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72) - 음악작품 일련번호에 관해 -
제 2신)
위 수신인 가운데에서 '호수'님, 다시 한 번 죄송.
작품번호도 틀렸고 하여서요.
본문 더 보완할 게 있어서, 고쳐서 재전송하오니... .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72)
- 음악작품 일련번호에 관해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선, 음악과 직접적 관련이 없을 듯한 이야기부터 하고자 한다. 나의 또 다른 수필작품인 ‘식별에 관해’의 일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상략) 분류란, 수목(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걸 일컫는다. 다들 알다시피, 분류의 계제(階梯; stage; step)는 ‘문>강>목>과>속>종’이다. 분류의 대가(大家)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스웨덴)’. 그는 이른바 이명명법(二命名法,이를 ‘학명’이라고도 한다.)을 창안했다. (중략) 덤으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린네의 흥미로운 일화(逸話)를 들려 드리겠다. 그는 식물이름 최초 명명자를, 하도 많아,‘Linne’로만 모조리 쓰지 않았다는 사실. 자신한테 평소 인심 써준, 이웃들의 이름도 최초 명명자로 종종 넣어줬다고 한다.(하략)>
린네는 본디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의학 학사학위를 받았음에도, 인류 최초로 식물계·동물계·광물계 분류체계를 확립했다. 린네와 마찬가지로, 식물학자 겸 광물학자였던 어떤 이가 모차르트 사후(死後), 그의 작품들에다, 대중들이 식별하기 쉽게, 제 626번까지 번호를 매긴 일이 있다면? 물론, 이미 내가 위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식물학자 겸 광물학자이기도 하였지만, 모차르트의 작품 연구에도 몰두하였던 이다. 그가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 ‘루드비히 폰 쾨헬’. 그는 자기 이름의 두문자인 ‘K’를 붙여, 그 짧은 삶을 누리고 간 모차르트 작품들에 번호를 차례차례 매겨 정리하였다. 가령,‘K626’이면, 읽기를 “쾨헬번호 626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라디오 등에서 ‘쾨헬번호 ?번’이라고 소개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차르트 작품임을 이 시간 이후부터 알면 된다. 35세 나이로 요절한 모차르트가, 쾨헬이 찾아낸 곡만 하여도 626곡이라니... .
쾨헬만이 그러한 작업을 한 게 아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작품은 ‘BWV[Bach werke verzeichnis;바흐 베르케 페어차이히니스(‘Bach work category’란 뜻임.)’다. ‘볼프강 슈미더’가 정리하였다.‘BWV1120’까지 있다. 사실 한평생 자기 고국 독일에서, 한 교회를 떠나지 않고, ‘칸토르’ 즉, 음악장으로 지낸 그는 작품을 1,120편씩이나 적어낸 셈. 300여 년 동안 가문의 음악적 내림. 게다가, 전처 소생, 후처 소생 포함해서 18명의 자제들 모두한테 음악적 자산을 물려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음정에 관한 사항임. 사실 조선조 ‘박연’은 바흐보다 200여 년 먼저 음정을, 세종대왕과 논의하며 ‘편경’을 만들었다.)’도 대단하고... .
헨델의 작품은 ‘HWV’다. ‘베른트 바젤트’가 붙였다. 그는 위 ‘볼프강 슈미더’와 달리, 자기 이름 두문자를 쓰지 않고, ‘헨델’의 두문자 ‘H’를 그대로 썼다.
슈베르트 작품은 ‘D’다. ‘오토에리히 도이치’가 자기이름 ‘D’를 붙여서. ‘ 도이치 번호 998’까지 있다. 도이치는 슈베르트의 작곡순서별로 번호를 매겼다. 31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슈베르트가, ‘도이치’가 찾아낸 대로 998 곡을 적었다는 것도 기적이고... .
하이든의 작품은 ‘Hob’다. 네덜란드‘안토니 판 호보켄’이 정리했고, “호보켄 ?번.”이라고 읽게 되며, 장르별로 그 번호가 다르다.
비발디의 작품은 ‘Rv’. “리용번호 ?번.”라고 읽는다.
이밖에도 20여 음악 학자 내지 음악연구가들이, 그가 평소 존경하는(?) 작곡가들 사후에 나름대로 독특한 작품번호를 붙였다.
음악에 관한 한 문외한인 이 농부 수필가. 젠체하고자 이 글을 적고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위에 소개한 작곡자들은 ‘표제음악’이 아닌, ‘절대음악’을 줄곧 추구했다. 즉, ‘음악에서 특정한 이미지나 상징적 의미를 표출하려고 하지 않고 오로지 음과 음의 관계와 조합을 통한 순수한 음악적 예술성을 추구하려’ 하였다. 게다가, 살아생전 본인들도 다 외우지 못할 만치의 작품을 빚었던 분들이다. 위대한 예술인들이었다. 그래서 뒷날 뜻있는 이들이 그처럼 정성들여 정리하며 번호를 매겨나갔다는 걸.
그런데 수필작가 윤근택한테는 그 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던가. 철없고 멋모르던 30대 초반에 어느 문학잡지로 수필문단에 데뷔하였고, 남들처럼 철딱서니 없이 두 권의 종이책 수필집을 연속적으로 만든 예가 있다. 돌이켜본즉, <독도로 가는 길>은 1996년에, <이슬아지>는 그로부터 3년 후인 1999년에. 2022년 현재 기준으로, ‘뒷 것’을 기준하면 23년 전 일이다. 내 나이로는 40대 초반의 일. 그 이후에도 마구 신들린(?) 듯 적어온 수필작품이 3,000~4,000편은 될 터인데, 종이책으로 따지면 50여 권 분량은 될 터인데... . 이젠, ‘피카소의 청색시대’니 뭐니 하는 시대구분도 아니 되고, 장르구분도 아니 되는 내 귀여운 새끼들(?). 개인 블로그 등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젠 내가 싸질러놓은(?) 새끼들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다.
해서, 나름대로 꾀를 내어, 나는 그 동안 임자를(?) 찾고 있었다. 활자화가 더 안전할 거라 여기며. ‘학자적인 이’ 혹은 ‘학구적인 이’가, 그 다양한 장르의 윤근택 수필작가의 글을 재해석하고, 위 음악 연구가들처럼, 시대구분이든 장르구분이든 작업을 꾸준히 해주길 바랐다. 속된 표현으로, 돈이 얼마 들든지 상관없이. 사실 한 분이 있긴 하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그와 협업을(?) 더는 할 수 없게 이르렀다. 놓쳤다. 놓아주었다. 이제 내 마지막 희망은 작은딸, ‘윤 미카엘라 한국어 석사님’인데... . 그는 몇 몇 대학에서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인데, 도통 맘을 열어주지 않고 있으니... . 그가 ‘부녀지간’의 관계를 훨씬 뛰어넘어, 고스란히 수필작가 혹은 예술가 윤근택의 작품으로만, 열린 가슴으로 받아주어 ‘문체 연구’ 등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 사실 부녀가 가는 길이 이젠 엇비슷하건만... . 이참에 ‘연구 활동비’ 명목으로 다달 용돈을 부쳐주면 그 마음 열어주려나. 그의 반응 상관없이 이번 달부터 내 급여일에 맞춰 그리할 요량이다.
그가 마음을 열어, ‘M?(미카엘라 넘버 ?)’하면서, 이 애비의 수필작품에다, 아니 이 농부 수필작가의 수필작품에다 장르별로 번호를 매겨나갔으면 얼마나 좋으리.
* 그리고 이 글도 님께 바쳐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제 1신)
제 개인 블로그, '이슬아지' 새롭게 단정했어요.
제 아내 '차 마리아'님께서 자기가 가꾸는 '시크릿가든'의 꽃 사진.
어느 컴퓨터 전문가한테 의뢰해서 계속 새롭게 올릴 겁니다.
부디, 아름다운 나날!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71)
- 음악작품 일련번호에 관해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우선, 음악과 직접적 관련이 없을 듯한 이야기부터 하고자 한다. 나의 또 다른 수필작품인 ‘식별에 관해’의 일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상략) 분류란, 수목(사물)을 종류에 따라 가르는 걸 일컫는다. 다들 알다시피, 분류의 계제(階梯; stage; step)는 ‘문>강>목>과>속>종’이다. 분류의 대가(大家)는 린네(Carl von Linn'e,1707~1778,스웨덴). 그는 이른바 이명명법(二命名法,이를 ‘학명’이라고도 한다.)을 창안했다. (중략) 덤으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린네의 흥미로운 일화(逸話)를 들려 드리겠다. 그는 식물이름 최초 명명자를, 하도 많아‘Linne’로만 모조리 쓰지 않았다는 사실. 자신한테 평소 인심 써준, 이웃들의 이름도 최초 명명자로 종종 넣어줬다고 한다.(하략)>
린네는 본디 스웨덴 ‘웁살라대학교’에서 의학 학사학위를 받았음에도, 인류 최초로 식물계·동물계·광물계 분류체계를 확립했다. 린네와 마찬가지로, 식물학자 겸 광물학자였던 어떤 이가 모차르트 사후(死後), 그의 작품들에다, 대중들이 알아듣기 쉽게, 제 626번까지 번호를 매긴 일이 있다면? 물론, 이미 내가 위에서 이야기했듯, 그는 식물학자 겸 광물학자이기도 하였지만, 모차르트의 작품 연구에 몰두하였던 이다. 그가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 ‘루드비히 폰 쾨헬’. 그는 자기 이름의 두문자인 ‘K’를 붙여, 그 짧은 삶을 누리고 간 모차르트 작품들에 번호를 차례차례 매겨 정리하였다. 가령,‘K626’이면, 읽기를 “쾨헬번호 626번.”.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라디오 등에서 ‘쾨헬번호 ?번’이라고 소개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모차르트 작품임을 이 시간 이후부터 알면 된다.
쾨헬만이 그러한 작업을 한 게 아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작품은 ‘BWV[Bach werke verzeichnis;바흐 베르케 페어차이히니스(‘Bach work category’란 뜻임.)’다. ‘볼프강 슈미더’가 정리하였다.‘BWV1120’까지 있다.
헨델의 작품은 ‘HWV’다. ‘베른트 바젤트’가 붙였다. 그는 위 ‘볼프강 슈미더’와 달리, 자기 이름 두문자를 쓰지 않고, ‘헨델’의 두문자 ‘H’를 그대로 썼다.
슈베르트 작품은 ‘D’다. ‘오토에리히 도이치’가 자기이름 ‘D’를 붙여서. ‘ 도이치 번호 998’까지 있다. 도이치는 슈베르트의 작곡순서별로 번호를 매겼다.
하이든의 작품은 ‘Hob’다. 네덜란드‘안토니 판 호보켄’이 정리했고, “호보켄 ?번.”이라고 읽게 되며, 장르별로 그 번호가 다르다.
비발디의 작품은 ‘Rv’. “리용번호?번.”라고 읽는다.
이밖에도 20여 음악 학자 내지 음악연구가들이, 그가 평소 존경하는(?) 작곡가들 사후에 나름대로 독특한 작품번호를 붙였다.
음악에 관한 한 문외한인 이 농부 수필가. 젠체하고자 이 글을 적고 있을 리 만무하다. 사실 위에 소개한 작곡자들은 ‘표제음악’이 아닌, ‘절대음악’을 줄곧 추구했던 데다가, 살아생전 본인들도 다 외우지 못할 만치의 작품을 빚었던 분들. 위대한 예술인들이었다. 그래서 후세 뜻있는 이들이 그처럼 정성들여 정리하며 번호를 매겨나갔다는 걸.
그런데 수필작가 윤근택한테는 그 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던가. 철없고 멋모르던 30대 초반에 어느 문학잡지로 수필문단에 데뷔하였고, 철딱서니 없이 두 권의 종이책 수필집을 연속적으로 만든 예가 있다. 돌이켜본즉, <독도로 가는 길>은 1996년에, <이슬아지>는 그로부터 3년 후인 1999년에. 2022년 현재 기준으로 23년 전 일이다. 내 나이로는 40대 초반의 일. 그 이후에도 마구 신들린(?) 듯 적어온 수필작품이 3,000~4,000편은 될 터인데, 종이책으로 따지면 50여 권 분량은 될 터인데... . 이젠 시대구분도 아니 되고, 장르구분도 아니 되는 내 귀여운 새끼들(?). 개인 블로그 등에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젠 내가 싸질러놓은(?) 새끼들 이름도 다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다.
해서, 나름대로 꾀를 내어, 나는 그 동안 임자를(?) 찾고 있었다. 활자화가 더 안전할 거라 여기며. 학자적인 이 혹은 학구적인 이가, 그 다양한 장르의 윤근택 수필작가의 글을 재해석하고, 위 음악 연구가들처럼, 시대구분이든 장르구분이든 작업을 꾸준히 해주길 바랐다. 사실 한 분이 있긴 하였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뜻하지 않게 그와 협업을(?) 더는 할 수 없게 이르렀다. 놓쳤다. 놓아주었다. 이제 내 마지막 희망은 작은딸, ‘윤 미카엘라 한국어 석사님’인데... . 그는 몇 몇 대학에서 외국인들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인데, 도통 맘을 열어주지 않고 있으니... . 그가 ‘부녀지간’의 관계를 훨씬 뛰어넘어, 고스란히 수필작가 혹은 예술가 윤근택의 작품으로만 열린 가슴으로 받아주어 ‘문체 연구’ 등을 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만... . 사실 부녀가 가는 길이 이젠 엇비슷하건만... . 이참에 ‘연구 활동비’ 명목으로 다달 용돈을 부쳐주면 그 마음 열어주려나.
그가 마음을 열어, ‘M?(미카엘라 넘버 ?)’하면서, 이 애비의 수필작품에다, 아니 이 농부 수필작가의 수필작품에다 장르별로 번호를 매겨나갔으면 얼마나 좋으리.
* 그리고 이 글도 님께 바쳐요.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