠다.’

“으뜸아, 맞아. 네 말마따나 우리 선조들의 교통수단은 말이었어. 말을 타거나 말이 이끄는 마차를 타거나 했지. 말은 언제고 위에서 네가 ‘당연히’를 달리 말한 ‘당근’과 ‘채찍’이 필요하지. 그러니 말과 관련된 나무이름이 금세 떠오를 법도 한데?”

그러자 녀석이 알아맞히려 한다.

“한아버지, ‘당근나무’? 아니면 ‘채찍나무’?

“땡. 답은‘말채나무’인 걸. 말채란, 말을 빨리 달리도록 모는 데 쓰는 채찍이니, 하기야 네가 말한 대로 ‘채찍나무’라고 해도 되겠는 걸!”

아래는 녀석한테 말채나무에 관해 더 들려주는 이야기다.

‘말채나무는 가지가 층층 달린다고 붙여진 ‘층층나무과[層層木科]에 속하는 나무. 말채나무 가지가 봄에 한창 물이 오를 때 가느다랗고 낭창낭창해서 말채찍을 만드는 데 아주 적합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말채찍으로 사용할 정도면 탄력도 있어야 하겠지만, 아주 단단해야 한다. 그러한 재질이다.

말채나무·곰의말채나무·노랑말채나무·흰말채나무 등으로 분류된다. 말채나무는 잎의 측엽(側葉)은 4~5쌍, 가지는 나중에 자색(紫色)으로 변하고, 꽃차례는 위가 평평하다. 곰의말채나무는 잎의 측엽이 6~9쌍, 가지는 나중에 황색 또는 적갈색이 되고, 꽃차례는 둔두(鈍頭)이다. 흰말채는, 말채나무와 곰의말채나무가 열매가 검게 익는데 비해 열매가 희고, 가지가 가을철에 붉어지는 점이 식별점이다. 노랑말채나무는 흰 열매, 나무껍질이 겨울에 짙은 노랑을 띤다고 붙여진 이름. 흰말채는 노랑말채와 마찬가지로 흰 열매를 달되, 나무껍질이 여름에는 푸른색을 띠다가 겨울에 빨간 색으로 변한다. 추위를 견디기 위함이다. 흰말채는 함경북도·평안북도 등 추운 지방에 주로 자라며 관상가치가 있어, 생울타리용으로 즐겨 심는다. 흰말채는 열매색깔을 기준으로, 노랑말채는 나무껍질 색깔을 기준으로 이름지었으니, 흰말채를 ‘붉은말채’라고 이름지었더라면, ‘노랑말채’와 균형을 이뤘을 텐데... . ’

다소 장황한 위 수목학 강의(?) 듣고 있던 녀석이 말한다.

“한아버지, 지난날 한아버지가 익혔다는 수목학의 ‘뿌리와 줄기[根幹]’를 이제야 알겠어. ‘분류’가 주요사항으로 들어있는 학문. 근데(그런데) 으뜸이는 이번 이야기를 통해 얻은 게 하나 더 있다? 그게 뭐게?”

녀석이 궁금해 하는 이 할애비한테 야무지게 말한다.

“한아버지, 어쨌든 세상의 모든 이들이 다들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자기만이 지닌 독특한 그 무엇 때문에 이름들이 다 다르고 말이야.”

이 할애비의 수목학 강의는 이래서 대만족이다. 이 할애비가 녀석의 이름을 그 무엇도 아닌 ‘으뜸’으로 지어준 까닭을 깨닫는 듯도 하고.

산골 농막에 다시 어둠이 찾아들고, 나무난롯불은 사위어가고.

 

118.

나무난로 맞은편 접의자에 앉은 외손주녀석은

무쇠난로 뚜껑 위에 굽고 있는 알밤을, 이 할애비를 흉내 내어 나무젓가락으로 뒤적이며 말한다.

“한아버지, 이 ‘와리바시’는 무슨 나무로 만들었을까?”

녀석마저 어른들이 흔히 주체성 없이 ‘와리바시’라고 하다니!

“으뜸아, ‘와리바시’는 일본말‘わりばし[割箸]’이야. 우리말로 순화해서, 너도 이 할애비처럼 앞으로는‘쪼개젓자락’ 혹은 ‘쪼개나무젓가락’으로 부르는 게 낫겠어.”

녀석은 머쓱한지 머리를 긁으며 말한다.

“한아버지, 알겠어. 앞으로는 조심할 게. 근데(그런데) 우리가 자주 쓰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대체 무슨 나무로 만들까?”

녀석한테 일러준다. 주로 사시나무속(-屬)에 든 양버들, 미루나무, 수원사시나무 등으로 만든 거 같다고. 이들 나무의 재질은 무르고 냄새가 역겹지 않으며 인체에 해롭지 않기에.

“한아버지, 잘 알겠어. 실제로 으뜸이가 느껴보아도 일회용 나무젓가락은 한 번 쓰고 ‘뚝뚝’ 잘 부러져 환경오염을 덜고 뒤처리가 쉽기는 해.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야문 나무는 어떤 나무일까?”

내 이럴 줄 알고, 요 며칠 전에 미리 인터넷을 통해 ‘다이제스트’로 공부해 뒀다.

“으뜸아, 언젠가 이 할애비랑 러시아 민요인 ‘Dark eyes’를 들어본 적 있지? 그때 이 할애비가 그 제목은 무얼 뜻한다고 했지?”

그러자 총명하기 이를 데 없는 녀석이 금세 대답한다.

“검은 눈동자.”

맞는 말이다.

“으뜸아, 서양인들은 ‘검은 눈동자’를 달리 말한단다. ‘ebony eyes’라고 말이야. 아주 새까만 눈동자를 일컫지. 여기서 쓰인‘ebony’가 바로 ‘흑단(黑檀)’으로 풀이되는 나무 이름에서 온 말이란다. 이‘ebony’가 세상에서 가장 재질이 단단한 나무로 알려져 있어.”

외손주녀석 으뜸이는 금세 알아차린다.

“한아버지, 그렇다면 ‘에보니’는 아주 새까만 색깔을 띠겠네?”

흥이 난 이 할애비는 주절주절 다음과 같이 읊어준다.

‘열대지역에 널리 분포한다. 가장 좋은 흑단은 무겁고 단단하며 거의 검은 목재로서, 오직 심재에서만 얻어진다. 색깔·내구성·경도·광택 때문에 고급목공가구, 상감세공에 쓰인다. 클라리넷· 오보에· 피콜로· 리코더 등 관악기의 고급재료이기도 하다. 흑단은 독을 멀리한다는 의미 때문에 고대 인도 왕의 홀, 조각상, 잔으로 쓰였다.

흑단은 그 지역 아프리카의 사투리로,‘음핑고(mpingo)’로 부르는 나무다. 이밖에도 아프리카 블랙우드(African blackwood), 그레나딜라(grenadilla),바바누스(babanus) 등으로 두루 부르며, 콩과에 속해 있다.

그 쓰임이 많고 가치 있어, 무분별한 벌채로 멸종 위기종이 되었기에, 현대에는 위에서 열거했듯, 악기 제작용 등 아주 제한된 용도로만 쓰인다.’

“한아버지, 참말로 고마워. 으뜸이는 한아버지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나무인 ‘에보니’ 아니, ‘음핑고’ 나무이름을 오늘 알게 되었으니깐. 이참에 으뜸이한테 음핑고 나무로 도장을 하나 만들어주면 어때? ‘으뜸’이란 글씨를 아주 예쁘게 새겨서 말이야. ”

‘녀석의 저 야무진 욕심하고는... . 사실 이 할애비는 여태도록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 하나 없이 지내건만... .’

또 다시 산골 외딴 농막에는 어둠이 내리고.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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