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박스를 보면
빈 박스를 보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사랑하는 당신,
나는 방금 당신이 보내온 휴대전화기 메시지를 읽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적혀 있네요.
‘단감 잘 받았어요. 알이 잘고, 높이 달려 있었고, 윤쌤의 농사도 바쁘실 텐데... . 이 단감을요. 그것도 친구분의 단감이라는데... . 그분 경운기 짐실이에 올라 앉아, 그 위험한 꼬불꼬불 산길로 가서 산등성이 나무에서 땄다고 택배포장 안에 님의 편지까지 들었네요. 겉으로는 노력봉사를 빙자했지만, 내심 품 대신으로 얻게 될 단감을 생각하시었겠지요. 그렇다면 감을 따는 동안 내내 저만 생각하신 거로군요. 저한테 부칠 욕심이었다는 것을.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저한테.’
사랑하는 당신,
당신은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그 단감 박스를 열어, 빨간 단감 사진을 이내 ‘인증 샷’으로 보내오셨군요.
나는 답신으로, 휴대전화기 메시지를 이렇게 날렸습니다.
‘내가 오히려 감사. 그 편지대로입니다. 나는 감나무. 그대는, 농부인 그대는 이런저런 핑계로 내 여린 가지에다 감알들을 남겨놓았네. 그럴 거면 차라리 애초부터 나를 나목(裸木)으로 남겨두지 않고서. 내 가슴, 그 여린 가지에서 감알들을 다 따가지도 않을 거면, 아예 시작치를 말던지. 가지에 남은 감들. 이 늦가을 얼마나 쓸쓸한지 아시기나 하는지요? 내가 일전 당신께, 문자 메시지로 또 일을 꾸미고 있다고 한 말은 바로 ‘단감 부치기’였어요.’
나의 빈 박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아파트 경비원인 나의 임무 가운데에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파지(破紙)정리도 있지요. 세대에서 마구 오줄없이 ‘휙휙’ 던져둔 종이박스 따위를 하나하나 펴서 커다랗게 네모진 탑으로 쌓아올리곤 하지요. 마치 제사상 떡을 제기(祭器)에 켜켜이 한없이 괴듯이요. 그 종이박스들 가운데에는 한 번 쓰고 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것들이 많습니다. 농부인 나는 너무도 잘 압니다. 과일 박스 하나에 1천원도 더 친다는 것을요. 사실 10킬로들이 쟁반감이 1만원이라면, 그 박스 값이 1할대를 차지하는 셈이죠.
사랑하는 당신,
나는 그곳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하루에도 수없이 가곤 해요. 그곳에 갈 적마다 당신을 그리워한다는 거 아시기나 해요? 이쁜 종이박스를 챙겨 내 승용차 트렁크에 곧잘 싣곤 합니다. 퇴근하여 내 ‘만돌이농장’에 닿자마자 이런저런 농작물을 정성스레 담아야하니까요. 면소재지에 자리한 우편취급소. 이젠 따로이 수령인 주소 따위를 대지 않아도 되어요. 당신 이름만 대면 되어요. 소장은 자기의 업무용 컴퓨터에서 당신의 그 고운 이름 이내 불러내어... . 그때마다 택배 물품 받게 될 당신보다도 내가 더 행복한 걸요. 그런데 당신은 이러한 행복감마저도 빼앗으려드는(?) 말씀 하신 적 있지요. 마치 몹시 부담스러운 듯. 그 말씀 얼마나 서운하게 들렸는지 아시기나 하는지요?
사랑하는 당신,
지금 내 농장 밭에는 가을냉이가 지천(至賤)인 걸요. 그 냉이들을 온종일 캐서 내 농장을 휘감고 사시사철 흐르는 개여울 맑은 물에 씻어 물기를 턴 다음, 그것조차도 부쳐드리고 싶단 말입니다. 내 모든 걸 당신께 ‘헐렁헐렁’ 오줄없이 부쳐드리고 싶단 말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어쩔 수 없이 나도 노인네인가 봅니다. 살아생전 내 양친께서도 그리 하셨으니까요. 명절이면 귀성을 끝내고 떠나는 아들딸들한테 바리바리 무엇이라도 싸서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주던... . 심지어 그 무거운 늙은 호박까지도 못 들려 보내서 안달을 부리시던 분들. 어느새 나도 그런 노인네가 되어버린 모양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나는 당신께 결코 내가 손수 가꾼 농작물을 부치는 게 아님을 오늘에사 아시데요. 내 못다 한 사랑을 그처럼 곱게 포장해서 부치곤 한다는 것을요. 오늘밤 수화기 저 너머에서 당신이 울고 계심을 나 모를 줄 아시는지요? 우시게 해서 미안해요. 참말로, 가슴 아프게 해서 죄송해요.
사랑하는 당신,
당신도 깨치셨나 보아요. 예전 어른들의 말씀을 말이지요.
‘이녁(당신) 논 물꼬에 물 들어가는 것과 이녁 새끼 입에 밥 들어가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보기 좋다.’던 그 말씀.
바로 내가 그 심정인 걸요. 나는 내 사랑 당신께 성심성의를 다하고플 따름인 걸요.
작가의 말)
나는 매양 애독자님들께 고백하여 왔다.
‘나는 30년 넘게 수필작품을 본격적으로 써 왔지만, 수필작품을 적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아직도 못다쓴 연서를 적고 있노라고. 나의 글들은 변형된 연서일 따름입니다. 수필입문인 분들께도 늘 권고하곤 합니다. 잘 쓰인 편짓글이 곧 수필이라고요.’
그리고 이 글을 나의 뮤즈께 바쳐요. 이러한 글을 적도록 해주신 작중인물 당신께 바쳐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