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력
편력(遍歷)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1. 새로운 일터에서
이제 내 나이 쉰 여덟. 돌고 돌아, 오늘은 ‘중소기업대구경북연수원’이란 곳의 사감실(舍監室)에 와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평소 나의 홍길동 같은 행태(行態)를 알고 지내는 독자님들. 다들 분명히 이런 질문을 던져올 것이다. “그곳엔 또 웬일로?” 하고서.
나는 그 동안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하였으며, 오늘 드디어 내가 늘 갈망하였던 직종에 합격통지를 받았고,발걸음 가볍게 첫 출근을 하였다. 사실 나는 그 짱짱하던 통신회사에서 사반 세기 근무 후 이태 전 ‘묻지마 식으로’ 명예퇴직을 감행하였다. 그리고는 고추농사, 감 농사, 벼 농사 등 농사에 나름대로 분주하였다. 그런데 속된 말로 돈이 아니 되었다. 고추 값 폭락 등으로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으며, 여태 창고엔 팔지 못한 건고추도 수 백 근 남아 있다. 부득이 막노동판에도 여러 날 다녀 보았다. 남들이야 뭐라 하든, 나는 쉬는 일에 관해서만은 전혀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지난 해 고용센터로부터 실직급여를 받는 동안에도 나는 그분들한테 굳이 재취업희망직종을 ‘아파트 경비’라고 적어서 제출한 바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의 취직은 순전히 내가 믿는 하느님 덕분이다. 구구이 그 드라마틱했던 과정을 이야기 할 것도 없을 것 같다. 요컨대,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의 결과다.
나한테 안성맞춤의 직장이다. 나는 본디 밤잠이 없는 사람이고, 어차피 농막에서 지내더라도 밤새 꼿꼿이 앉아 수필을 적는 사람이다. 내 사무실에는 밤새 맘대로 쓸 수 있는 인터넷이 깔려 있다. 게다가 욕실(浴室)까지 딸린 숙직실도 있다. 새벽엔 일어나 교대자가 올 때까지 산책로 등을 거닐며 또 하루를 열어갈 수가 있다. 교대자가 오면,곧바로 승용차를 몰아 내 농장으로 가서 농사에 몰두하면 될 것이고.
여느 직장 연수원도 대체로 그러하지만, 이 연수원도 예외는 아니어서 무척 쾌적한 환경이다. 부대시설과 조경 등도 참으로 잘 되어 있다. 내 가족이 사는 아파트와 내가 사는 농막의 중간 지점 산자락에 위치한 이곳. 정말로 나는 향후 3년 동안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급여의 많고 적음은 이제 더 이상 따질 나이도 아니지 않은가.
서두가 너무 장황하였다. 하더라도, 나를 그 동안 주욱 사랑해온 독자님들로부터 축하 받고 싶다. 독자님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더 부지런히 글을 써서 선보이고자 한다.
2. 참으로 별난 분들
이번에는 독자님들께 재치문답(?)을 해보아야겠다. 내가 지금부터 주욱 늘여놓는 분들의 공통점은?
예수님, 석가님, 공자님, 소크라테스, 디오게네스, 김삿갓, 탁발승(托鉢僧),돈주앙, 카사노바, 거지, 집시(Gipsy), 보헤미안, 장돌림(장돌뱅이),뜨내기,행성(行星)… .
그 답은, ‘모두 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떠돌아 다닌 분들.’이다. 다만, 그 ‘떠돌아 다님’에 우리는 각기 다른 표현을 할 따름이다. 그 대표적인 분이 공자님이다. 제- 노- 위- 진- 조-노 등 숱한 나라를 떠돌아 다녔다. 이를 두고 ‘천하주류(天下周流)’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떠돌아 다님’도 아주 유명하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같은 옷을 입고 지냈으며 늘 맨발이었다고 전해온다. 하여간, 이 별나빠진(?) 분들은 하나같이 바람 같은 존재들이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역마살(驛馬煞)을 끼고 세상에 나온 분들이다.
이번엔 이 ‘떠돎’과 비슷한 뜻을 지닌 말들을 차례차례 불러 모아본다.
유세(遊說). 자기 의견 또는 소속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일컫는다. 한편, 사회적 지위나 권세가 있음을 자랑스레 떠벌리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는 것도 일컫는다. 국어사전은, 이밖에도 10개 가량의 뜻이 더 있음을 알려준다.
편력(遍曆). 이곳 저곳을 널리 돌아다님을 뜻한다. 아울러, 여러가지 경험을 하는 것도 일컫는다.
섭렵(涉獵). 널리 일거나 쌓는 걸 뜻한다. 본디 ‘물을 건너 찾아다니다.’란 말이다.
탁발(탁발).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는 걸 이른다.
방황(彷徨). 이리저리 정처 없이 떠돌아다님을 일컫는다.
방랑(放浪). 일정한 목적없이 떠돌아다님을 말한다.
유랑(流浪). 방황과 방랑과 아주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다.
이밖에도 많은 유의어(類義語)가 있지만 생략키로 하고. 나는 위에 서 열거한 분들 대개는 저마다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는 사실에 유의한다. 어느 한 곳에 머무르기보다는 그렇듯 쏘다니는 게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유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듯 발품을 팖으로써 시야를 넓히고, 보다 많은 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 않았곘느가?
사실 우리네 인류가 정착생활을 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본디는 먹을 것을 찾아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녔다. 바로 수렵시대의 생활 패턴이 그것이었다. 아직도 유목민들은 좋은 풀을 찾아 그러한 떠돌이생활을 마다 하지 않는다.
3. 별나빠진 나
오늘 마침 새 직장에 첫 출근을 한 나. 왜 갑작스럽고 엉뚱한 이 이야기를 독자님들께 들려주고자 했을까? 사실 나도 위에 소개한 분들에는 턱 없이 모자라지만, 떠돌이 생활에 너무도 익숙해 있었다. 58년의 모든 행로 대부분을 생략하더라도,지난 직장생활 기간만 하여도 그러하였다. 고향인 청송이 출발지였다. 그리고는 대구-울릉 -대구-영양-영덕-울진-영양- 예천-영주- 경산- 성주 – 대구 등으로 이어지는 나의 발자취. 사실 인사부서에서 그렇듯 ‘뼁뺑이(?)’를 돌린 게 아니었다. 언제고 내가 자원(自願)하여 오지(奧地)로 오지로 가고자 하였다. 나는 한 자리에 채 2년도 견디기 힘들었다. 나 자신이 너무 나태해지는 것 같아 좀 쑤셔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금 돌이켜보더라도 참으로 잘 한 처사였다. 그러다 보니 돈을 제법이나 길 위에다 뿌리긴 하였어도, 내가 그러모은 추억이 만만찮다. 그 점에 관해서도 지난 직장이 너무도 고맙게 여겨진다.
두서 없는 이야기를 이쯤에서 슬슬 사려야겠다. 요컨대, 나는 그 어느 한 곳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원치 않는다. 나의 편력이, 나의 역마살이 수필작가인 나한테 큰 자산이 되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아가서, 이 한밤 새롭게 얻은 이 직장에서 또 얼마나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될는지 설레기까지 한다. 스스로 추켜 올리는 말로 이 글을 접기로 하자.
‘너무도 사랑스런 나! 그 어느 곳, 그 어느 환경에서도 글을 쓰는 나!’
(2014.2 12, 자정 무렵. 새로 얻은 어느 연수원 사감실에서. 윤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