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뿌리[葛根]를 캐며(3) - ‘채갈(采葛)’과‘서동요(薯童謠)’-
칡뿌리[葛根]를 캐며(3)
- ‘채갈(采葛)’과‘서동요(薯童謠)’-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작가의 말)
* 이 글은 뒷날, 먼 뒷날 ‘줄리엣’이 그의 손주를 맞은편에 앉혀놓고 들려주는 동화다. 전설이다. 내 사랑하는 애독자님들도 ‘줄리엣’처럼 하였으면 참 좋겠다. 나는 ‘나무난로 앞에서’ 연작수필을 100편 이상 적어오고 있다. 그 연작은 오지도 않은 미래의 외손주 ‘으뜸’이와 나무난로 앞에서 나누는 노변담화. 이번은 시계바늘을 향후 10~20년 후로 꿰맞추고, 제 삼자인 ‘줄리엣(가명)’이 자기 손주한테 들려주는 방식을 취택.
그 배경음악은 ‘아이작 알베니스’의 ‘전설(Asturias;아스투리아스;스페인 조곡). 이 연작물을 끝낼 때까지 이 곡만 내내 들으리.
여기를 클릭하시면, 음악 열려요.
https://blog.naver.com/hssn2710/220579170278
이 할미가 지난번에 니한테 들려주려다 미룬 ‘채갈(采葛)’과‘서동요(薯童謠)’두 시에 관해 마저 들려주려 해. 그리고서 다음 이야기로 이어가려 해.
우선, ‘采葛(채갈)’이란 시야.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의 유래이기도 한 시. 그는 이 시를 읊으며 내내 이 할미를 생각했대. <<詩經>> <王風篇>에 나오는 ‘采葛(채갈)’이란 시.
彼采葛兮 一日不見 如三秋兮(칡을 캐고 있는 그대여, 하루라도 그대를 보지 못하면 석 달 동안이나 못 본 듯 그리워지네)
彼采蕭兮 一日不見 如三秋兮(쑥을 캐고 있는 그대여, 하루라도 그대를 보지 못하면 아홉 달 동안 못 본 듯 그리워지네)
彼采艾兮 一日不見 如三秋兮(약쑥을 캐고 있는 그대여, 하루라도 그대를 보지 못하면 삼년을 못 본 듯 그리워지네)
사실 이 할미는 그를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다고 하지 않던? 그러했음에도 그는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칡을 캐는 내내 이 할미를 그리워했대. 하기야 이 할미가 그때에는 쪼그랑바가지가 아니었겠지만.
다음은 ‘서동요(薯童謠)’야. 백제의 제30대 왕인, 무왕은 왕이 되기 전 마를 캐서 파는 가난뱅이였어. 그래서 사람들은 ‘마를 캐서 파는 아이’라는 의미로 그를 ‘서동(薯童 )’이라고 불렀지.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 공주가 몹시 예쁘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선화 공주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어. 그리고 신라로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공짜로 나눠 주며, 노래를 가르쳐 주었지.
“선화공주님은(善花公主主隱) 남몰래 사귀어 두고(他密只嫁良置古) 서동방을(薯童房乙) 밤에 뭘 안고 가다(夜矣 夗[卯]乙抱遣去如).”“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마침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어. 화가 난 왕은 선화 공주를 궁에서 쫓아냈어. 그래도 왕비는 선화 공주를 불쌍히 여겨 황금을 한 보따리 내주었대.
쫓겨난 선화 공주 앞에 마침내 서동이 나타났지. 그는 숨어서 그때만을 기다린 거야.
“저는 백제의 가난한 백성 서동입니다. 공주님과 결혼하고 싶어서 거짓 노래를 그렇게 퍼뜨렸습니다. 용서하시고 저와 결혼해 주세요.”
선화 공주는 용기 있고 지혜로운 서동과 결혼하기로 했어.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금덩이를 서동에게 주었어.
“이제 마는 그만 캐고, 이 황금을 팔아 집과 땅을 사서 농사를 짓도록 하세요.”
선화공주가 보여주는 황금을 보던 서동이 말했어.
“하하하, 이런 돌이라면 제가 마를 캐던 금오산에 산처럼 모아 두었는 걸요.”
서동은 선화 공주를 데리고 금오산으로 갔어. 서동의 말대로 금오산에는 황금이 무척 많았단다.
“당신께서 이 황금을 신라의 궁에 보내면 왕실의 사위로 인정받을 수 있어요.”
황금을 진상받은 신라의 왕실은 크게 기뻐하며 서동을 사위로 삼았대. 그 뒤, 서동은 지혜로운 선화 공주의 도움으로 덕을 쌓아 백제의 왕(무왕)까지 되었단다.
이 할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손주 녀석이 무척 안타까이 말한다.
“한머니, 근데(그런데) 그때 경산에 사셨다는 그 할아버지 말이야. ‘마’가 아닌 ‘칡뿌리’를 캐는 내내 한머니를 그리워했다지만, 둘 다 임자가 이미 각각 있었던 걸.”
옳은 말이다. 그가 칡뿌리를 해마다 겨우내 그렇게 캐어도, 끝끝내 이 할미와는 맺어질 수는 없는 사이였던 걸. 다만, 수필작가와 시인으로 서 오래도록 서로의 가슴 속에 남아 있기를.
언제였던가, 이 할미가 어느 중앙지 신춘문예에 ‘신앙시’로 당선되어 시상식에 간다고 문자 메시지를 그에게 남긴 일이 있어. 그랬더니 그가 ‘축하!’라는 외마디 축하 문자를 보내왔어. 조금 있다니까, 그가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내온 거야.
‘이런 날엔 ‘로랜스 반 루이옌’의 연주곡이 딱 어울리는데요. ‘ Flowers for a lady’말입니다. 얼마 아니 있어 아실 터.’
그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읽고서 막 시상식에 가려고 현관문을 여는데, 택배기사가 왔어.
“줄리엣씨, 꽃바구니 전보에요. 윤근택 작가로부터 온 당선축하 전보인 걸요. ”
이 할미는 그러한 그의 이벤트를 감히 생각도 못했어.
어디 거기서 끝난 줄 아니? 시상식에 다녀오던 이 할미는, 니 고모가 모는 승용차 조수석에서 그의 문자 메시지를 또 받게 되었거든.
‘오늘의 이벤트는 이처럼 입체적이었어요. 축하의 말 - 축하 꽃바구니 전보 - 축하 음악 (‘ Flowers for a lady’ 링크) - 제 마음과 같은 제목의 음악( 데이비드 가렛 바이올린 연주 + 니콜 세르징거의 목소리. 괴테의 시에다 이태리어 가사로 된 곡을 입힌 것으로 링크 .)’
덧붙이자면, 그때 그가 자기 마음과 같은 제목의 곡이라고 한 것은 ‘나 그대만 생각해, 내 사랑’이였어.‘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의 생애’를 다룬 영화의 삽입곡이었어. 이 할미는 그 삽입곡을 들을 적마다 아직도 그를 생각하는 걸. 재치롭기도 하고 개구쟁이같기도 했던 그. 그는 나이답지 않게 소년처럼 이 할미를 대해주었다는 거 아니니. 그런 점이 그를 이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하면 서러워 여길 수준의 수필작가로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어.
언젠가 한 번은 이 할미가 전화상으로 짓궂게 질문을 한 적 있어.
“윤 작가님께서는 이 소녀를 왜 무턱대고 예삐 봐주신대요?”
그랬더니, 그가 화답했어.
“님과 저는 각각 개신교 교인과 천주교 교인이지요. 하지만 그 교리는 똑 같지요. 하나님(하느님)께서는 그 많은 나라, 그 많은 고을을 두고서도 하필이면 이슬라엘 작은 향리(鄕里) 베들레헴에서 예수님을 태어나시게 하셨다지않던가요? 그건 오롯이 하느님 마음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마찬가지인 걸요. 제가 님을 사랑하는 것은 제 마음인 걸요. 굳이 더 보탠다면, 님은 제게 끊임없는 문학적 영감과 모티브를 주시는 분이시기에요. ”
(다음 호 계속)
(창작 후기)
이번에는 데이비드 가렛의 바이올린과 니콜 세르징거의 음성으로 만들어진 ‘나 그대만 생각해,내 사랑’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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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호 이야기 또 기다려주세요.
사실 저는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 ‘대롱’ 등 여러 연작 수필을 엮어왔다는 거 잘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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