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8) -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자 완성자 -

윤근택 2022. 8. 4. 13:59

하여간,

제 음악공부는 끝까지 어어갑니다.

제 음악 이야기는 곧  '미술' 이야기도 이어가도록 하는군요.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8)

                                                          -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이자 완성자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 이 글은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6)’,‘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97)’에 못다 적은, ‘클로드 드뷔시’ 이야기다.

 

 

 

   6. <<라 메르(La Mer;바다 - 세 개의 교향적 소묘>>

 

   

    지지난 번 제 96화에 이어 제 97화는 ‘클로드 드뷔시’에 관해 적었다. 유일무이한 ‘상징주의 음악인’에 관한 사항이었다.

   드뷔시, 그는 33세였던 1905년에 초판 출간한<<La Mer(바다>>의 악보 표지에다 일본의 전설적인 목판화가, ‘가스시카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葛飾北齋,1760~1849)’의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라는 작품을 실었다. 그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는 ‘호쿠사이’의 걸작인 <<후지산 36경>> 가운데서도 걸작으로 꼽히는 첫 작품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서양에서 도입된 ‘프러시안 블루(blue de pruse)’ 안료로 채색된 판화. 게다가, 이미 서양 화단에서 채택했던 원근법이 차용된 그림. 어디 그뿐인가. 네덜란드 화풍(畫風)을 따른 작품.

   당시 70대였던 ‘호쿠사이’가 1830년 즈음에 판화로 찍어낸 그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는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한테 영감을 주어, ‘인상주의 화파’ 태동에 밑거름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미술사학자들도 있다. 또한, 그 판화는 ‘멜라르메’ 시인으로 대표되는 ‘상징주의 문학’의 바탕이 되었다고도 한다. 음악인으로서는 유일하게 그들 화가들 및 시인들과 정기적인 교류를 가졌던 드뷔시. 그도 그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에 영감을 얻어, 관현악곡인 <<La Mer(바다>>를 작곡함으로써 33세 나이에 ‘인상주의 음악’의 창시자 겸 완성자가 되었으니... .

   잠시.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드릴 말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는 그 동안 미뤄뒀던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  연작물 제 21화에 따로 적어 보여드리기로 한다.

   다시 드뷔시 이야기. 드뷔시는 정작 그 작품을 바닷가에서 적은 게 아니라, 내륙의 첫 아내 댁에서, 첫 아내를 내팽겨서(?), 권총자살 소동까지 일으킨 후, 새로 얻은 아내와 머무르는 동안 적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그 한 점의 일본 판화를 보고, 순전히 상상에 의존하여 작품을 적었노라고 술회한다. 예술가한테 영감이란 게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실감하게 된다. 사실 수필작가인 나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작품 <<La Mer(바다>>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악보에다 각각 부제를 붙였다.

 

 

   제 1부 : 바다 위의 새벽에서 정오까지

   제 2부 : 파도의 유희

   제 3부 : 바람과 바다의 대화

 

 

   그 구성만 보더라도, 음악에 관한 한 문외한인 나도 금세 느끼게 된다. 풍경화이되, 한 폭의 그림이 아닌 여러 폭의 풍경화다. 숫제 영상물이다. 시(詩)이되, 한 편의 시가 아닌 연작시이다. 특히, 나는 젊은 날 자원(自願)해서 울릉 2년, 영덕 1년, 울진 1년 총 4년간 물편 근무지에서 지냈다. 해서, 변화무쌍한 바다의 풍경을 제법 아는 터. 물론, 드뷔시도 과거 언젠가는 바닷가에서 지내면서, 바다가 지어내는 ‘태고(太古)의 목소리’를 그처럼 들었을 수도 있겠거니. 아니면, 그는 대양(大洋)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그처럼 ‘귀로 듣는 풍경화’로 빚었을 수도 있고.  그 점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다. 달랑 한 장의 목판화를 보고서, 그처럼 섬세하고 웅장하며 변화무쌍한 선율로, 그가 초창기 신봉했던 후기 낭만파 음악인 ‘바그너’에 반발하며(?) 또 다른 종류의 음악을, 풍경화로 그려낼 수 있었다니! 내가 이 글 완성도를 높이고자 읽은 미술평론가, ‘정윤희’의 ‘시를 유영하는 그림, 그림 속 파도치는 선율’이란 글. 거기서 정윤희 미술평론가는 정곡을 꿰뚫고 있었다. 정윤희 평론가는, 드뷔시가 초판 악보 표지에다 거대한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를 실은 것은, 새로운 거대한 파도 즉, 새로운 음악사조를 열겠다는 의지가 담긴 거라고 적고 있다. 그녀의 안목 또한 대단하다. 그리고 내가 한 번도 만난 적도 없는 그녀. 그녀는 ‘호쿠사이’와 ‘모네’를 비롯한 일군(一群)의 인상파 화가들과 ‘멜라르메’를 중심으로 한 상징주의 시인들과의 상관관계를,‘공통분모’ 두 개로 정확히 파악하는 듯하였다. 한마디로, 그녀의 논조는 명쾌하기만 하였다. 나의 글이 너무 길어질세라, 그녀가 적은 평론은 생략. 하더라도, 내가 굳이 그녀의 그 글에 덧붙이고 싶다면 이 말 하나는 분명 있다.

  “세상에, 하늘에서 거저 떨어진 위인은 없습니다. 서로 인간관계에서, 서로 '상호관계'에서 예술도 발전해가는 모양입니다.”

   이 말로써, 미술평론가 정윤희 선생한테 화답(和答).

   참고적으로, 위 3부로 구성된 그의 작품을 감상한 ‘에릭 샤티(Érik Satie, 1866~1925, 프랑스 작곡가)’의 말은 시간대까지 포함해서 아주 구체적이다.

   “나는 그의 그 곡 가운데에서 오전 11시 무렵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어요. ”

   ‘에릭 샤티’, 대체 그가 누구인가. 그 유명한 <<짐노페디>> 작곡가이며 진정한 ‘미니멀리즘 음악’ 창시자였던 이 아닌가. 내가 하나 더 흥미롭게 여기는 점. 드뷔시는 그 곡 제3부 악보에다 특이한 지시어를 하나 적고 있다는 점. 바로‘ 활기차게 소란스럽게’다.

   하여간, 이미 제 96화와 제 97화를 거치는 동안, 드뷔시가 ‘파리 국립음악원 화성학 F학점짜리’였음을 수차례 적은 바 있다. 바그너 이후에는 듣도 보도 못한 화성(화음)으로 적은 곡. 그러기에 후세 사람들은 그를 ‘인상주의 음악가’로 이런저런 찬사를 보낸다.

   ‘화폭에서 튀어나오는 소리의 바다’, ‘긴장감과 모호함을 갖는 화성들이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그 울림이 유지되도록 작곡한 이’,  ‘그가 평소 존경했던 ‘말라르메’를 비롯한 상징주의 시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작곡가’, ‘미묘한 색감의 차이. 모호성. 음계의 다양함. 조성의 변화무쌍.’,  ‘ 파도·소리·빛·구름·바람으로 말미암아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 등등.  사실 나는 음악 해설자에 따라, <<La Mer(바다>>에 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한 것도 알고 지낸다. 하더라도,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 거기까지 속속들이 말씀드리면, 하나같이 달아날 처지. 해서, 나의 ‘드뷔시’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맺도록 한다.

   우리가 피상적으로 아는 드뷔시의 <<La Mer(바다>>를 철저히 분석한 어느 평론가님의 학술적 견해도 귀기울여 들었다. 나는 10여 장 A4 용지에 메모도 해두었다. 다음 번 동일 음악을 들을 적에 참고가 되겠다. 대신, 위에서도 언급한 미술평론가 정윤희 선생의 ‘공통분모론’. 님의 글에서 영감을 얻어, 이 글에서도 이미 밝혔듯, 나의 다음 글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파도 아래>는, 그 동안 미뤄뒀던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 연작물 제 21화에 따로 적어 보여드리기로 한다.

 이는 내 작은 성의이다.

   끝으로, 내 사랑하는 애독자님들께 부탁. 부디, 나의 모자란 글을 채워서 읽어주시길. 사실 나는 몇몇 날 드뷔시를 파고들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질세라... .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길이가 너무 길어지면,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 께서 짜증낼세라, 이처럼 나름대로 압축하였다.

   아무쪼록, 다들 부족한 점은 채워서 읽어주시길.

      그리고 이 글도 내 사랑하는 그이한테 바친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