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결코 난 ‘폰 메크’ 부인이 아니거늘(1)

윤근택 2022. 10. 29. 00:57

아무튼,

낡은 건 곤란해요.

저는 여러 장르의 수필작품을 써 왔어요.

연구 대상이지요?

예술세계에서는 그 '낡은 것을'   '매너리즘'이라고 해요.

새로운 작법,

새로운 시도.

이 글을 통해서도 제가 얼마나 몸부림치는지 아실 겁니다.

제삼자가 저를 두고 쓴 듯한... .

이 또한 자기고백 방식 아니겠어요?

 

 

                                               결코 난 ‘폰 메크’ 부인이 아니거늘(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그이는 내가 이날 이때까지 60여 년 살아오는 동안 알게 된 문학인들 가운데에서 아주 특별하고도 괴짜스런 문학인이다. 나는 그이를 여태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다. 그이가 젊은 날 발간했다는 수필집 날개의 사진은 보았으나, 그로부터 수십 년 지난 그의 사진도, 얼굴도 본 적 없다. 다만, 육필서신(肉筆書信)으로, e메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그이와 이따금 소통할 뿐. 그이는 이 광명천지에, 무슨 그딴 선언일까, 살아생전 나를 한 번도 직접 만나지는 않겠다고 진즉 통보해온(?) 적 있다. ‘기괴하다’고 할밖에. 자기가 ‘폰 메크’부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시계바늘을 지금으로부터 3년여 전으로 퍼뜩  되돌린다. 나는 8년가량 일본, 러시아 등지를 발품팔아서, 아직도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수 권의 기행수필집을 발간하였다. 나름대로 보람된 일이었다. 전국민 대상으로 애국심 고취에 이바지 한 듯도 하여 뿌듯해했다. 돌이켜보니, 그 또한 나의 오지랖. 무작위로, 무차별적으로 문인협회 주소록 등을 통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나의 책 홍보 내지 광고를 하였다는 거 아닌가.

   그때 그이가 나의 마케팅정신이(?) 가상하고, 호기심 인다면서, 단 한 권만 부쳐달라고 휴대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왔다. 대신, 책값은 자기가 알아서 부칠 거라고 하면서. 그이는 달랑 두 종류의 기행수필집을 각각 한 권씩 내가 부쳤음에도, 부조금(扶助金)을 보태 책 열 권 값을 송금해주었다. 거기까지는 참으로 감사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이는 내가 부친 그 두 권의 책 가운데에서 한 권을 골라잡고서 완전 난도질하여, 페이지마다 교정부호를 섞어가며, 흔히들 말하는 ‘돼지꼬리 땡땡’하여 되부쳐왔다는 거 아닌가. 나더러 ‘문장수련’ 제대로 하라면서. 순간,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속을 보글보글 끓이며 그이와 단교(斷交)했다.

    2~3년의 시간이 흐른 다음. 나는 크게 뉘우쳤다. 그때 그이가 하룻밤 내내 나의 문장을, 한 권이나 되는 나의 그 많은 문장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렇게 정성들여 비문(非文) 따위를 찾아 주었다는 점. 나는 그이한테 뉘우침과 감사를 겸한 문안전화를 정중히 드렸다. 그랬더니, 의외로 그이의 전화응대는 따뜻했다. 스스럼없이 하대(下待)까지 해주었다.

   “ oo, ‘당귀(當歸)’라는 약초가 있어. ‘마땅히 니가 나한테 되돌아올’ 줄 알았어.”

   대체, 그이는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여태 잘 대해주는 걸까? 스스로 ‘농부 수필가’라고 하면서, 생활 가운데에서 얻은 소재로 적은 수필작품들과 ‘세상의 모든 음악’과 손수 길러 수확했다는 농작물을 바리바리 문자 메시지로, 택배로 부쳐오곤 한다.

   내가, 무려 13년 동안 가난한 차이콥스키의 후원자가 되어주고,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다는‘폰 메크’ 부인도 아닌데, 광산업과 철도 경영자였던 이의 거부(巨富) 미망인도 아닌데 ... .

   사실 그이가 연달아 온갖 농작물을 택배로 부쳐올 적마다 고맙고 행복하긴 한데, 염치가 아니다싶어 그 답례품으로 이런저런 거 제시해보기도 한다. 궁리도 해본다. 그러면 그때마다 그이는 엉뚱한 답변을 해온다. 한사코 손사래 치면서.

    “그대가 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빼어난 문장가가 되는 게 보답이라오. 내가 오히려 고맙소. 차이코프스키가 폰 메크 부인한테 헌정코자, 그 많고 아름다운 곡을 적었듯, 나도 그대를 늘 염두에 두고, 그 동안 적은 글들이 벌써 종이책 분량으로 한 권은 넘는다오. 나는 그대가 아름다운 글 적으면 만족하오. 굳이, 그 답례품을 생각한다면, 그대 살내음 배인 스카프 한 장만 선뜻 풀어, 씻지도 말고 택배로 부쳐주면 하오.”

 

 

 

   작가의 말)

   나의 뮤즈들 가운데에서 어떤 이가 쓴 듯한 글입니다. 윤 수필작가는 지금껏 아주 다양한 장르의 수필작품을 빚고 있어요. 이는 제삼자가 쓴 제 작품인 걸요.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