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여편네 아주 쉽게 찾는 법
자기 여편네 아주 쉽게 찾는 법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위 제재에 대한 이야기는 저기 뒤로 미뤄둔다. 아니, 초등학교 시절 소풍에서 하이라이트인 ‘보물찾기’처럼, 이 글 어느 곳에다 숨겨놓는 것이 좋겠다. 꾀가 멀쩡한 내가, 작가인 내가 애독자님들께서는 평소 한눈팔고 내 글 끝문장까지 아니 따라오는 걸 번연이 아는 터에.
해서, 엉뚱한 이야기로부터 출발. 새벽 여섯 시 반. 여축없이 맞교대자 ‘김 경비반장’이 경비초소에 들어섰다. 간단히 인수인계를 하고, 도시락 광주리를 든 채, 지하 1층 주차장으로 향했다. ‘원격 자동차 키(key)’의 버튼을 눌렀다. 라이트 켜지고 ‘빽’ 소리 나는 차가 없다. 지하 1층 주차장 군데군데 둘러, 그 방법을 반복하였다. 역시 실패. 이번엔 지하 2층 주차장으로 내려가 그 짓을 반복했다. 기척이 없다.
‘ 아, 내가 지상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건가?’
마찬가지로 실패. 그리하여 내 승용차를 육안(肉眼)으로 식별하여 찾는 데 무려 20여 분 걸렸다. 전에도 한 번 경험한 바 있지만, ‘원격 자동차 키(key)’의 배터리가 다 닳은 모양. 문명이란, 가금씩 우리네를 이처럼 난감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심지어,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예도 있다. 사실 다들 자기 차를 못 찾아 나처럼 헤맨 경험이 한, 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 색상과 꼴이 하도 비슷비슷하여 자기 차를 찾는 일도 육안으로는 헷갈린다는 것을. 그러니 자기 여편네를 올바르게 찾는 일인들? 참,참,이 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여성 애독자들은 내가 너무 여성비하적(?) 표현을 한다고 나무랄는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여편네’는 정말 아름다운 말이다. ‘옆에 ’라는 말이란다. 그리고‘마누라’는 ‘마주보고 누워라’의 준말이라나? ‘남편’이 ‘남의 편’의 준말이듯. 믿거나 말거나.
오늘 새벽의 해프닝은(?), 평소 연상작용이 아주 빼어난 이 수필작가한테 또 다시 ‘연상의 사슬’을 마구 이어나가도록 한다. ‘찾기 어려움’을 나타내는 속담은 많다. ‘잔디밭에서 바늘 찾기(Searching for a needle in haystack)’, ‘모래사막에서 바늘 찾기’, ‘감자밭에서 바늘 찾기’,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등. 다소 뉘앙스는 다르지만,‘대해일적(大海一滴)’과 ‘창해일속(滄海一粟)’도 있다. 그런가 하면, ‘난망(難望)함’을 일컫는 말도 있다. ‘백년하청(百年河淸)’,‘백난지중대인난(百難之中待人難)’이 그것들이다. 전자(前者)는 ‘황하가 맑아지기를 기다리기 어렵다.’는 뜻이고, 후자(後者)는 ‘(우리 옛 어른들 말씀에) 수많은 일 가운데에서 사람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뜻이다. 여담. 나의 숙씨(叔氏;셋째 형님)는 어릴 적부터 빼어난 유머감감을 지녔던 양반인데, ‘난망함’을 두고, ‘없는 손자 환갑 바라기’라고 하였다. 그 어떤 한자숙어보다 빼어난 표현임에는 틀림없다. 나의 숙씨는 모내기철 무논(←물논)에 개구리가 ‘개골개골’대는 걸 빗대서, 누군가가 ‘물론(물논)’이란 말을 쓰면, ‘물론(물논)은 개구리 운동장.’란 말도 쓰던 양반이다. 그 양반은 작가인 이 아우보다 그처럼 언어감각이 빼어나다고 할밖에.
자, 내가 수필작가 행세를 한 지도 벌써 30년 넘는 마당에, 쓴 글들만도 종이책 50권도 넘을 5,000여 편 되는 터에, 더 길게 적어서 무엇하리! 위 제목으로 삼은 ‘자기 여편네 아주 쉽게 찾는 법’에 관해 화끈하게 밝힐 차례다. 이는 이미 성인유머에 있는 이야기. 결코, 내가 최초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니, 나한테 절대로 시비를 걸지 마시길.
1. 수많은 여성들을 발가벗겨 나란히 눕힌다.
2. 전등을 끄고 온통 암흑세계로 만든다.
3. 차례차례 그 나체 여성들의 음부(陰部)를 두 손으로 더듬어나간다.
4. 그러다가 어느 여성의 몸에 이르러 거시기가 기립(起立)하지 않는다.
5. 환호한다.
6.“드디어 내 여편네를 찾았다!”
명색이 작가인 내가 이 음담패설로 이야기 마무리 지을 성싶은가. 내가 오늘 새벽, 20여 년 동안 타고[乘] 다녔던 애마(愛馬) ‘50조 9115’를 못 찾아, 20여 분 헤맸던 것을 생각한다는 거. 평소 ‘차량 원격 키’에 너무 익숙해져, 태무심(殆無心)하다가 보면, 예기치 않았던 사고가(?) 생길 수도 있다는... .
작가의 말)
나의 뮤즈께서는,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서 읽어주시길. 나는 이 짧은 글을, ‘미니멀리즘 수필’을 쓰는 동안에도 그댈 내내 그리워했다오. 그대께 바칠 요량으로 썼다오. 공손히 이 글 바치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