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고추밭에서(9)

윤근택 2022. 11. 30. 13:57

 

 

                                                          고추밭에서(9)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고추밭 고랑에 들어서서, 좌우 두 이랑 나란히 줄지어 들어선 고추나무에서(?) 홍고추를 번갈아가며 따고 있다.

혼잣말을 또 하게 된다.

    ‘고추는 돈이야,돈! 곧바로 건고추는 돈으로 바꿀 수 있다하여 ‘환금작물(換金作物)’이라고 불렀어.

   사실 차츰 힘에 부쳐, 고추작물 재배면적을 해마다 좁혀, 우리 넷 가족 양념용으로 초점을 맞추어 나아가지만, 여전히 돈이 되는 작물이다. 아내 생활비에 작으나마 도움 되는 작물이다.

    그런데 막상 ‘환금작물’이라고 말해놓고 보니, 내 가슴이 이렇게 아려올 줄이야!

    초·중 시절, 담임선생님들은 어린 마음 다칠세라, 정말 조심스레 우리를 다루었다. 학교가 파할 무렵, 읍내 아이들을 다 보낸 후 우리를 따로이 살짝 모았다.

     “너희 어른은 밀린 기성회비를, 공납급을 언제 주신대? 선생님도 이 이야기 꺼내기가 정말 안됐지만... .”

    우리는 하나같이 돌아가며 앵무새처럼 대답했다. 사실 그게 모법정답이었다. 커닝페이퍼였다.

     “선쌤요, 우리 아부지가요, 요 다음 장날에 고추 팔아서 공납금 주신다고 했어요. 그러니 집에 얼른 보내주세요.”

    내 어머니는, 등굣길에 오른 우리들을 위해,이웃한테 곧잘 말하곤 하였다.

     “숙화 어매, 야가(얘가) 도화지를 사야 한다는데... . 돈 삼원만 체(꾸어) 주게나. 다음 장날 고추 팔아서 갚음세.”

     그러하였던 고추, 내 어린 날 추억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고추. 아마도 나는 죽는 그날까지 고추농사만은 접지 못하리.

     참말로, 우리의 젖줄 같았던 고추작물. 하더라도, 내 양친은 ‘고추농사기술 혁신’ 이전에, 구태의연하게, 정말로 구태의연하게 고추농사를 하였다. ‘비닐멀칭 농법’도 아니 나왔고, ‘포트묘(플러그묘)’개념도 나오기 이전이었다. 내 아버지는 밭을 갈아 이랑을 짓되, 일소[役牛]를 부려 쟁기를 ‘메우고’,온종일 그 일을 행했다. 요즘 내가, 휘발유 오 천원어치 사와서 먹이고, 관리기로 ‘탈탈’잠시면 300평 남짓 끝내는 그 이랑짓기를 그렇게 하였다. 그런 다음 내 양친은 지난 해 받아둔 고추씨를 직파(直播)했다. 퇴화(退化)되고, 교잡된 그 씨앗을 어쩌자고 그리 하였을까. 어디 그 수고로움이 거기서 끝났던가. 촘촘 들어선 고추모를 몇몇 날 솎아내고 있었다. ‘빈곤의 악순환’이란 말은, 지난날 내 양친 세대한테 딱 어울리는 말.

    후일, 나는 내 양친이 고추 팔고, 황소 판 돈으로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그것도 열 남매 가운데에서 아홉 번째인 나만이 뽑혀(?) 4년제 대학 졸업의 특혜를 누렸으니... . 더욱이, 나는 농과대학에 들어갔다. 물론, 나는 당시 내 어버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여, 전국 각처 대학을 뒤져, 그 낯선 청주에 자리한 ‘내셔널 유니버시티(national university)’ 즉, 국립대에 들어갔기에, 8학기 동안 등록금은 아주 저렴하였다. 게다가, 그 8학기 동안 죄다 ‘A급 장학생’등으로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기왕지사, 군대 복학생었던 나의 슬기마저도 소개함이 좋겠다. 지도교수 연구실에 들어섰던 나.

    “교수님, 제 양친은 고추농사하시어 절 대학에 보내셨는데요, 이번 학기 기말시험에 하필이면 교수님의 과목 딱 하나가 A학점 아니 될 것 같아서‘A급 장학생’ 놓칠 듯해서요.”

    지도교수는 나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해주었다.

    “자네, 참말로 장하이(장하네). 나는 여태껏 교수생활을 해왔지만, 자네 같은 제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네. 학점 펑크 때워달라고 보채는 제자는 있어왔으나... .”

    이런저런 재치로, 당시 우리들 은어(隱語)였던 ‘향토장학금 면제자’ 였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고향으로부터 등록금 아니 받아써도 되는 상태를 그렇게 말하곤 하였다.

    하여간, 나를, 아니 우리 열 남매를 양육해준 작물은 그 무엇도 아닌 고추와 담배. 나는 지금은 저승에 가 계신 내 양친과 고추작물과 담배작물한테 경의를 표한다. 죽는 그날까지 고추작물의 고마움을 결코 잊지 못하리. 해서, 실속이 있든말든 나는 해마다 고추작물을 재배할밖에.

 

    작가의 말)

    나의 글에 늘 충고 아끼지 않는, 내가 새롭게 찾은 뮤즈. 그도 나와 마찬가지로 수필작가이니, 함께 수필문학의 완성을 향해 공부해나가길 바란다. 해서, 이번에는 그이와 이 문장기술(文章技術)을 공유코자 한다. 이는 그이에 대한 나의 각별한 애정표현.

   ‘남의 입을 빌리면, 문장을 압축할 수 있다. 짧은 대화체 문장을 부려 쓰면, 원고지 분량으로 5~6매를 줄일 수 있다. 나아가서, 전문적인 사항 등을 그 분야 전문가의 입을 빌리는 척 글을 적으면, 현학적(衒學的)이란 지적을 다소 피할 수 있다.’

    그가 이번 글에 관해서는 또 어떤 ‘꼬집기’를 해올지 두렵기도 하고, 은근히 그 ‘꼬집기’가 기다려지기도 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