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7)

윤근택 2023. 1. 3. 13:36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muse)께(17)

                                           - 경비원복을 14번째 갈아입다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새해 1월 1일부터 나는 또 다른 아파트 경비초소로 첫 출근했다오. 내가 생각해보아도, 참으로 괴이하고 기이한 사람이라오. 메모지에다 화살표(→)로 표시해가며, 그 동안 내가 거쳐 온 아파트의 이름을 적어 보았다오. 내가 그 동안 적어왔던 이력서를 토대로 역산(逆算)해본즉, 제 2의 인생길인 아파트 경비원으로 접어든 지가 10여 년째.

   나의 뮤즈,

   이처럼 자리발(?) 못 받는 나의 역마살(驛馬煞)에 관해서는 이미 한, 두 차례 자기변명을 그대께 휴대전화기 문자메시지로 띄운 적 있다오. 이는 나의 ‘문학적 편력(遍歷)’과도 맞물려 있다고. 사 반 세기, 지난 직장에서 오지(奧地)로 오지로 자원해서 돌아다녔다고 하지 않았소? 나는 한 자리에는 ‘좀 쑤셔’ 채 2년도 못 견디었던 거 같소. 돌이켜보니, 문학인인 나로서는 그게 큰 자산이었던 것 같소. 다소 장황하지만, 여기에다 도해해보리다. 고향인 청송 → 대구 →울릉 →영양 →영덕→울진→영양→예천→영주→경산→영천→성주→대구. 울릉의 2년은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을 낳았다오. 울진 1년은 ‘영양 →영덕’3년이 응축되어, 불과 3개월 만에 쓴 두 번째 수필집, <이슬아지>가 되었다오. 그 수록 작품들 가운데에서 ‘유품’은 어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적 있고, 그 책의 힘으로, 나도 모르게 정부로부터 문예창작기금 500만원 통장에 실린 적도 있는... . 사실 그 이후에 쓴 수필작품들은 현재까지 5,000여 편은 될 테고, 종이책 기준으로 50여 권은 될 터인데, 더는 책으로는 묶지 않았을 뿐이라오.

   나의 뮤즈,

   나는 탁상 맡에서 글 쓴 적 없다오. 또, 탁상 맡에서 쓴 타인들의 글들을 무척 경멸해왔다오. 오로지 나는 온 몸으로, 삶의 현장에서 내가 체험하였던 것을 글로써 재구성해왔을 뿐. 달리 말해, 나는 매너리즘에 빠질세라, 늘 저어해왔다오.

   이제 그대께, 새롭게 자리를 옮긴 아파트 경비초소를 소개할 차례.

    일찍이 어른들은 이르셨다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다.’, ‘ 돈 나오는 모티(모퉁이)는 죽을 모티다.’ 등.

    나는 그 많은 편력을 통해, 어른들의 그 말씀 지당하다는 걸 너무도 잘 안다오. 그러함에도, 내가 또 다시 자리를 옮긴 것을 이해해주오. 이곳엔들 나한테 스트레스 주는 이 왜 없겠소? 벌써 하루 만에 어느 '특별한 인물' 만났다오. "집구석에 늙은 개도 키우지 않는 모양이야!"라던 어르신들의 말씀과 맞물리는... . 용역회사 간부가 나를 이 아파트에다 ‘낙하산 인사(?)’하면서, 구성원 가운데에서 누구를 조심하라는 당부가 있었던 터라, 예방접종을 하여준 터라, 그리 두렵지는 않소. '노자'의 가르침인, ‘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柔能制剛).’를 이 윤쌤 모를 것 같소? 윤쌤은 이 바닥에서도 이미 10여 년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어왔으니, 출근 때에는 쓸개를 떼서 벽걸이에 걸어두고, 퇴근 때에 도로 달면 되지 않소? '깨달음' 내지 '깨우침'은 언제고 때 지난 다음에 얻는 거. 죽기 전에는 깨닫지  못하는, 자신만의 한계. 그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가  너무도 측은하지 않소? 

   나의 뮤즈,

   급여도 급여이고 근무조건도 근무조건이지만, 지난 번 유배지였던(?) 아파트 경비원을 3개월여 만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사정 이야기 다시 들려드리려 하오. 내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용단을 내렸다오. 그 아파트 제 3초소 근무자였던 나. 담벼락에 기대어 서서, 휴게시간임에도 밤잠 못 이루고, 담배 한 개비를 꼬나물고 연기를 뿜어대면, 직선거리 200미터 안팎에 경부선 열차가 시도 때도 없이 내달리곤 했다오.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던 그 기차들. 밤이 깊어갈수록 물리학적으로 저기압 탓인지, 그것들 역마(驛馬)들은, 철마(鐵馬)들은 이 감수성 예민한 수필작가를 더욱 힘들게 했다오.‘철커덕철커덕’ 내 가슴팍을 마구 아프게 밟고 가던 그것들. 창마다 전등을 달고 내달리던 그것들. 나는 그때마다 내 그리움이 임계점에 닿았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오.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었다오.

    나의 뮤즈,

    용단을 내렸다오. 그야말로“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전 이사님(용역회사 간부)이 찍어주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운명을 같이 하겠습니다.” 했던 거라오. 용역회사 간부인 그는, 타회사로 3개월여 귀양살이 간 나를 어여삐 여겨, 복권시켜(?) ‘맞춤형 서비스’로 꽂아준(?) 이 아파트 경비원 자리. 그 점 감사하다오. 14번째 경비원복 갈아입은 가운데에서 최적이라오.

    나의 뮤즈,

    그러한데 내 근심은 또 금세 생겨나고 말았다오. 이 점 이해하실까?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온 이 아파트’가 아주 묘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걸, 오늘 새벽 퇴근 무렵에야 새삼 알게 되었다는 거 아니오? 내 아내와 큰딸이 사는 ‘경산시 중방동 e편한세상 아파트’와 내 주거지인 ‘경산시 남천면 송백1리 1152번지 ‘만돌이농장’’중간 지점에 자리한 이 아파트. 이 쪽 저 쪽 어느 곳을 기준삼아도 승용차로 30분 거리 안쪽인 이 아파트. 물리적인 거리는 이보다 더 나은 아파트는 없는데... .

    다만, 공교롭게도 내 그리움의 X선과 Y선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서 육교 등으로 교묘히(?) 넘나드는 지점에 이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 경부선 철로는 경비초소 바로 코밑에 방음벽 하나 두고 깔려 있고... . ‘대구 - 부산 고속도로’ 육교는 그 철로 위에 자리해 있고... . 내 그리운 이는, 내 그리운 이는 언제고 너무도 먼 곳에 계시고... .

   나의 뮤즈,

   내가 이러한 괴로움(?) 문자 메시지 수 통 보내는 동안, 시치미를 뚝 떼고 있던 그대가 이러한 휴대전화기 메시지 불쑥 보내왔다는 것만 기억해주시기 바라오. 먼 뒷날에라도 이 점만은 크게 따질 테요. 정말 그러실 수 있냐고?

 

   <얼마 전에 직장사무실을 대구로 이전했어요.물론 직원들이 다 했지만요. 혹한에 여럿 몸져 누웠다더라고요. 몸이 안 좋아서 아직 집 이사는 엄두도 못 내고요. 윤쌤과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워졌지만, 얼굴 뵐 일 없으니 괘념치 마시고, 작품을 통한 정서적 거리나 좀 좁혀볼 요량입니다. 당분간 진해를 오가며 이삿짐이나 조금씩 싸야겠어요. 새해 첫 날 아침 햇살이 너무 눈부시네요.다시 일상 속으로 풍덩 빠져야겠네요.>

 

    그대도 너무나 잘 아시겠지만, 대구와 경산은 같은 동네라오. 그러함에도 그대는 수필작가 윤쌤의 환상을 깨지 않으려고, 그렇게까지 애쓰신다는 것을. 아마도 그댄,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의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인가 보아요. 14년 동안 재정적 후원자였던 ‘폰 메크 부인’. 그들은 얼굴 서로 본 적 없었음에도... .

    나는, 나는 그대가 대한민국에서 최정상의 여류 수필작가이길 바라오. 나한테 끊임없는 영감을 주는 여류수필가.

 

   작가의 말)

   이 서간문을 엮어 책을 만든다면, 그 판권은 작중인물한테 고스란히 넘겨줄 요량.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