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밭에서(14)
고추밭에서(14)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나의 ‘고추작물 돌봄’은 이어진다. 고춧잎들 뒷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본다. 깨알크기의 빨간 벌레알들이 좌르르 붙어있다. 이슬이 마르면 곧바로 살충제와 살균제와 전착제(展着劑)와 질소비료인 요소비료를 적정량씩 말통[斗筒] 고무다라에 미리 받아둔 물에다 ‘섞태워’ 한바탕 농약을 살포해야겠다.
위에서 열거한 약제들의 역할을 낱낱이 더듬고 넘어감이 좋겠다. 병충은 잎을 갉아먹는 등 일차적 피해를 입힐뿐더러 병균의 매개자여서 살충제와 살균제를 섞어야 한다. 전착제는 말 그대로 ‘펼치고 붙이는’약제다. 작은 이슬알갱이로 잎 따위에 분사된 약제의 이슬방울을 보다 넓게, 보다 크게 하고, 잎에서 약제가 쉬이 흘러내리지 않게 ‘착’ 달라붙게 하는 첨가제다. 강우시 혹은 강우가 예상되는 때에는 이 전착제를 첨가하는 게 이롭다. 끝으로, 질소비료인 요소비료를 첨가하는 이유다. 질소비료 2% 수용액은 이른바,‘엽면시비(葉面施肥)’의 효과를 거둔다. 살포된 약제의 작물 체내 흡수력도 높이면서.
다들 잘 아시겠지만, 식물의 잎 뒷면에는 기공(氣孔)들이 즐비하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입 모양으로 생겨먹었다. 아니, 암컷들의 거시기 대음순(大陰脣) 모양을 방불케 한다. 그 입술을 필요에 따라 ‘여닫기’한다. 평소에는 주로 식물호흡에 쓰이지만, 이슬이나 빗물 등 외부의 영양분을 그 기공을 통해 흡수하기도 한다. 특히, 뿌리가 병들거나 가뭄이 들 적이면, 잎은 그 기공의 기능을 십분 발휘한다. 기공을 통해 생명부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분을, 빗물이나 이슬에서 찾아 흡수한다. 이러한 기공의 이중적 역할을 이용한 것이 바로 엽면시비라는 농사기술. 여기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보너스 하나. 제초제를 살포할 적에는 그 수용액에다 반드시 요소비료 2%를 보태는 이유다. 잡초들은 ‘이게 웬 떡!’하면서 잎의 기공을 통해 그 독(毒)을 속히 흡수하기에 그리한다. 대체로, 잎이 기공을 통해 흡수하기가 가장 용이한 농도가 2% 내외 수용액.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는 짚이는 게 있을 줄로 안다. 바로 ‘생리식염수’가 떠오를 거라고. 인간 신체의 체액을 0.9% NaCl(염화나트륨) 용액으로 가정하여, 이와 농도를 동일하게 조정하여 제조한 등장액을 말하지 않는가. 다시 추론해보면, 대체로, 식물의 체액은 2% 내외 수용액이다. 사실 식물에 따라 엽면시비 적정 수용액 농도는 도표로 제시될 정도로 천차만별이긴 하다. 농약을 섞는 요령에 관해서는 얼추 설명한 듯.
다음은, 매번 내가 고추밭에다 농약을 살포하는 요령을 말할 차례. 병충과 병균의 습성을 제대로 알지 않으면, 거의 엉터리로 농약 살포를 하기 십상이다. 분사기 내지 ‘노즐’을 잡되,언제고 잎의 뒷면을 지향하여 아래에서 위로 약이 날아가도록 해야 된다. 잎 표면을 지향해서 위에서 아래로 향하면 효과가 반감(半減) 된다. 병충과 병균은 잎 표면이 아닌 잎 뒷면에 주로 은신하고 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 미물(微物)들의 생존전략 내지 지혜를 생각하노니, 새삼 놀랍다. 잎 표면은 왁스 성분으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미끄럽다. 미끄럼틀이다. 반면, 잎 뒷면은 작은 솜털이 나 있는 등 병충이 붙어있기가 용이하다. 병충한테 잎은 일산(日傘)과 우산(雨傘)의 역할을 동시에 지녔다. 뙤약볕을, 이슬을, 소낙비를 피할 수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잎의 뒷면은, 병충이 자기네 천적으로부터 몸이 드러나지 않게 숨을 수 있는 은신처가 된다. 나아가서, 병충들은 자신들 모양이나 몸 색깔을 잎의 모양이나 색깔을 본 따기도 한다. 끝까지 살아남으려 은폐술도 그처럼 부린다.
세상에 최강자라고 늘 자부하는 우리네 인간들. 하지만, ‘코로나 19’가 창궐하고, 그 코로나 바이러스가 살아남으려 자기 변이를 거듭 일으켜, 온 인류가 곤욕을 치르는 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의 나름마다 생존전략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그 무서운 종족번식 본능. 절대로, 약자(弱者)라고 깔볼 만한 존재는 이 지구상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을. 고추농사도 하는 나야 어쩔 도리 없이 병충해 방제를 위해 온갖 지혜를 긁어모아야겠지만, 영구히 그것들을 멸할 수는 없다는 것을. 해마다 살충살균제를 살포하고, 제초제를 살포하지만, 그것들을 끝끝내 멸할 수가 없다. 다행스레, 어떻게 하면 ‘공존동생’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현대농업의 경향이다. 친환경농업이니 하면서.
사족을 붙인다. 내 나이 서른둘 때인 1989년 <월간 에세이> 잡지를 통해 수필문단에 오른 작품에 대한 때늦은 고백이다. 나는 여태껏 ‘우산’이 나의 데뷔작인 듯 말해왔으나, 그것은 3월호 초회 추천작이다. ‘우산’에 이어 8월호에 실렸던 천료작(薦了作)은 ‘메뚜기’였다. 위와 같은 공존동생의 고민을 담은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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