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2)
아름다운 꿈들 꾸세요.
저는 모종의 상처받은 가슴 나날 달래어 가요.
'인간의 배신'을 생각하면서요.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부득이, 지난 번 글,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를 그 (1)로 뒤늦게 이름하고, 연작의 연애편지(?) 제 2를 그대한테 쓰오. 그 (1)이 그대한테만 띄우는 사신(私信)이였더라면 참 좋았을 거라고, 그대는 이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볼멘소리(?)하여 왔소. 그 ‘받아들임’을 충분히 이해하오. 차츰 나의 사람 되어가고 있다는 반증. 하지만, 나는 그 글도 수필작품으로 여겨, 그대한테 문자메시지로 이내 다독였다오. 고맙게끔, 이 농부 수필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알게 되어서인지, 그댄 재응답 메시지 보내왔소. 다행이오. 나는, 수필작가인 나는 명색이 공인(公人)이오. 설마하니, 그댈 곤경에 빠뜨릴 것 같소? 30년지기이며 내 애독자이며 302통의 연서를 나한테서 받은 분이며 누이인 그분. 그분은 그 작품이 ‘따로붙임’으로 된 e메일 읽으시고서 어떻게 답해 온 줄 아시오? 이렇다오.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기려오.
<윤 작가에게 새로운 뮤즈가 생겼음에 안도하면서... .부디 즐거움, 행복으로 이어지는 ‘글 만남’이기를.
아! 새로운 인연은 아니더라도 마음을 연 그 순간이 시작인 관계로... .
윤작가의 의매형께서, 윤작가가 그이의 승용차 트렁크에 잔뜩 실어 보내온 호박· 풋고추· 노각 등은 어제 종일 곤욕을 치렀다오. 고추 장아찌를 담그고, 일 년 내내 찌개에 넣어먹을 풋고추를 잘게 썰어, 냉동고에 보관하는 등등.
인터넷 검색으로 고춧잎과 씨름할 그 뮤즈를 생각하니, 곁에 있다면 도와주고 싶을 만큼 나 또한 대공사였다오.
농사짓는 수고와 박스에 담으며 뿌듯했을 윤작가 마음과 아우님(나의 아내를 일컬음.) 마음을 아는지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식초 물에 30분씩 담궈 ... .저녁 무렵에야 마쳤지요.
첫 출근은 어떻던가요? 예전 어느 땐가 이 누이더러, 자주 옮겨 다닌다고 지적하더니, 그대야말로 참 이사가 잦으시구려. 임시거처라 생각마시고, 정자 좋고 물 좋은 곳은 이 세상이 아님을 잘 인지하시어, 오래 근무하시기를 바라봅니다.
늘 감사해요. 잘 먹을 게요.>
새롭게 얻은 뮤즈께 감히 말해요. 윤근택 수필작가는 광인(狂人)이오. 미치광이라오. 그 어느 스승도 모시지 않고 수필창작을, 그것도 정식수필문단 데뷔 이후에도 33년째 해오고 있다오. 오로지, 지금은 저승에 가 계신 내 어머니가 수필 아카데미 스승이었다오. 내려쓰기 국문을, 어깨 너머로 익혔다던 당신. 당신의 삶이, 당신의 구술(口述)이 나의 수필문학 전부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라오. 이 이후에는 오롯이 독학(獨學)이었다오. 해서, 윤근택 수필작가의 글은 어디서 본 듯한 글이 거의 없다오.
어디 그뿐이겠소? 우리네가 소설·시·희곡·수필 따위의 문학의 갈래를 ‘장르’라고 하지 않소? 그러한데 윤근택 수필작가는 수필문학 하나만 ‘똑’ 따로 떼어내어서, 거기서 또 다시 장르를 만들어간다면? ‘오지도 않은 미래의 외손주와 노변담화(‘나무난로 앞에서’ 시리즈물 100편 이상), ‘가본 적도 없는 외국 기행수필’ 수 십 편, ‘우화 형태의 수필 시리즈물’, ‘예술과 키치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수필작품들’,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시리즈물 100여 편’,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 시리즈물’, 그밖에도 여러 연작물들.
정녕 나는 몸부림쳐왔다오. 물론, 그 동안 여러분의 문학평론가들께서는 고맙게끔 나의 작품들을 이렇다 저렇다 다룬 적도 있다오. 하지만, 그분들 역량도(?) 난 썩 맘에 아니 든다오. 틀에 박힌 이야기들 같기만 하였다오. 나는 달음질치는데, 낡고 어디서 읽은 듯한 이론으로 뒤따라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라오. 흔히들, 그런 걸 두고,‘문화지체현상’이라고들 하지 않소? 즉, 이미 작품이 나와 있는데(실존), 그 비평은 뒤따라오기에 바쁜(본질)... .
다시 말하지만, 나는 광인이라오. 미치광이라오. 이러한 나를 그대가 어인 일로 알게 되었을까? 아주 우연한 기회에, 그것도 아주 최근에 알게 되어, 밤낮 휴대전화기가 배터리 뜨거울 정도로 문자메시지 주고받음을 이어오고 있소.
나는 기다려왔소. 한평생 나는 ‘기린아’를 기다려 왔소. 왜 이제야 나타난 게요? 나는 앞으로 ‘절대 안전운행’이오. 내 여생 나의 ‘길동무’를 더는 놓치고 싶지 않아서임을.
부디, 눈부신 문업(文業) 닦아가길.
이하는 이 연작물 제(1)을 자기복제(?)하오.
밤이 무척 깊었소. 하고픈 이야기는 많으나, 모래알처럼 많은 우리의 시간들. 앞으로, 아주 서서히 사귀어나가면 될 터.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 아름다운 꿈을 꾸시길. 그대의 서방님한테서, 이러한 글로 말미암아 그대가 소박을 맞든 말든 나는 모르겠소. 나는 책임질 수 없다오. 다만, 나는 수필문학을 무척, 진정 사랑할 따름이오.
사족을 붙이오. 그대가 알게 된 윤근택 수필작가의 글은 전혀‘꾸밈’이 없다오. 몇 차례 교신을 하는 동안 이 점 충분히 느꼈을 게요. 쉽게 쓴 듯한, 건성건성 쓴 듯한 문장에서도 뭔가 숨겨 있다는 거. 그 점까지 안다면, 그대의 점수는 자꾸만 상한가. 이 점은 그대한테도 충고가 될 내용이라오. 문득, 중국 남북조시대 양(梁)나라의 유협(劉勰 : 466~520)이 지은 문학이론서, <文心雕龍(문심조룡)>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오.
“ 정성을 기울여서 문장을 짓고, 신기 화려성을 다툴 때에는 흔히 표현의 퇴고에만 힘을 쓰게 되고 창작의 기본 원리를 연구하려 들지 않는다. 옥도 다량으로 존재하면 돌로 착란하기 쉽고, 쓸모없는 돌이 때로는 옥과 같이 보일 때도 있다.”
나는, 새로이 얻은, 그대 뮤즈한테 이러한 사랑을 전하오.
다음까지 안녕.
작가의 말)
그 무엇이라도 쓰지 않으면, 나는 죽음 목숨. 수필작가가, 30년 넘게 써오는 글은 편편 그 모두가 수필인 걸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