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40) -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

윤근택 2023. 3. 15. 04:26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140)

               -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그는 오스트리아 철강왕의 8남매 가운데 7번째 자제로 태어났다. 위로는 세 누이와 세 형이 있었다. 그의 세 형은 무슨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젊은 나이에 자살을 하고 만다. 그의 동생은 후일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명성을 날린다.

    그의 유년시절은 비교적 유복하였다. 요하네스 브람스, 구스타프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댁에 찾아와 어린 그와 피아노 이중주곡을 연주하곤 하였다. 그는 빼어난 피아니스트였음을 엿볼 수 있다.

    1914년 7월 28일, 그가 27세가 되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그의 고국 오스트리아는 독일과 한편이 되어, 동맹군에 그도 참전하게 된다. 그는 기병대 소위로 임관되어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정찰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의 실탄에 오른팔 팔꿈치를 맞아, 결국은 오른팔 절단수술을 받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러시아 옴스크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 틈만 나면, 나무상자 위에 왼손가락으로 상상 속의 피아노연주를 하곤 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중립국 덴마크 외교관. 포로생활 중에도 피아노 연주연습을 하는 걸 허락해준다. 그는 자기의 스승인 장님 피아니스트 ‘요셉 라보르(Josef Labor, 1842- 1924,오스트리아)’한테 편지를 써서, ‘왼손을 위한 피아노 편곡’을 부탁하게 된다.

   한편, 그의 부친은 오스트리아 철강왕답게 돈도 넉넉하니, 여러 작곡가들한테 ‘왼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의뢰하게 된다. 그러자 너도 나도 불쌍한 그를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적게 된다. 벤저민 브리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 파울 힌데미트, 모리스 라벨 등. 특히, 이들 가운데에서 ‘모리스 라벨(1875- 1937, 프랑스)’가 그를 위해 곡을 적게 된 데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잠시. 모리스 라벨이 그를 위해 곡을 쓴 특별한 사정 이야기다. 라벨도 제1차대전에 참전했다. 라벨은 동맹군이었던 그와 반대진영인 연합군. 라벨은 본디 공군 조종사를 하고 싶었으나,왜소한 등 신체적 조건으로 운전병으로 지냈다. 그는 전쟁의 참화를 너무도 생생히 체험했고, 후일 <쿠프랭의 무덤 모음곡> 등 여러 작품에 투영되어 있다. 라벨은 그의 슬픔을 너무도 잘 알았기에, 혼신의 노력으로 9개월여 공들여 작품을 적게 된다. 그 곡이 바로 이 부제로 삼은 <왼손을 위한 피아노협주곡 D장조>다. 라벨은 55세가 되던 1931년에 그 곡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들 가운데에서 ‘작곡가’는 라벨임을 밝혔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 한눈팔지 않고 여기까지 잘 따라왔을 테니, 이제는 이 글 주인공들 가운데 ‘연주자’를 밝혀도 좋으리. 그가 바로 ‘파울 비트겐슈타인(Paul Wittgenstein,1887- 1961,오스트리아)’다. 작곡가 라벨과 12세 연하인 연주자 파울과 언쟁은(?) 가관이었다.

    왼손 하나만으로 연주하기에는 너무 난곡(難曲)이라 파울이 불평을 터뜨린다.

   “ 연주자는 작곡가의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러면서 제멋대로(?) 부분부분 편곡하여 여주연습을 하게 된다.

    그러자 한 치 양보도 없는 ‘악보주의자(?)’ 라벨이 강하게 반발한다.

    “ 연주자는 작곡가의 노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라벨은 강요하다시피 한다.

   “ 두 손을 위해 만들어진 피아노 트보다 더 빈약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파울은 드럽지만(?) 작곡가의 뜻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약 19분 걸리는 총연주 시간 가운데에서 1/3에 해당하는 7분가량을, 오케스트라 도움 없이(?) 피아노 독주를 하여야 하도록 곡이 구성 되어 있다. 라벨은 그것도 ‘카덴차(cadenza)’로 붙여놓았다. 카덴차란, ‘악곡이 끝나기 직전에 혼자서 연주하거나 부르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을 일컫는다. 내가 그 연주곡을, ‘유자 왕(Yuja Wang,1987~ , 중국)’과 ‘빈필하모닉’ 협연을 동영상을 보았다. 팬티가 보일 정도로 한쪽이 터진 드레스를 입는 등 파격적인 의상을 한 그녀. 과연 그녀도 연주에 무척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1931년, 파울은 44세가 되던 해‘빈필하모닉’과 초연을 하게 된다. 대성공이었다. 파울, 그는 74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죽기 24년 전에 그 명곡을 적은 라벨은 64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그는 유언처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주 멋있는 삶을 살다 갔다고 그들에게 말해주시오.’

    처음에는 티격태격했던 작곡가와 연주자. 그들 양인(兩人)은 불후의 명곡을 우리한테 남겼다. 그들은 한 치 양보도 없는 ‘불굴의 의지’를 우리한테 유산으로 남겨주었다.

 

    작가의 말)

   공부하기는 하루 종일, 쓰기는 새벽에 잠시. 완전히 나의 것으로 녹여 썼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나의 뮤즈들한테 바치는 연서로 여기며 정성을 다했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