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에서(1)
부디, 아름다운 하루 열어가세요.
그 누군가를 지독스레 사랑하지 않으면,
저는 한 줄의 글도 못 적습니다.
66년 동안 살아오는 동안 주욱 그러했습니다.
요컨대, 윤근택 수필작가한테 글은 곧 못다쓴 연서입니다.
고추밭에서(1)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내 고향은 경북 ‘청송’. 이웃한 ‘영양’과 더불어 고추 주산지로 소문난 곳이었다. 요즘은 ‘청송사과’로 그 자리를, 바통을 넘겨주긴 하였지만. 우리가 흔히 ‘땡초’로 부르는 ‘청양초’도 ‘청송’과 ‘영양’을 합친 고추이름. 영양군에 고추연구소가 있고, 그곳에서 ‘하늘초’라고 부르는, 하늘 향해 바짝 선 아주 자잘한 고추를 여타 고추와 교잡하여 교잡2세로 육종(育種)해낸 매운 고추가 청양초라는 게 정설이다.
고추는 잎담배와 더불어, 내 유년시절부터 내 양친의 주수입원이었다. 내 양친은 건고추와 잎담배를 팔아 당신들 슬하의 열 남매를 키웠다. 공납금부터 시작하여 대학 등록금까지. 그러니 내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지금껏 고추는 나와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의 작물. 사실 해마다 내 농장에서도 내 양친으로부터, 내 손위형제들로부터 배워온 대로 적잖게 고추농사도 한다.
벌써 보름 전 된서리가 내려, 온갖 식물들 잎들이 삶은 듯, 그야말로 풀죽어 있는데, 나는 농막 앞 고추밭에 내려선다. 고춧대에 달린 고추들이 멀쩡하다. 그 동안 고춧대에 달린 채로 서서히 홍고추가 되어 왔다. 시들시들 곯기는 했으되, 맺힌 고추들은 에누리 없이 모조리 딸 수가 있다. ‘슬기로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첫서리가 내리기 직전에, 미리 예측하여 전정가위로, 커터(cutter)로 고춧대의 발목 즉, 그루터기를 잘라두었기에 가능한 일. 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산 채로 서 있는 식물의 잎들은 무서리에 하룻밤 사이에 안녕이다. 그러나 미리 목숨줄을 끊어놓은 식물은 가사상태(假死狀態)가 되어, 그 줄기에 남은 영양분으로 생명활동을 이어간다.시들시들, 골골 죽어가면서도 삶아놓은 듯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아는 나. 이웃들은 진작에 밭째로 고추농사를 마감한 이 초겨울에 고추를 따고 있다. 홍고추로 변신한 것들, 풋고추를 말려놓은 듯한 것들. 참으로 그 수량이 많다. 홍고추로 변신한 것들은 끝물고추가 되고, 채 다 크지 않은 애기고추들은 튀김용이 될 것이다. 그렇게 딴 고추들을 볕에 말려도 되겠지만, 고추 자동건조기까지 갖춘 터라, 하루 동안만 말리면 작업 끝.
미리 한 차례 나의 뮤즈들한테 그렇게 해서 말린 고추와 어제 딴 생째 고추를 반반 칸 질러 넣어 박스박스 택배로 부쳐주었다. 아직도 절반씩이나 남은 고추 이랑.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고추라고 생겨먹은 고추는 모조리 딸 것이다. 그런 다음 또 다시 나의 뮤즈들한테 택배로 부쳐줄 요량이다.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나의 ‘고추밭에서’ 연작수필은 나의 여느 연작물들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수십 편이 될는지 수백 편이 될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 순서도 없다. 이처럼 또 일을 꾸미고 있음을,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보고드린다.
그리고 이 글을 나의 뮤즈들께 바친다. 여느 농부들과 달리, 곧 또 부치게 될 겨울날 수확한 고추 택배물과 함께.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