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2)
이처럼 글짓기가 쉬운 작업인 줄을 진작에 몰랐습니다.
타석에 들어선 프로야구선수.
그가 장타를 노려 어깨에 힘이 잔뜩 실리면,
안타는커녕 병살타를 치는 예를 자주 보아왔습니다.
가볍게 '톡' 친 타구가 수비수 사이사이를 교묘히 빠져나가 안타가 되던 광경.
저는 지금 그러한 타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작중인물이자 '콜라보레이션 수필'의 한 축인 그분께 이 글 헌정합니다.
차이코프스키가, 14년 동안 후원자로 지내면서도 얼굴 서로 한 번 본 적 없는 '폰 메크 부인'한테 쓴 편지를 상기하며.
'앞으로 쓰게 되는 모든 음표는 당신을 위한 것임을 잊지마시길.'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2)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비번날인 오늘. 아침나절 아내, 차 마리아님이 내 승용차에 편승하여 이 ‘만돌이농원’에 왔다오. 배추밭에 이불 씌어 남겨둔 배추들 가운데서 여러 포기를 뽑아, 친한 이웃한테 선물하고자. 겸해서 장독간 항아리에서 우리가 먹을 된장을 푸고자.
계란을 주울 겸 모이도 줄 겸 닭장에 들어섰던 아내. 아내는 숨을 거둔 청계(靑鷄) 두 마리를 태연히 꺼냈다오. 뻣뻣한 녀석들 사체. 나는 그것들을 땅에 묻어줄까 생각하다가 ‘똘이’와 ‘진순이’ 두 강아지들한테 특식으로 주었다오. 족제비의 소행인 듯하오. 몇 해 동안은 그러한 일이 없었는데... . 그대는 아실까? 족제비란 동물은 그 이름 자체가 아주 몸집이 작고 교활한 뉘앙스. 족제비는 작은 틈새만 있어도 쉬이 드나들 수 있다오. 그 성질이 고약하여 닭들 목을 물어죽이되, 먹지는 않는다오. 세상에 그런 악취미가 없다오. 자기가 먹을 것도 아니면서 무고한 생명을 앗는 족제비. 그런 점에서 사자나 호랑이는 양반들인 셈. 그것들은 지상의 먹이사슬 가운데에서 최상급 포식자들이지만, 피포식자자의 살점과 뼈와 그 영혼까지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융합하는... 그러한 자비를 베풀지 않소? 그러는 것이 그것들 포식자들의 독특한 사랑법일 수도 있다는 것을. 크게 놀라지는 마시오. 나는, 나는 그댈, 뼈 하나 남기지 않고 잡아먹을 만치 배짱좋은 놈은 못되니까. 다만, 그댈 정신적으로만 사랑하고 싶을 따름이오. 내가 선택한 뮤즈이시니, 성심성의껏 섬길밖에.
족제비의 무차별 살해는 두 마리에서 그치지 않고, 살펴보니 모두 6마리. 하는 수 없이 나머지 4마리는 장만키로 하였다오. 그 동안 쉬게 내버려두었던 농막 아궁이에다 군불도 땔 겸. 양은솥에다 앞개울에서 얼음을 깨고 길어온 물을 가득 부은 후 쏼쏼 끓여서.
장작을 지피는 동안 아내와 나는 다투었다오. 아내는 불이 더 잘 타라고 장작을 자꾸 뒤적이지 않겠소?
내가 몇 차례 일러주었소.
“당신은 며느리와 장작불은 건드리면 탈난다는 말도 모르시오?”
정말 그러하다오. 그대는 나의 기발표작 ‘장작을 지피며’를 이미 읽으시어 아실 테지만, 서로 몸을 부비며 뜨겁게 타는 장작불은 뒤적이면, 그만 꺼지고 만다오. 그런데도 평소 깔끔을 떠는 아내는 한사코... .
아내가 불쑥 알 듯 말 듯한 혼잣말을 하더이다.
‘내 나이 칠십에, ‘닭튀’를 처음 해보네. 내일 아침 내가 칠십 돌인 걸 이것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이 무심한 남편은 그제야 세 살 연상의 아내가 내일이면 칠십 나이에 접어든다는 것을.
그렇게 장만한 닭고기까지 싣고, 차를 몰아 일단은 아내와 큰딸이 사는 시내 아파트에 닿았다오. 이런저런 농산물 짐을 부린 다음, 쌈배추와 계란을 배달할 댁으로 이동하였소. 뜨뜻한 만둣국으로 점심을 준비해두었다는 사모님과 아내의 통화내용 내가 엿듣지 않았겠소만, 아내를 따돌려(?) 그 아파트 현관에 내려주고 달아난 이유를 그대는 차마 모르리. 나는 그대를 ‘쏙딱’, ‘속히’ 이처럼 혼자 은밀히 만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이제 내가 그대께 보낸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부터 출발.
<병환 중에 계신 그대 덕분에(?) 윤쌤은 새로운 수필장르 개척했다? 몽땅 바칠 테요. 고스란히 바칠 테요. ‘새롭게 얻은 뮤즈게(10)’은 ‘따로붙임’으로 따라가오.>
그대가 답해왔소.
< 새벽 4시에 팔 통증으로 간호사 불러 진통주사 맞고 난 후 윤쌤 글 봅니다. 이 문자도 새로운 수필장르 개척의 한 영역이라고 하시니, 그 또한 틀린 말씀은 아니다 싶고요. 그럴 거면 좀 더 멋진 문자로 화답할 걸 그랬구나 싶어요. 하지만, 꾸며내지 않은 일상의 평범한 언어들이 오히려 더 진실성이 있어 교감이 생겨나니, 문학의 지평 확대엔 이보다 더 나은 게 없다는 생각. 문자하고 싶으나 다시 팔 통증이 와서 이만.>
나는 화답했다오.
<그리 아파서 어떡하노? 나를 늘 칭찬해주어 고맙소. 불가(佛家)에서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 쓴다? 때가 되어야 만날 수 있다는... .
66년 살아오는 동안, 33년째 수필작가로 행세해오는 동안 굽이굽이마다 난관에 부딪힌 적도 많아. 남이 나더러 엿먹으라고 할 때 나는 그것이 꿀이라고 생각하곤 하였다오. 그거야말로 긍정적 마인드지. 그때마다 새로운 길이 모색되곤 하였다오. 나의 글 세계는 그리하여 더 넓혀져 온 걸. 그대가 나타나서, 나는 사랑스런 여류수필가와 둘이서 쓰는, ‘콜라보레이션 수필’을 이처럼 개척했지 않어? 모두 그대 덕분이오. 지금은 그대가 투병 중이고, 수시로 찾아드는 그 고통에 시달리지만, 한 녘으로 생각하면, 축복일 수도 있어. 그대는 그 동안 격무에 시달려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나한테 호소한 적도 많어. 그때마다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옛 어른들 가르침을 전해 그댈 다독여 왔어. 지난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감행했던 내 경험에 비쳐보아 그렇게 일러주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 스트레스 없잖어? 외롭고 갑갑한 병원생활 가운데에서 윤쌤의 문자 메시지에 딸려보내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지 않소? 옆 병상(病床) 환우(患友)를 생각하여 이어폰으로 들을 수밖에는 없겠지만... . 안녕, 또 쓸 게.>
작가의 말)
나는 종종 많은 이들한테 말해왔다.
‘잘 쓰인 편지가 아주 훌륭한 수필작품입니다.’라고.
하지만, 위 글은 잘 쓰인 편지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결코 문장이 화려하지도 않다. 그렇더라도, 작중 화자(話者)들의 문학에 대한 열정, 음악감상에 대한 사랑 등이 군데군데에서 묻어나리라고 믿는다.
온 국민이 휴대전화기를 들고 있고, 문자메시지 주고받음이 생활화된 터. 하더라도, 연인간의 절절한 대화도 그 저장의 취약성으로 말미암아 기록으로 남지 못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에, 33년째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재치 있는 윤 수필작가는 새롭게 시도한다. ‘휴대전화기 메시지 주고받음’을 이처럼 문자화하면 되겠다고. 이 대한민국 수필계에서 내가 창시자라고 자부하면서. 나아가서, 이 글은 두 수필작가가 힘 합쳐 적은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수필’이다.
당연히 이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수필’을, 작중인물인 여류 수필가 그분한테 헌정한다. 그가 ‘거들어 쓴’몫도 절반 정도 있기에. 아무쪼록, 새로운 수필 장르를 개척토록 해준 그대께 경의를 표한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