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8) - ‘하여튼’ 그 꼬맹이는 못 말려-
* 글의 완성도 여부와 관련 없이, 나는 아니 쓰면
감각 무디어질세라, 이렇게라도 적어야겠다.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38)
- ‘하여튼’ 그 꼬맹이는 못 말려-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때는 1730년대. 오스트리아 어느 시골 마을에 아주 맹랑한 꼬맹이가 살았다. 녀석은 아빠엄마 손을 잡고, 우리 식으로 오일장에 가곤 하였다. 아빠엄마가 한눈파는(?) 사이, 녀석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아빠엄마는 그 아이를 찾으려고 시장바닥을 헤맨다. 녀석은 ‘용용 죽겠지!’하며 가축시장에 숨어 있었다. 녀석은 그곳 가축시장에서 온갖 짐승들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녀석은 마지못해 아빠엄마의 손에 이끌려 집에 가곤 하였다.
그는 6세가 되던 해 고향집을 떠나, 어느 교회 성가대 단장인 사촌 댁에 가게 된다. 거기서 음악공부를 하게 된다. 말이 음악공부이지, 그 댁도 가난하였다. 형으로부터 매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의 아버지는 마차 수레바퀴 수리공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결혼 전에 어느 부유한 귀족 가정의 식모 내지 가정부였다. 그는 그처럼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하지만, 목소리는 그런대로 쓸 만하였던 모양. 어느 음악인의 도움으로 교회 성가대에 발탁되어, 성가대원으로 지내게 된다. 그런데 변성기가 오자, 음악 관계자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한테 와서, 아이의 목소리가 아까우니, 거세하여 ‘카스트라토 가수’즉, ‘남성이면서 여성 소프라노를 부르는 가수’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은근히 권유한다. 그의 부모는 극구 거절한다.
그는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은 바도 없었음에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나날 음악적 행운이 찾아 들었다. 맨 나중에는 ‘에스테르하지 후작’별장의 전속 음악장으로(?) 30여 년 봉직하게 되었고, 물질적으로 그다지 쪼들림 없이 지냈다.
대체, 그가 누구? 그가 바로‘교향곡의 아버지’로, ‘현악사중주곡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하이든( 1732~1809, 오스트리아)다. 그의 음악사적 업적과 여러 에피소드는 과감히 생략코자 한다. 나의 애독자들께서도 웬만큼은 아실 테니.
대신, 내가 최근 ‘KBS 클래식 FM’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새롭게 안 사항만 전하고 글 맺으려 한다.
하이든, 그는 ‘하여튼’ 못 말리는 아이였다. 성인이 되었을 적에도 어릴 적 가축시장에서 듣고, 흉내 내었던 여러 가축들의 목소리를 차례차례 자기가 적은 악곡 속에다 그대로 녹아 내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그가 적은 작품들 가운데에서 짐승들 소리와 기계와 관련된 작품목록을 소개코자 한다. 물론, 그가 직접 부제를 붙인 게 아니라, 후세사람들이 그렇게 이름 지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향곡 82번 C장조(곰), 현악 4중주곡 49번 (개구리), 현악4중주곡 63번(종달새), 파리교향곡 83번 (암탉), 교향곡 제 101번(시계) 등. 그가 유년시절에 들은 음향들조차 얼마나 잘 갈무리해두었으면... .
여담.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졌던 그 유명한 ‘장남감 교향곡’은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왜 그러한 일이 있었는지가 더욱 흥미롭지 아니한가. 하이든이 음악계에서 최초로 악보 발간을 했다고 한다. 귀족 및 부유층에서는 하이든 신작 악보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고 한다. 부르는 게 값이었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돈벌이에 영혼 팔린(?) 풀판업자들이 위작(僞作)을 마구 찍어내었다고 한다. 세기가 여러 번 바뀌었음에도, 아직도 음악학자들은 그 많은 하이든의 작품들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단다. 대체, 그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빚었기에? 106곡의 교향곡에다 68곡 현악사중주곡에다 300여 곡의 실내악에다... .
굳이, 내가 이야기를 더 끌고 갈 일도 없게 생겼다. ‘하여튼’, ‘여하튼’, ‘하이든’, 그는 대단한 작곡가였다.
조심스럽게 말하노니, 윤 농부 수필가가 30 여년 동안 5,000여 편 적어온다. 결코 적은 편수는 아니다. 사실 알게 모르게, 나의 작품을 표절해가서 발표함으로써, 평론가들로부터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사례도 있긴 하다. 그밖에도 웃지 못할 초보 수필가들 행태도 나는 알게 지낸다. 감히 사족을 붙임다. 나 죽은 다음에, 윤근택 수필작가 작품 진위 시비가 일어나도 크게 나쁘지는 않으리.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