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0) -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거에요’-
'떨떨' 개는 눈에다 '인공눈물' 방울방울 떨어뜨리고 쓴 글입니다.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0)
-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거에요’-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제 이 연작물도 제 130화에까지 닿았다. 사실 나는 이 음악 이야기 말고도 그 동안 여러 종류의 연작수필을 적어오지만... . 이 음악 연작물을 적어오는 동안, 적어도 130명 이상의 작중 음악인들을 만났다. 내가, 문학인인 내가, 수필작가인 내가, 서른둘에 어느 문학잡지를 통해 정식으로 수필문단에 오른 내가, 혼자 자조(自嘲)섞어 말하게 될 줄이야!
‘그 많은 예술 장르들 가운데에서 음악이 으뜸이야! 음악가들 말고는 어느 장르의 예술가도 걸음마를 제대로 못하는 나이에 벌써 예술작품을 빚었다는 예를 들어본 적 없어. 문학의 경우,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모국어를 익혀 공책에다 적을 줄 아는 데에서 출발하게 돼. 내 아무리 유년시절부터 국문(國文)을 깨쳤다 할지라도... .’
또, 하나 고백할 게 있다. 나는 30년 넘게 5,000여 편 수필작품을 적어오는 동안, 사전(事前)에 알아서 적은 글은 거의 없다. 당해 작품을 쓴 이후에 토막지식이 하나씩 늘어났을 뿐이다. 해서, 토막지식이 5,000여 개는 되는 셈. 마찬가지다. 이 연재물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빚고 있다. 이를 ‘지적(知的)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야할지. 나는 엉클어진 실꾸러미에서, 혹은 ‘꾸리실’에서 실마리를 잡게 되면, 그 끝이 나올 때까지 기어이 올올 풀어내고를, 잇고를 거듭 하였다. 역설적으로, 나는 7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모르는 게 많아서 무척 행복하다, 아직도 찾을 게 너무 많은 덕분에.
각설(却說)하고.
오늘 나는 라디오를 통해 아주 감미로운 플루트곡을 듣게 되었다. 자주 듣던 곡이었으나, 그 누구의 작품인지 등에 태무심(殆無心)하였다. 진행자는 쇼팽의 <로시니 주제에 의한 플루트 변주곡>임을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휴대전화기를 조작하여, 인터넷 검색을 하는 한편 A4용지에다 마구 적어나가기 시작하였다. 쇼팽이, 그 어린 14세 쇼팽이, 우리 쪽으로 계산해본즉 중학교 일학년짜리에 불과했던 그가, 그런 명곡을 적다니 말이 되냐고? 더욱이, 그는 플루트라는 악기를 다루어본 적도 없다는데, 일생일대 단 한 곡의 플루트곡을 그렇게 적었다니! 이 곡은 그가 39세로 생을 마감한 다음, 유작(遺作)으로 남았다고 한다.
<로시니 주제에 의한 플루트 변주곡>은, 쇼팽이 6세 나이 무렵인 1817년에 초연된 ‘로시니(Gioachino Rossini, 1792~1868, 이탈리아 오페라 전문 작곡가)’의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 La Cenerentola; 신데렐라)>를 바탕으로 적은 곡이다. 더 속속들이 말하자면, 그 오페라의 주인공 ‘라 체네렌톨라’의 마지막 아리아인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거에요’를 플루트변주곡으로 만든 작품. 로시니는 25세 무렵인 1817년에, 고작 3주 걸려 그 오페라를 완성했다. 다시 더듬고 넘어간다. 로시니는 25세에 그 오페라를 적었다. 쇼팽은 그 오페라 마지막 아리아를 듣고, 14세가 되던 해 그 변주곡을 적었다. 또 한 명의 음악가가 그 아리아에 매료된다. 바로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알려진 파가니니(1782~1840, 이탈리아). 파가니니는 로시니보다 10년 먼저 태어났다. 파가니니는 35세 무렵 그 아리아를 바탕으로 <로시니 신데렐라 주제에 의한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을 적게 된다. 파가니니 고유의 그 현란한 기교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곡이다. 연주시간 10분43초나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들 세 사람 공히 40대 이전에 동일 작품으로 빛을 발휘하였다. 놀랍기 그지없다.
이제 오페라 <라 체네렌톨라>를 집중탐구할 단계. ‘샤를 페로’의 동화를 대본으로 삼은 2막짜리 오페라다. 18세기경 이탈리아 ‘살레르노 왕국’이 배경이다. 로시니는 본디 그 작품명을 <안젤리나(Angellina)>로 지었다. 그러나 검열당국은 당시 정부 장관의 이름이 ‘ 안졸리나(Angiolina)’임을 들어, 발음면에서 비슷하다며 제목을 바꿀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이럴 때 썩 어울리는 한마디는 ‘지랄도 풍년!’. 해서, 로시니는 불가피하게, ‘La Cenerentola’라고 제목을 바꾸게 된다. 작중 주인공 ‘안젤리나’가 늘 화로 옆에서 일만 죽도록 하는 바람에 ‘(옷에)재가 묻은 아가씨’란 뜻이란다.
오페라 감상의 핵심은 역시 줄거리. 해서, 그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제 1막)
‘돈 마그니피코(Don Magnifico)’의 집에서
이부이모(異父異母) 즉, ‘씨 다르고 배 다른’ 세 자매들. 언니 둘은 서로 잘났다고 다투는 중에도 막내 안젤리나는 묵묵히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다. 벽난로에서 흩어져 나온 재가 안젤리나 옷을 회색으로 물들인다. 그래서 ‘라 체네렌톨라’ 곧, ‘재가 묻은 아가씨’란 별명을 얻게 된다. 그녀는 ‘옛날 임금님의 신부 고르기’란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대자, 언니들은 한사코 저지한다. 불쌍한 안젤리나는 친부(親父)가 죽자, 엄마는 안젤리나를 데리고 이미 두 딸을 둔 유부남 ‘돈 마그니피코’한테 개가(改嫁)했다. 엄마도 죽고 말았다.
이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돈 마미로(Don Mamiro)’ 왕자의 가정교사이자 철학자인 ‘알리도로(Alidoro)’였다. 그는 부러 거지복장을 하고 동냥을 빌었다. 아버지와 두 언니는 그를 거들떠보들 않았다. 그러나 착해빠진 안젤리나는 그 거지한테 빵과 우유를 건네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왕궁으로 돌아온 알리도로. 왕자한테 보고한다.
“왕자님, 드디어 왕자님 배필감을 찾았어요. 어서 대왕마마께 약속하신 대로 무도회를 여시어... .”
왕자는 무도회를 열어 많은 귀족 아가씨들을 궁으로 초대한다.
주책없는 아버지 ‘돈 마그니피코’와 못생긴 언니들 둘은 궁정 무도회에 갈 준비로 여념이 없다. 안젤리나는 밀린 일이 많아서 무도회에 갈 엄두도 못 낸 데다가 가족 가운데에서 누구 하나도 함께 가자고 하지도 않는다.
그날 무도회에서도 왕자는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찾지 못하였다. ‘알리도로’는 안젤리나가 마음에 든다고 침이 마르게 칭찬하자, 한번 만나보기로 마음먹고, 하인 ‘단디니(Dandini)’와 단둘이서 마을로 나온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하인 단디니와 옷을 바꿔 입고 안젤리나의 집을 찾아간다. 안젤리나와 단디아 옷으로 바꾸어 입은 왕자는 첫눈에 서로 반해, 사랑의 듀엣을 부른다. 이에 알리도로는 안젤리나가 그렇게 좋으면, 무도회로 불러 신부로 삼으면 될 것 아니냐고 귓속말로 부추긴다.
제2막)
무도회가 한창
왕자의 하인 단디니는 여전히 왕자 행세를, 진짜 왕자는 하인 행세를 하고 있다. 안젤리나는 알리도로의 도움으로 무도회에 참석한다. 가짜 왕자가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하자, 자신은 왕자님의 하인과 이미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면서 청을 거절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진짜 왕자가 그녀에게 춤을 추자고 청한다. 늠름하고 멋진 청년과 사랑을 나누고, 생각지도 않은 왕궁 무도회에 참석하게 된 그녀. 한꺼번에 찾아든 행복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그녀는 가짜 하인 노릇을 하는 왕자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 팔찌를 벗어주면서 다시 찾아오라고 말한 뒤 사라진다.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믿으면서.
드디어 신분을 드러내고 그녀한테 나타난 왕자.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증표로 팔찌를 보여준다.
두 사람은 결혼 서약을 하러 성당 제단으로 향한다. 사람들은 그제야 ‘행운의 수레바퀴’가 멈출 곳에서 제대로 멈췄다고 환호한다. 안젤리나는 정말로 아름다운 註1)‘콘트랄토(Contralto)’ 음역의 그 유명한 아리아,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거에요’를 부르고 난 뒤 자신을 괴롭혔던 가족을 용서한다.
내 이야기 슬슬 정리할 단계. 사실 오페라 자체만큼이나 성공한 아리아나 간주곡이 의외로 많다. 이 농부 수필가가 기억하는 곡들 몇을 대어보겠다.
아리아로는 비제의 <진주조개잡이>의 ‘ 귀에 익은 그대 음성’, 벨리니의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이여’. 간주곡으로는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 볼프 페라리의 <성모의 보석>의 ‘간주곡’ .
25세의 로시니는 위 오페라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 마지막 아리아,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거에요’만으로도 독립적으로 애연된다. 애연에 그치지도 않았다. 14세의 쇼팽한테 가서 <로시니 주제에 의한 플루트 변주곡>으로 재탄생되었다. 35세 악마의 바이올리니스인 파가니니한테 가서는 <로시니 신데렐라 주제에 의한 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을 짓도록 하고, 그로 하여금 현란하게 연주토록 하였다.
자, 그런데 그런데 윤근택 수필가의 5,000여 편씩이나 되는 수필작품들이 변주되거나 편곡된(?) 적은 그리 흔치 않다는 거. 사실은 그들이 대어놓고 말들은 아니 하였지만, 몇 분의 수필작가와 시인 등은 그들 작품에 내 이야기나 내 글을 찍어넣어(?) 쓴 것으로 알고 지내긴 한다. 그 점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다. 보람된 일이기도 하고... . 심지어, 나의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과 두 번째 수필집이자 여태껏 낸 책들 가운데에서 현재까지 끝 작품집인 <이슬아지>를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필독(筆讀) 내지 필사(筆寫)한 수필가도 몇 분 계신다는 것도 알고 지내긴 한다.
註1)‘콘트랄토(Contralto)’
여성 목소리 가운데에서 가장 낮은 음을 내는 여성 성악가. 혹은 그의 낮은 목소리. 테너와 거의 겹쳐지는 음역으로, 오페라에만 쓰인다고 한다. 로시니의 위 오페라를 두고, 특별히‘콘트랄토 오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 애독자들께서는 ‘문주란’ 가수의 노래를 떠올리면, 그 음역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말)
이 글을,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께 바쳐요. 모자라는 부분은 채워 읽어주세요. 실은, 이 글 쓰려고 몇몇 날 집중탐구하였고, 메모한 양만 하여도 A4용지로 제법 되는데...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