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논두렁에서

윤근택 2014. 6. 1. 07:14

논두렁에서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지금은 저승에 가 계신 나의 파다리(father),나의 마다리(mother;마대)시여! 오늘은 당신들께 보고드릴 게 있나이다. 당신의 넷째아들이자 열 남매가운데 아홉 번째인 나는 지금 물괭이를 들고 논두렁에 서 있습니다. 밤은 이슥해져 갑니다. 나의 협업자이며 품앗이꾼인 태ㅇㅇ는 트랙터로 써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트랙터의 전조등을 밝히고, 부지런히 무논을 오갑니다. 우리가 이 늦은 밤에 써레질을 하게 된 것은, 낮 동안 그의 논부터 써레질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논바닥은 살이 얇아 물을 쉬이 가둘 수 없었기에 일이 이렇게 늦어졌습니다.

나의 파다리, 나의 마다리!

내 바로 위의 형, 영택이가 하던 말이 문득 생각납니다. 당신들도 아시다시피,그는 말재주꾼입니다. 물론은 개구리 운동장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논(무논)은 그의 말마따나 개구리운동장이로군요. 녀석들이 마구 울어댑니다. 예기치 않았던 눈물이 마구 솟구칩니다. 다행히, 어둠 속이라 내 협업자한테는 들키지 않았습니다.  이 논은 당신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고향의 들녘에 자리한 것도 아닙니다. 물론 나의 소유도 아닙니다. 남의 논을 임차한 것이고, 논농사 2년차입니다. 나는 이렇듯 객지 남의 논두렁에 서 있습니다.

나의 파다리,나의 마다리!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나의 눈물은, 조금 전 쉴 참에, 어둠 속에서 번데기 안주로 막걸리를 나눠 마실 때 내 품앗이꾼 태ㅇㅇ가 하던 말에서 비롯됩니다. 물론 그가 웃자고 한 말이었습니다 .

윤형, 내 논둑은 그렇게 대충대충 하더니, 자기 꺼라고 어지간히도  알뜰히 다듬는 기라(거라)! 그것도 이 캄캄한 밤에 말이야!

이 무슨 이야기냐고요? 당신의 아들은, 당신들이 늘 그러했듯, 물괭이로 트랙터가 미처 털지 못한 논둑 쪽 흙을 논 안으로 긁어 넣곤 했지요. 그러면 벼 한 포기라도 더 심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사실 나야 아내와 두 딸만이 딸린 가장(家長)이라, 지난 날 당신들과는 달리, 식량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  그런데도 나는 당신들을 흉내 내어 그렇게 하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울컥해지데요.

나의 파다리!

당신께서는 논둑을 하되, 되도록이면 꼰드랍게 하였잖습니까?  논둑이 아슬아슬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자식 새끼 열 놈한테 하얀 이밥을 한 술이라도 더 떠먹일 수 있었을 테니까요. 당신은 삽의 낯짝으로 진종일 논둑을 바르곤 하였습니다. 마치 숙련된 미장공처럼요. 그래야만 물 한 방울이라도 덜 새어나갔으니까요. 그런데 비해, 이 아들은 마른 논둑을 대충 하고 말았습니다. 요즘은 물이 흔해빠진 데다가, 수고도 그렇게까지 들이고 싶지 않아서요. 여차하면 멀칭비닐을 논둑에다 입혀버릴 것이고요. 당신은 잘 알고 계셨습니다, 논둑을 좁게 지으면 나락() 포기 수는 늘릴 수 있으나, 장마철에 무너질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그러기에 논둑 위험개소에다 미리 말목을 박고 그 말목 사이에다 솔가지 등을 걸쳐 흙을 떠 얹곤 하였지요. 그리고 당신은 수시로 논둑을 베어, 벼의 생장을 돕곤 하였습니다. 그렇게 벤 풀들은 모두 소꼴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아들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추수 때까지 전멸제초제를 한,두 차례 살포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끝냅니다.

나의 마다리!

당신께서는 당신 남편의 수고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논둑을 바르는 날은 찰밥을 지었습니다. 논둑이 찰지라는 뜻도 있었지만, 내심 남정네들한테 근기 있는 밥을 지어드리고자 함이었을 겁니다. 당신은, 그렇게 애써 바른 논둑을 그냥 놀려놓을 분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더러 논두렁콩을 그곳에다 심도록 명했습니다. 모내기가 끝난 다음, 우리는 논두렁콩과 왕겨와 식칼을 들고 논둑으로 갔습니다. 식칼로 논둑을 찔러 벌리고, 그 틈새에 콩 두 알을 넣고, 왕겨를 덮는 것으로 한 공정(?)이 마무리되곤 하였지요. 논두렁콩밭 매기도 죄다 우리들의 몫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동안, 그 뙤약볕 아래서 논둑을 매야만 했습니다. 논 안의 물기를 빨아들인 논 잡초들은 왜 그리도 잘 자라던지요. 방동사니, 올미, 물달개비 등속들. 당신은 그렇게 가꾼 논두렁콩으로 메주를 쑤고, 콩나물을 내기도 하였습니다.

나의 파다리, 나의 마다리!

지금의 나를 보신다면, 분명 당신들은 이렇게 한탄할 것입니다.

이 게글받은(게을러터진) 자슥아, 논둑이 이게 뭐꼬? 이 멀쩡한 토지를 그냥 놀려 놓다니 .

다행인지 불행인지, 꾸지람하실 듯한 당신들은 저승에 미리 가 계십니다. 당신들은 알고 계셨습니다. 밥상 언저리에도 턱이 있어, 밥그릇 따위가 쏟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마찬가지로, 논둑도 밥상의 턱인양 그 안에 담고 있는 벼, 아니 쌀이 한 데로 쏟아지지 않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논둑은 마치 우리네 복()과도 같은 거. 아니, 복을 간직하는 복주머니 같은 거.

이 늦은 밤, 당신들의 넷째아들은 객지 남의 논 논둑을 서성대고 있습니다. 뜨거운 눈물은 두 볼을 타고 마구 흘러내립니다. 당신들을 새삼 그리워합니다. 다른 형제들과 달리, 4년제 대학에 내보내어졌던 나. 그러함에도 토지 한 고랑도 못 물려주었음을 늘 안타깝게 여겼던 당신들. 하지만, 더는 안타깝게 여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도 어느새 회갑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모두 이녁 소유는 아닐지라도 농토가 참으로 많습니다. 힘이 있는 한 토지는 자꾸 늘어날 것입니다. 힘에 부친 어르신네들이 버리는 토지들이 죄다 나의 것인 걸요. 당신들의 그 믿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을 이 아들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토지의 힘은 대단하다는 것을 이 아들은 너무도 잘 압니다. 벌써 수십 대를 거쳐 왔을 텐데, 그 논과 그 논둑은 그대로입니다. 그 한 뙈기 논에서 해마다 얻은 쌀로 도대체 몇 대가 먹고 살았느냐고요.

나의 파다리, 나의 마다리!

나는 날이 새기가 바쁘게 이 논둑으로 다시 나설 것입니다. 물을 철철 넘치도록 가두어, 벼농사를 할 것입니다. 그리고는 풍성한 수확물을 마다리(마대; 마대자루)마다 꼭꼭 담을 것입니다.

나의 파다리, 나의 마다리!

당신들은 나의 울타리가 아닌, 논둑이었습니다. 온전하게 자녀 열을 지탱하고 키운 논둑이었습니다. 당신들은 내 알곡을 꼭꼭 담는 마대 같은 분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이 밤 내내 당신들을, 건방스럽게도 파다리, 마다리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창작후기) 뜨거운 눈물이, 체험이 글이 된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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