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에서(10)
나름대로 공들여 쓴 작품이오니... .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뻗칠 수 있는지를.
고추밭에서(10)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어느새 내 이야기는 ‘고추밭에서(10)’에 닿았다. ‘고추밭에서(10)’에 닿았다.
이번엔 두 이랑 심은 ‘청양초(靑陽椒)’를 따기 위해 두 이랑 사이 고랑으로 들어선다. 이미 이 연작물 어디에선가 밝힌 바 있다. ‘靑陽椒’는 고추 주산지였던 내 고향 ‘청송(靑松)’과, 인접한 ‘영양(英陽)’의 첫 글자를 조합하여 만든 고추 품종 이름이라고. 다시 밝히거니와 영양군에 소재한 고추연구소에서 자잘한‘하늘고추’와 제법 열매가 굵은 고추를 교잡육종(交雜育種)해낸 고추품종이다. ‘하늘고추’는 새벽도(?) 아니건만, 하늘을 향해 바짝바짝 서는 데서 비롯된 이름. 그 습성을 생각하면, ‘하늘고추’라 하지 않고 ‘새벽고추’로 불러도 무난할 듯. 아니면 더 줄여서 ‘새벽’이라고 해도 될 듯.
하여간, ‘하늘고추’는 그 맵기로 따지자면 한량없다. 여름날 물김치에 ‘총총’ 썰어 넣으면, 그 물김치 감칠맛을 알싸하게 더해준다. 대신, 그 크기가 여타 품종에 비해 턱없이 잘아서 채산성(採算性)이 몹시 떨어지는 게 흠. 해서, 그 독특한 매운 맛과 비교적 두툼한 과피(果皮)를 동시에 지닌 청양초로 육종되었다고 보면 큰 무리가 없다.
해마다 아내가 신신당부한다.
“여보, 제발 청양초는 당신이 먹을 만치만 심으세요. 우리 세 모녀는 너무 매워서 싫어요.값도 비싸고 열매도 많이 달리기는 하지만, 종일 따도 불어나지 않는 고추포대를 생각하셔야지요. 그 수고로움을 생각하신다면... .”
아내의 말이 맞기는 하다. 하더라도, 나는 나 먹으려고 청양초를 한 해 50포기 내지 100포기는 심는다. 고추 곳에서 자라난 나는, 유년시절부터 매운 고추 맛에 길들여져, 청양초가 아니 들어간 반찬은 싱거워서 먹지를 못한다. 여느 큰 풋고추는 풋내 나서 손도 대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그 어느 식당에 가더라도 따로이 미리 주문하곤 한다.
“수고스럽겠지만, 여기 청양초와 된장도요.”
삼겹살을 먹더라도, 언제고 마무리 입가심은 청양초를 썰어 넣은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
아내가 나와 다툴 때마다 자주, 아주 자주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
“ 늘 ‘땡초’를 먹어대니, 저 눔의 성질머리도 ‘땡초’ 그대로야!”
열매가 잘아, 오늘 나의 ‘청양초 따기’작업은 그야말로 세월이 없다. 그래도 꼭지[果柄]는 여느 고추품종과 달리, 비교적 여려서 고춧대 겨드랑이에서 ‘똑똑’ 잘 떼이는 편. 반평생 함께 살아온 아내. 아내는 내가 청양초 꼭지 같이 맘 여린 구석은 있다고 인정하는 편.
지루함을 달래려고, 고추와 관련된 ‘정선아리랑’ 한 소절을 흥얼댄다. 곁에 그 누구도 없으니, 맘 놓고 크게 불러댄다.
‘(상략) 앞남산의 딱따구리는 생구멍도 뚫는데 우리 집의 저 멍텅구리는 ‘뚫버진’ 구멍도 못 뚫나(하략)’
평소 남들보다 연상력과 유추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는 이 농부 수필작가. 위 정선아리랑 한 소절에서 ‘아기고추’를, ‘꼬마신랑’을 금세 연상하였다는 거 아닌가.
참말로, 안타깝게도 우리네 조상들한테는 그러한 풍습이 있었다. 바로 조혼(早婚)의 풍습. 본디 농사가, 특히 벼농사가 ‘노동집약적(勞動集約的) 산업’이다. 어른들은 모내기 때에 이르면 곧잘 탄식조로 말씀하시곤 하였다.
“모내기철에는 ‘송장’의 손도 그립다.”
다들 머리를 맞대어, 일손을 손 쉬이 구하는 법을 궁리해냈을 터. 어린 아들을 둔 이는, 남의 집 다 큰 딸을 새참 짓는 일꾼으로 데려오면 되겠다고. 이녁 조무래기 아들과 일찌감치 짝지어 주면 손주를 속히 볼 수 있어 좋은 일, 딸 가진 집 부모는 ‘입 하나 덜고’ 외손주를 속히 안아볼 수 있어 좋은 일. 조혼의 풍습은 그리하여 생겨났다는 게 정설(正說) 아니던가.
물오를(?) 대로 물오른 부인과 달리, 아직도 ‘아기고추’에 지나지 않은 꼬마신랑. 그러한 애환이 정선아리랑 한 소절에 위와 같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것을. 성적(性的) 불평등이이여! 부조화여! 기울어진 천칭저울이여!
키는 왜 이리도 멀쑥한지, ‘고추 정글’을 헤치며 청양초를 따 들어가다가 이번에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을 색달리 생각하게 된다.
내 젊은 날, 어느 다방 종업원이 나한테 알 듯 말 듯한 말을 불쑥 건네 온 적이 있다.
“큰 고추는 죄다 허탕이었어. 내 ‘씨입[種口]’만 빽빽했지 싱겁기 그지없었어. 역시 작은 고추가 맵더라고. 그 입천장까지 화근화끈해지던 걸.”
여기서 잠시. 하필이면, 이 연재물이 제 10화인 터에. 여성의 성기(性器)를 두고, 발음상 ‘십(十)’과 비슷하게 발음한다는 점도 나는 유의한다. 그 점은 이미 젊은 날 ‘속어(俗語) 공부 (1)’이란 수필작품에 아주 자상하게 적어 수필계 거목들한테서 칭찬을 받은 바 있다. 아홉 개 구멍을 지닌 수컷들과 달리, 암컷들이 지닌 ‘열 번째 구멍’이란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해서, 암컷들이 더 진화되었다고도 적었다. 대신, 닭을 비롯한 새들은 암컷들조차 아홉 개 구멍을 지녔으며, 항문은 질(膣)의 기능을 겸하고 있다. 해서, 유사 성행위를 이르는 계간(鷄姦) 즉, ‘비역질’이란 말이 생겨났다. 암컷의 거시기는 늘 둘레가 촉촉 ‘습기(濕氣)’를 갖고 있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한, ‘씨를 먹는 입[種口]’에서 단음절로 줄어든 이름이라고도 한다. 해서, 내 젊은 날 다방 종업원한테서 들은 위 ‘씨입[種口]’은 다시 생각해보아도 아주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앙징스런 표현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쨌든 안타깝게도, 나는 여자가 한 번도 되어본 적 없으니, 그때 다방 종업원의 말 뜻만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전혀 경험한 바 없으니.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은 꼬마신랑이 남편 구실을 제대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절정(絶頂)을 넘어 급속히 쇠락해진 정선아리랑 속 여인네의 탄식일까? 안타까움 표현일까?
그 옛날 정선아리랑 속 여인네들이 이러한 탄식도 하였으려나?
“ 복된 여편네는 넘어져도 하필이면 고추밭에 넘어지는데, 나 같이 박복한 여편네는... .”
이처럼 온갖 외설을 생각하면서 따다가 보니, 드디어 청양초 홍고추 따기는 ‘휴우!’끝났다. 어느 세탁기 제조 회사의 광고멘트처럼 내 ‘첫물 청양초 따기 끝!’.
작가의 말)
예술가의 예술행위를 도덕적 잣대로 재어서는 아니 된다. 본디부터 나는 예술과 키치의 경계를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잘도 하는 수필작가이다. 독자들한테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대어주는 것도 작가의 몫 아닐는지.
나보다 더했던 이들의 글도 두 편 소개한다.
아래는 본인의 수필작품,‘예술이란, 예술가란’의 한 부분이다. 참고적으로, 전문(全文)은 아래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다.
http://yoongt57.tistory.com/900
<(상략)강아의 뺨은 빨갛게 물들고 있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거나해진 정철이 입을 열었다.
“진옥아, 내가 한 수 읊을 테니, 너는 화답하거라. 지체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옥(玉)이 옥이라커늘
번옥(燔玉)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적실(분명) 하다.
나에게 살송곳 있으니 뚫어볼까 하노라.’
강아는 이내 화답했다.
‘철(鐵)이 철(鐵)이라거든 석철(錫鐵)만 여겼더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마침 내게 골풀무 있으니 녹여볼까 하노라.’
강아의 시는 당대의 대문장가인 정철을 깜짝 놀라게 했다. ‘眞玉(그녀 이름)’에 대해 ‘鄭澈’의 ‘鐵(같은 음)’로 그렇게 화답하다니!
시조집 <권화악부(權花樂府)>에 위 두 글은 남아 있단다.(하략)>
김삿갓은 한양에 아내와 자식을 두고서도 어느 지방 노처녀 ‘곱단이’와 결혼식을 올리고 첫날밤을 맞고 있었다. 김삿갓은 영 찜찜해서 한 수 읊게 된다.
< 毛深內闊 必過他人(치모가 길고 그 안이 넓으니 필히 타인이 지나 갔구나).
그러자 곱단이가 이내 대구(對句)로 읆어댄다.
後園黃栗不蜂列(뒷동산 누렇게 익은 밤송이는 벌이 쏘지 않아도 저절로 벌어지고
溪邊楊柳不雨長(개울가 버드나무가지는 비가 오지 않아도 늘어지나이다.)>
그러자 김삿갓은 크게 반성하고 곱단이와 첫날밤을 성공리에(?) 지냈다고 한다.
[출처 : 宣遊碧巖(선유벽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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