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24)

윤근택 2023. 1. 17. 12:12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24)

                                          - ‘편곡’이 그의 대표작이 된 예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음악계에는 편곡이니 표절이니 저작권침해니 하는 문제로 논쟁을 일으켜, 당해 작품이 대성한 예도 많다. 반대로, 어느 특정 음악이 대성한 이후 그러한 논란을 야기한 예도 많다. 이 연재물을 주욱 써 오는 동안 여러 사례를 보게 되었다. 내가 알기에, 그 대표적 사례가 브람스가 아닐까 싶다.

   브람스, 그는 20대 초반에 헝가리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에두아르트 레메니(Ede Reményi)’를 만나 그와 함께 연주여행을 하였다. 그는 헝가리에서 헝가리 집시무곡에 매료된다. 해서, 그는 헝가리무곡을 21곡씩이나 적게 된다. 그 가운데에는 그 유명한 <헝가리무곡 제 5번>도 있다. 그런데 그게 말썽이었다. 함께 음악여행을 하던 ‘레메니’까지 배신 때리고(?) 앞장서서 헝가리 음악인들을 부추겨(?)‘저작권 침해 제소’를 하고 만다. 그 작품은 민속무곡이 아니라, 헝가리 작곡가 ‘벨러 케를레르(Béla Kéler)’의 순수 창작물 <차르다시 Bártfai의 추억> 으로 밝혀졌다. 그러했음에도, 브람스는 승소하게 된다. 그가 출판 때에 ‘작곡가’라 하지 않고 ‘편곡자’라고 표기했던 덕분이다. 사실 브람스는 그 많은 헝가리무곡들 가운데에서 제 11번, 제 14번, 제 16번만이 순수창작물들이다. 어쨌든, 재미를 톡톡히 본 브람스는 드보르작한테도 자기의 예를 자랑하며 <슬라브무곡>을 적도록 하였다.

    라흐마니노프는 편곡을 많이 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에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는 원곡보다 오히려 인기를 누린다.

   리스트도 편곡을 많이 한 작곡가. 그의 편곡 가운데에는 <파가니니에 의한 대연습곡 중 3번 ‘라 캄파넬라(La Campanella;‘작은 종소리’란 뜻이다.)>가 원곡 이상 인기를 누린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 글 주인공의 대표작은 < 콜 니드라이(Kol Nidrei; 신의 날>와 <스코틀랜드환상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1번>으로 압축된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과 더불어 바이올리니스트들의 필수 레퍼토리가 된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1번>에 관해서는 따로 다음 호에 모아서 적기로 하고.

   이 글의 주인공은 독실한 독일 루터교 신자였다. 어느 날 그는 유대교합창단원으로부터 유대교 옛 성가악보를 건네받게 된다. 순간, 그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을 느꼈던 모양.

   그러자 또 다른 날 그는 저녁 예배를 드리고 귀가하여, 친구이자 칸토르 음악학자인 ‘아브라함 제이코브 리히텐슈타인’한테 편지를 쓰게 된다.

   “나는 개신교 신자이지만, 예술가로서 유대인 선율의 탁월한 아름다움을 깊이 느꼈다네. 나는 이 선율을 기꺼이 내 편곡에 포함시켰다네.”

   그래서 곧바로 적게 된 게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히브리 선율을 토대로 한 아다지오(원제)>인 <콜 니드라이(Kol Nidrei>. 사실 가톨릭 신자인 나도 그 곡을 들을 적마다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1948~, 라트비아)’나 ‘재클린 뒤 프레[(Jacqueline Mary du Pré, 1945~ 1987(향년 42세), 잉글랜드]’가 그 깊은 음향의 첼로를 켜서 연주하는 그 곡을 들을 적이면... .

    많은 음악평론가들이 입 모아 말하는 그대로 느낌이다.

    ‘죄를 회개하는 비통함과 하느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듯한 간절함이 묻어나는 곡이다.’

    이 글의 주인공이 대체 누구? 그가 바로 ‘막스 브루흐[(Max Bruch 1838~1920(향년 82세), 독일]다. 위에서도 이미 밝힌 바 있지만, 그는 히브리 옛 성가를 두 개의 중심주제로 다뤘다. 제1부는 히브리의 선율이 변주되어 나오고, 제 2부는 제2주제가 나온 다음 독주 첼로가 이를 받아 연주하게 된다.

 

   이하는 ‘클래식 백과’ ‘콜 니드라이’편에서 일부 따다붙인다.

 

   <‘콜 니드레’(Kol nidre)는 ‘모두 맹세하세’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로, 한편으로는 아름다우면서도 신비스러운 아람어로 이루어진 기도이다. 이 기도는 유대교의 ‘속죄의 날(욤 키푸르, Yom Kippur)’ 전야제가 시작할 때 바치는 기도였다. 사실 이 날은 유대력에서도 가장 중요한 날이고, 속죄의 날은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날이기도 하다. 속죄의 날의 전야가 간단하게 ‘콜 니드레’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막스 브르후는 이 곡을 42세가 되던 해인 1880년에 지었다. 그가 리버풀 교향악단 지휘자를 지내던 시기다. 그의 ‘콜 니드라이’는 초연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동양적 정서까지 깃들어져 있어, 동서양 누구라도 공감하는 곡이 되었다. 하지만, 그게 그가 살아생전에는 독약(毒藥)이 될 줄이야! 그는 나치정권하에서, 멘델스존과 함께 핍박을 받게 된다. 이를테면 마녀사냥!

    ‘저 눔의 작곡가는 아마 유대인이거나 유대인 피가 흐르는 것 같아. 저 눔의 작곡가 음악은 연주 금지.’

    해서, 안타깝게도, 낭만주의 음악을 풍미했던 그의 그 많은 작품들은 청중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본디 그는 합창곡에 능했고, 멘델스존의 영향을 받아 로맨틱한 음향을 특징으로 하는 <바이올린협주곡 1번> 등 수없는 작품을 빚었다고 하는데... .

    그나마 다행한 것은, 그가 불멸의 위 작품을, 그것도 히브리 성가를 기초로 하여 크게 힘들이지 않고(?) 편곡으로 완성하였다는 사실. 1881년 그가 곡을 완성하고 늦은 나이인 43세에(?),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지닌 소프라노 가수와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하게, 82세에 이르기까지 살았다는 거. 더 나아가, 금세기에 이르러, 그의 ‘콜 니드라이’는 대한민국의 어느 수필작가의 눈가를 늘 촉촉이 적시고 있으니... .

 

   작가의 말)

   모자라는 점은 다들 채워서 읽어주세요. 사실 이 글은 ‘바이올린협주곡’에 관한 공부를 몇몇 날 하다가, 이삭줍기로(?) 적은 것입니다. 그렇다하여 ‘막스 브루흐’의 음악세계를 결코 깎아내린 것은 아닙니다.

   종종 이야기하지만, 저는 아직도 못다 쓴 연서를 적을 뿐, 작품을 쓴다고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저는 이 글을 제 사랑스런 그녀가 최초로 읽어주길 바라면서 나름대로 정성들여 적었습니다. 그는 제 뮤즈이시니까요.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