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그를 가까이하지마세요
제발 그를 가까이하지마세요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한마디로, 그는 무서운 사람입니다.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두려운 사람입니다. 제발 더 이상은 그를 가까이하지마시기를. 그는, 감히 남들이 행할 수도 없는 일도 함부로 저지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집의 나이로 65세입니다. 그의 전력(前歷)은 비교적(?) 화려합니다. 시골에서, 가난한 농부 내외의 열 남매 가운데에서 아홉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양친은 농사기술이 차츰 나아지는 등 수입이 나아지자, 자식들 가운데에서 그래도 ‘똘똘한’ 녀석 하나만이라도 4년제 대학에 보내어야겠다고, 가족의, 가문의 중흥을(?) 위해서서라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뽑은(?) 아홉째 자식입니다.
그러한 그는 어느 국립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러한데 그는 총 8학기 동안 ‘등록금전면장학생’ 등으로 졸업을 하고, 어렵사리 그 당시 최고로 나가던 어느 국영기업체 초급사원에, 300:1 경쟁으로, 그것도 1기생으로, 공개채용으로 입사를 하여 4반세기 ‘큰 탈 없이’ 돈벌이하다가 명예퇴직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그는 40대 중반에 이미 은퇴를 준비하며, 자기가 살고 있는 ‘경산’의 골골을 발품 팔아 작은 농토를 구입하게 이르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 손수 농막도 짓게 됩니다. 그는 해마다 자기의 그 볼품없는(?) 농토의 굵은 돌을 주워내는 등 매만져 정성을 깃들입니다.
그러한 세월이 20여 년. 그의 헛간 선반에는 조선낫과 왜낫이 29자루. 물론, 그가 그 동안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면서 쓰레기장에 입주민들이 쓸모없다며 내다버린 낫들을 주워온 예도 있겠으나... .
그는 그 낫들을 그 많은 종류의 숫돌로 갈아서 썼을 터. ‘중숫돌’, ‘가는 숫돌’ 하면서요. 해서, 그 낫들 29자루는 저마다 사연이 있었을 거 아닙니까?
다들 그러하겠지만, 그도 자기 손에 익은 낫만을 골라 즐겨 썼을 것은 뻔한 이치. 그러다 보니 낫의 ‘슴베(낯짝)’가 닳을 대로 닳는 것, 낫의 ‘꼴띠(낫자루의 목에 감은 가락지)’가 터진 것, 낫의 이빨이 빠진 것, 녹슬어 아예 외면한 것 등.
하여간, 제발 더 이상은 그를 가까이하지마시기를. 그는 감히 남들이 행하지 못한 짓을, 한평생 농사꾼이었던 그의 양친도 행하지 못한 일을, 오늘 고작 30여분 만에 깔끔하게 마무리했으니까요. 그는 헛간 선반에 진열된(?) 그 29자루의 낫들한테 모조리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줬다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이번에는 그 많은 종류의 숫돌 대신으로, ‘전동그라인더’로 말이지요. 낫들은 저마다, 자기 주인이었던 그의 추억과 함께, 서슬 퍼렇게 갈리더군요. 녹슬 대로 녹슬었던 낫들마저 제대로 된 낫으로 쓸모있게 새 생명을 얻더라고요.
제발 그를 가까이하지마세요. 그는 참으로 무서운 사람인 걸요. 그는 자기의 녹슬었던 65여 년 세월마저 ‘전동 그라인더’로 그처럼 서슬 퍼렇게 가는 사람이던 걸요.
그 광경을 곁에서 잠자코 지켜보던 수필작가 윤근택이가 다 탄복했다는 거 아닙니까? 탄식했다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 나는 수필작가로 데뷔한 지가 32년째 되고, 그 동안의 습작 편수만 하여도 3,000편 내지 4,000편 되건만, 낫 29자루를 단박에 그처럼 새파랗게 가는[練磨] 그의 신통한 재주를 왜 여태몰랐던고?”
작가의 말)
사실 이 짧은 글이 제 대표작이었으면 해요. 수필작가로 데뷔한 지 32년째 되고, 그 동안 창작한 글도 무수하지만, 그 세월과 그 작품들은 한낱 허접한 걸로만 여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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