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5) - 독창적이지 않아도 예술이 될 수는 있다 -

윤근택 2023. 2. 14. 11:39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5)

                           - 독창적이지 않아도 예술이 될 수는 있다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이 연재물 전편(前篇) 제 134화 하단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 (상략)사실 ‘레시피기’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처럼 이야기가 길어져버렸다. 어쩔 수없이 ‘레스피기 이야기’는 다음 호로 미룬다. (하략)>

 

    그리고 그 134화에 이런 구절도 있다.

 

     <(상략) 살펴본즉, 당해 예술가들은 장르와 상관없이 양(陽)으로 음(陰)으로 끈끈한 상호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기에 그들 출몰연도 및 작품 발표연도가 나한테는 아주 중요한 열쇠다.(하략)>

 

    ‘포(砲)·차(車) 떼고’ 곧바로 ‘레시피기 (1879~1936,이탈리아)’이야기. 그는 21세가 되던 해에 러시아로 가게 된다. 그는 상트테르부르크대학교에 재직 중이던 ‘림스키코르사코프(1844~1908, 러시아)’로부터 약 5개월 여 관현악곡법을 제대로 익힌다. 사실 ‘러시아 5인조’의 일원이기도 했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오케스트레이션의 대가(大家)였다. 그의 작곡 공부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1864~1949, 독일)’의 과감한 화성기법을 익힌다. 귀국 이듬해 그는 ‘막스 브루흐(1838~1920, 독일)’를 스승으로 모신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관현악 색채를 알뜰히 익히게 된다.

    한편, 그는 동시대에 잘 나가던 시인인 ‘단눈치오(1863~1938)’의 시에 매료된다. 단눈치오는 이탈리아 문단을 이끈 ‘데카당스(décadence) 문학’,곧 퇴폐문학의 대표자이다. 레시피기는 단눈치오가 묘사한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로마 풍토에 매료되어, 아주 기발한(?) 음악을 구상하게 이른다. 그 유명한 <로마 3부작>이 드디어 탄생할 단계. 단눈치오의 시(詩)들이, 장르는 다르되, 레시피기한테 아주 중요한 ‘모티브(motive)’ 내지 ‘단초(端初)’를 준 셈. 그도 무대를 로마로 잡았다는 점. ‘레시피기면 <로마 3부작>,<로마 3부작>이면 레시피기’라는 하나의 등식(等式)을 기어이 만들고야만다.

    레시피기가 추구한 표현기법은, 놀랍게도, 결코 독창적이지 않았다. 이따가 따로 모아서 밝히겠다. 그가 그 <로마 3부작> 가운데에서 첫 번째 모음곡인 <로마의 분수>를 적었던 때는 그가 37세가 되던 1916년. 그 작품을 적기에 앞서 22년 전인 1874년에 이미 러시아의 무조륵스키는 <전람회의 그림>을 모음곡으로 10편씩이나 적었다. 무조륵스키는 절친인 화가 겸 건축가가 요절하자, 뜻 있는 이들이 그의 유작을 전시하였고, 무조륵스키는 그 유작 전시회에서, 고인이 된 친구를 그리워하며, 그 회화(繪畫)들을 오선지에다 음표로 모조리 바꿔치기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음악이되 회화적인 음악이다. 그랬던 1874년의 <전람회의 그림>은 ‘모리스 라벨(1875~1937, 프랑스)’한테 무려 16년 후인 1922년에 가서, <전람회의 그림 관현악 편곡>이 된다. 그가 편곡한 그 곡은 ‘관현악법의 교과서’로 부른다. 러시아 무조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1874년작)>은 프랑스의 드뷔시(1862~1918)한테 영향을 주어, 그를 인상파 작곡가로 만들고, 1890년에는 <달빛>을, 1905년에는 교향시 <바다>를 적도록 하였다. 여기서 다시 더듬고 넘어가자. 무조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1874년작)> - 드뷔시의 <달빛(1890년작)> - 드뷔시의 <바다(1905년작) - 레시피기의 <로마의 분수(1917년작)> -라벨의 <전람회의 그림 편곡(1922년작). 여기서 <로마의 분수(1917년작)> 이전에 끼어든(?) 화가도 있다.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인상 : 해돋이(1872년작)>.

     위 단락에서 웅변 이상으로 보여주었듯, 레시피기의 <로마 3부작>은 그 예술성 여부를 떠나, 단언컨대, 결코 독창적이지는 않다. 무조르그스키는 회화를 오선지에 음표로 바꿔치기하였고, 그 작품은 다시금 드뷔시한테 이르러 답습(踏襲)토록, 아니 발전토록 하였으며, 라벨한테 가서는 더욱 발전시켜 관현악으로 편곡케 하였다. 그 사이에 모네도 있었다. 그 다음에 비로소 레시피기의 <로마 3부작>이 출현했다.

    많은 음악 평론가들은 그 작품, <로마 3부작>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 농부 수필작가는 이 글의 완성도를 드높이기 위해, 그의 <로마 3부작>을 낱낱이 다 들어보았다. 일단, 그 ‘애씀’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 예술성에 관해서만은 결단코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다. 아마 내가 그의 음악에 아직 익숙지 않아서일는지 모르겠다. 하더라도, 이 점만은 도저히 지나칠 수가 없다. 그가 자기 모국인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자긍심을 가졌으면 그러한 모음곡을 적었겠냐 하고서.

    이제 간략하게나마 그의 <로마 3부작>을 소개하기로 한다.

   

   <로마의 분수(1916년작)>

   제 1곡 : 새벽 줄리아 계곡의 분수

   제 2곡 : 아침 트리토네 분수

   제 3곡 : 한낮의 트레비 분수

   제 4곡 : 저녁 빌라 메데치 분수

 

    위 4곡은, 본디 로마에 화려한 분수가 많은점에 착안하여, 그 곳들 가운데에서 네 곳의 분수를, 시간대별로 감상하고, 거기서 시시각각 변하는 ‘광선(光線)과 분수의 어우러짐’을 오묘하게 귀로 듣든 회화(繪畫)로 그린 음악. 사실 이미 위에서도 주욱 이야기하였지만, 무조르큭스키- 모네 -드뷔시가 다들 표현하였던 그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딴에는, 독창적이라고 하겠지만, 이참에 농부 수필가는, 그를 ‘아류(亞流) 이탈리아식 상징주의 작곡가’로 깎아내려도 될 듯.

 

    <로마의 소나무(1924년작)>

 

   제 1곡 : 보르지아 별장의 소나무 : 보르지아 정원에 서 있는 소나무숲에서 군인 흉내내며 노는 아이들 모습 그림.

   제 2곡 : 카타콤의 소나무 : 로마 교회에 있으며, 성직자들이 비밀로 집회하던 지하 공동묘지 앞 소나무를 그림.

   제 3곡 : 지아니콜로도 언덕의 소나무 : 이곳에서 보름달의 빛을 받아 빛나는 소나무가 있는 풍경 그림.

   제 4곡 : 압피아 가도(街道)의 소나무 : 예전 행군하는 로마군들을 그림 번성했던 옛 로마 그리워함.

 

    <로마의 축제(1929년작)>

 

   제 1곡 : 서커스 게임

   제 2곡 : 희년제

   제 3곡 : 10월제

   제 4곡 : 주님 공현 대축일

 

    이제 내 이야기 총정리할 단계. 사실 모든 예술이 하늘에서 거저 뚝 떨어진 선물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예술가들이 평소 주장하듯, 아무리 여타 예술가의 영향을 아니 입었다고 주장하더라도,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양(陽)으로 음(陰)으로 영향을 입기 마련이다. 레시피기는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작곡가이다. 그들 정서에 맞고, 민족혼이 머무르는 위 풍물들을 노래하였기에 더욱 사랑하고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소나무’로 논하자면, 독일 태생이며 영국 귀화자이였던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Serse)>의 아리아, ‘사랑스런(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이여(Ombra Mai Fu)’를 능가하는 작품이 없다. 심지어, 대한민국 애국가 제 2절에 나오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보다도 ‘Ombra Mai Fu’가 애연된다는 것을.

    레시피기가 동일 제재로, 표제음악(標題音樂)으로, ‘모음곡(suite; 組曲)’을 그처럼 <로마 3부작>으로 적었다는 것만으로도 추앙받을 일. 30여 년 수필작가로 행세해온 나, 그 동안 여러 연작물을 적어오는 나. 동일 제재로 여러 연작물을 적는다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기에, 더욱 그를 존경한다.

 

   작가의 말)

   예술가인 나의 맘 깊이 헤아려, 드물게나마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대. ‘새롭게 얻은 나의 뮤즈께’ 이 글 공손히 바쳐요. 딴에는 애썼지만, 마음에 ‘쏘옥’ 아니 들 수도 있을 테죠!

    나는 그대가 이 대한민국에서 최정상급 수필작가가 되길 바랍니다. 더도 덜도 말고... , 님은 제 훌륭한 뮤즈세요. 꼭히 서로 얼굴 보아야하는 건 아니지요.  그대마저 또 맘에 아니 들면, 보따리 챙기면 될 일. 나는 언제고 그러한 준비는 되어 있다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