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고추밭에서(3)

윤근택 2022. 11. 24. 13:28

아래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나의 뮤즈님들께 바친다. 특히, 새로이 얻은 뮤즈인 어느 여류수필가한테 이 글을 공손히 바친다. 그는 참으로 예의 반듯한 이임을 금세 알았다. 님들을 염두하기에 연서를 쓰는 맘으로 적고 있음을.

 

                                                         고추밭에서(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고추밭고랑에 들어서서 고추를 따는 동안, 혼잣말을 하게 된다.

    ‘어른들 말마따나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젊은이들 결혼기피와 산아(産兒)기피로 장차 국가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이라고 하니... .’

    국가가 개인의 삶을 강제하거나 통제해서는 결코 아니 됨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 양친 슬하 열 남매 가운데에서 아홉 번째인 나. 내 어릴 적 정부가 펼친 산아제한 정책이 내 양친 시절에 나왔더라면, 나는 세상구경을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사실 내 어린 날 공중화장실마다에는 정부 홍보그림이 남자소변기 앞 벽에 붙어있었다. 그 안에 자잘한 씨가 촘촘 박힌 아주 튼실한 한 고추 그림. 탄식조의 문구도 들어 있었다.

    ‘고추 하나 때문에... . 둘도 많다. 하나 낳아 잘 기르자.’

     어디 그뿐이었던가. 내가 예비군 훈련장에 가면, 보건소 담당이 나와서 예비군중대장한테 훈련시간을 할애받아 내어 꼬드겼다.

    “고추씨를 없애면, 불알을 까시면, 예비군 훈련 면제이니... .”

    물론, 나는 그 꼬드김에 끝끝내 넘어가지 않았다. 내 씨는 내가 지켜야한다는 믿음 하나로 그리하였다. 내가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Rinaldo)>’의 아리아인 ‘나를 울게 하소서’를 애통하게(?) 부른 ‘파리넬리(Farinelli)’가 아닌 터에. 그이처럼 남성소프라노 목소리 얻고자 카스트라토(castrato) 또는 거세가수(去勢歌手)가 된 것도 아닌 터에. 해서, 아기 생산능력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대신, 내 아내는 남편과 상의도 없이 배꼽언저리에 칼자국 내어 난관을 아예 묶어버려 내 슬하에 두 딸년뿐이다. 하더라도, 아내나 그 녀석들 이 글 읽으면 매우 섭섭할 듯.

     위와 같은 뜻을 지닌 고추 이야기를 내가 더 아니 할 성싶은가. 내 신실한 애독자들은 나의 성향을 아시는 터라, 하나마하마나 하며 오히려 기다리실 듯. 성인유머인 ‘홀애비의 고추’ 이야기.

   같은 마을에 홀애비와 과부가 이웃하며 살았다. 두 집 다 해마다 고추농사를 하였다. 연년(年年) 과부네는 풍성한 고추수확인데 비해, 홀애비네는 쫄딱쫄딱. 과부는 그 비법을 결코 홀애비한테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자 어느 날 홀애비는 숨어서 그 비법을 드디어 알아내게 된다. 요요한 달빛 아래 소복(素服)의 과부가 자기네 고추밭 고랑고랑을 휘젓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홀애비는 혼잣말을 하게 된다.

    ‘ 개뿔, 별것도 아니네. 나한테는 열여덟, 열아홉 연년생 딸이 있으니... .’

     홀애비는 두 딸한테 통사정하여, 팬티 한 장씩만 걸치게 한 후 그 과부처럼 고추밭을 헤집고 다니도록 하였다.

     ‘그 결과는? ’

     요렇게 질문하는 게 성인유머의 핵심포인트이고 매력인 것은 다들 아실 터. 그해 홀애비의 고추농사는 완전 꽝. 왜냐고? 과부를 보고도 바짝바짝 기립했던(?) 고추들이였으니, 팬티바람의 두 아가씨를 보자 기립상태가 지나 다 터져버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

    실제로, 고추라는 작물은 지난 호에서도 이미 밝혔듯, 꽃맺힘과 열매맺힘이 거의 매일 이루어지기에, 병충에 취약한 애고추를 기준삼아 자주 농약을 살포해야 한다. 병해(病害)로는 탄저(炭疽)·역병(疫病)·고추배추썩음병·검은점열매썩음병·칼라병 등. 충해(蟲害)로는 고추담배나방 유충·노린재·진딧물 등. 특히, 충해는 일차적인 피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병원균의 매개자가 되어 위에서 열거한 병을 일으킨다.

    사실 고추농사가 그리 만만치 않은 데에는 고추라는 작물의 유전적 특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고추는 가지과(-科)의 식물이다, 가지과의 식물은 그 성질이 아주 더럽다. 자기네 선조들이뿌리내리고 산 토양을 꺼린다. 이를 재배학원론에서는 ‘토양기피성(土壤忌避性)’이라고 한다.토양에다 그것들 조상의 실뿌리가 내어놓은 독성성분 때문이라고 한다. 목본식물(木本植物) 가운데에서 복숭아가 토양기피성을 지진 대표적이다.

    총기(聰氣) 있는 나의 애독자님들이시여!

    “농부님, 그렇다면 고추는 ‘돌려짓기[輪作]’를 해야겠네요?”

    당연한 이야기다. 그 점이 내일모레면 칠십이 되는 이 농부 수필가를 가슴 미어지게 한다. 살아생전 내 양친은 토지가 넉넉지 않았다. ‘팔밭’을 쪼아, 즉 괭이로 삽으로 개간하여 밭을 만들고, 거기에다 고추를 심어 슬하의 열 남매를 양육했다는 거. 고추는 우리를 키워준 고마운 작물이기도 하지만, 그 고약한 토양기피성으로 인하여 내 양친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

 

    다음 호 계속)

 

    작가의 말)

    나의 ‘고추밭에서’ 연작수필은 나의 여느 연작물들처럼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수십 편이 될는지 수백 편이 될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 순서도 없다. 이처럼 또 일을 꾸미고 있음을,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 보고드린다.

토막지식 등을 독자들과 공유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라고 여긴다. 이 또한 보람된 일이라고 믿는다. 고추에 관한 진실을, 이 연재물로 이어가고자 한다.

    그리고 이 글을 나의 뮤즈님들께 바친다. 특히, 새로이 얻은 뮤즈인 어느 여류수필가한테 이 글을 공손히 바친다. 그는 참으로 예의 반듯한 이임을 금세 알았다. 님들을 염두하기에 연서를 쓰는 맘으로 적고 있음을.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