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7) -헌정(獻呈) 또는 헌사(獻詞)를 한 작곡가들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67)
- 헌정(獻呈) 또는 헌사(獻詞)를 한 작곡가들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음악가들 가운데에는 어느 분한테 헌정 또는 헌사하기 위해 곡을 작곡한 이들이 많다. 그 가운데서도 내가 평소 알고 지내는 몇 몇 작곡가를 소개코자 한다. 무순(無順)이다.
1. 슈만의 ‘헌정(Widmung)’
본인의 수필 ‘미르테(myrtaie)의 꽃’ 첫 단락을 따다붙이는 것으로 갈음한다.
<나는 지금 슈만의 연가곡 <미르테의 꽃; Myrthen Op.25> 가운에서 제 1곡인 ‘헌정(Widmung)’을 듣고 있다. 그는 상심에 빠져 작품활동을 아니 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클라라’와 결혼승낙을 스승으로부터 받았고, 26개의 가곡으로 이뤄진 연가곡을 짓게 되는데, 그 가운데에 ‘헌정’을 클라라한테 결혼선물로 결혼 ‘안날에’ 헌정했다는 거 아닌가. 그가 얼마나 클라라를 사랑했으면, 이러한 열정적인 음악을 만들었겠는가. ‘헌정’은 ‘뤼케르트’의 시를 가사로 한 노래. 연인에 대한 열정과 진실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2. 브람스의 ‘현악6중주곡 1번 제 2악장’
제 1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수필,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4)’의 일부를 따다 붙인다.
<후세사람들은 그 곡의 제2악장에다 ‘브람스의 눈물’이란 부제(副題)를 붙여두었음을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이 또한 얼마나 무식한 소치(所致)냐고?
살펴본즉,내용은 이러하다.
1833년 독일에서 태어난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그는 한낱 이름없는 음악인에 불과했다.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는 20세의 브람스를 바이올리니스트 요하임의 소개로 알게 된다. 자기네 집에 2년 여 묵게도 한다. 한편, 슈만 내외는 그의 빼어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이리저리 다리를 놓아준다. 그리하여 브람스는 슈만을 한평생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슈만의 아내 클라라. 사실 그녀의 그때 사진은 내가 봐도 반할만하다. 그녀는 연주회를 통해 브람스의 피아노곡을 연주함으로써 그를 세상에 알리게 된다. 클라라는 브람스보다 14살 연상. 브람스는 스승의 아내 클라라한테 연정(戀情)을 품는다. 그리하여 26세가 되던 해부터 그 이듬해까지 클라라를 사모하는 정을 담은 현악6중주곡을 적게 되고, 제2악장을 피아노 3중주곡으로도 편곡하게 된다. 그리고는 그녀가 34돌 생일을 맞는 날 그 곡을 헌정하게 된다. 한편, 브람스는 양다리를(?)를 걸친다. 31세가 되던 해 ‘아가테 지볼트’라는 아가씨를 사모하여 약혼까지 하게 된다. 그러나 자유를 위해 단념하는 대신, 그녀를 위해 현악 6중주곡 2번을 적게 된다. 그 곡을 후세사람들은 ‘아가테 협주곡’이라고 부르게 된다. 요컨대, 현악6중주곡 제1번은 클라라를 위해, 제2번은 아가테를 위해 적은 곡이다. 고백컨대, 수필작가인 나도 이러한 경우가 허다했다. 크게 드러내 말은 아니 했으나,그 많은 수필작품들 가운데는 특정여성이 모델이 된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지금에 와서 이런저런 휴유증(?)을 많이도 낳았지만… . 어쨌거나, 브람스는 가슴 속에 두 여인을 품고, 실연(失戀)의 상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번민하면서 위 두 협주곡을 적은 것만은 분명하다.>
3. 호아킨 로드리고의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 제 2악장’
이 또한 본인의 수필,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 일부를 따다붙이는 것으로 갈음한다.
<이제 잠시 미루어두었던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Fantasia para un Gentilhombre)’ 이야기를 마저 들려드려야겠다. 그가 61세가 되던 1954년,그는 같은 나라 출신이며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이고 작곡가였던 안드레스 세고비아(Andres Segovia, 1893~1987)에게 헌정코자 그 곡을 적었다고 알려진다. 하지만, 작품명에 나오는 ‘귀인’은 정작 세고비아가 아닌 이였단다. 그 귀인이란, 바로 가스파르 산츠(Gaspar Sanz)라고 알려져 있다. 산츠는 17세기 에스파냐(스페인의 옛 이름)의 기타연주자이자 작곡가였단다. 산츠가 작곡한 그 유명한 기타 곡은 ‘에스파뇨레타(Espanoleta)’이며, 이를 풀이하면 ‘에스파냐풍(- 風)’ 또는 ‘에스파냐풍으로’가 된다고 한다. 로드리고는 평소 산츠를 너무도 존경했고, 그의 곡 ‘에스파뇨레타’도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그 곡을 교묘히 원용(援用)하여 작곡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이다. 4악장으로 구성된 그 곡. 특히 제2악장은 산츠의 그 곡에 흐르는 주제를 그대로 쓰게 된다. 심지어 제2악장의 부제(副題)에도 ‘Espanoleta’라는 말이 그대로 쓰여 있다. 이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은, 위에서 소개한 ‘아랑훼즈 협주곡’과 더불어 로드리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로드리고는 이 곡도 남한테 헌정하기 위해 적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대상이 1차적으로는 세고비아였지만, 2차적으로는 이미 수 세기 전 자신과 같은 나라에서 살다가 간 산츠였다. 나는 자료를 통해, 로드리고가 이들 두 곡 외에도 곡을 적을 때마다 어느 특정인을 그리워했으며 그를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었다.>
4. 커트 베스터(Kurt Bestor) 의 Stradivarius(스트라디바리우스)
본인의 수필,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32)’은 ‘세계적인 예술가, 발명가 등에게 헌사(獻詞)를 바친 뮤지션’이란 부제가 붙어 있고,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상략)그는 미국 위스콘신 주에서 1958년에 태어났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족의 음악적 세례를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중략)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 발명가, 운동선수 등에게 헌사(獻詞)로서 곡을 쓰고 연주한 게 많다는 점이다. (중략) 세상에 영향을 미친 천재적인 예술가, 발명가, 소설가 등 실존 인물들에게 바쳐진 헌사들이다. 전주 부분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이 인상적인 ‘Stradivarius’는 위대한 바이올린 제작의 장인(匠人)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바이올린을 제작할 때 그렸던 밑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이며 ‘Mama Don’t You Weep‘는 한 때 노예였고 시민권과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던 소조너 트루스(Sojourner Truth)에 바치는 곡이다. (중략) ‘커트 베스터’가 시공(時空)을 초월해, 명품 바이올린을 만들었던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한테 바친 동일이름의 그 연주곡은 두고두고 내 심금을 울릴 테니... .>
5. ‘스비리도프(1915~1998, 러시아)’의 ‘올드 로망스’
그는 푸시킨을 비롯한 러시아 문학인들을 늘 존경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문학인들을 위한 곡도 많이 적었다는데... .
1964년 푸시킨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그의 원작 단편소설 ‘눈보라’를 텍스트로 만든 동일 이름의 영화에 영화음악을 담당하여 ‘올드 로망스’를 적게 된다. 푸시킨한테 헌정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잠시. 그 ‘눈보라’의 내용이다. 부모의 반대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찾아 나선 마리아는 사랑하는 청년 장교 브라디미르를 어느 교회에서 만나 비밀 결혼식을 갖고자 한다. 마리아는 이미 도착해 초조히 기다리고, 청년은 20분이면 도착할 지척의 거리임에도, 이미 2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하였으나, 눈보라로 인하여 길을 잃고 헤매다 이미 날을 새 버리고... . 엇갈린 운명으로 1812년 브라디미르는 나폴레옹 전장에 차출되어 전사하고마는 ... . 그런 가운데에서 마리아는 지난 날 아름다웠던 로망스를 회상하는 ‘올드 로망스’. 이 수필작가를 밤 내내 ‘거듭듣기’로 눈물 흘리게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연주는 가슴을 울리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다섯 작곡가들 외에도 사실 많은 작곡가들이 선배 작곡가나 친구 작곡가 또는 연인한테 헌정 내지 헌사로 바친 곡들이 많지만 줄이기로 한다.
대신, 수필작가인 나도 위 작곡가들처럼 앞으로는 특정인한테 헌정키 위한 작품을 더 많이 적어야겠다는 다짐을 하여본다. 사실 내가 알고 지내는 어느 여류 시인은, 러시아와 일본을 8년 여 발품팔아, 숨어있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역사 기행수필집을 여러 권 내었다. 그는 편편마다 그 기행수필 말미에다 그분들께 낱낱이 시를 적어 헌정하고 있었다. 내가 이래저래 짐짓 그의 속을 썩여왔으나, 사랑스럽고 존경스럽다.
그 ‘죄밑’으로라도 이 글을, 졸속으로나마 적은 이 글을 그에게 헌정토록 한다. 더 늦기 전에.
스비리도프의 ‘올드 로망스’ 거듭 듣기)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연주로 ‘올드 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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