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빵’을 하면서
* 생각나는 대로 마구 적어댑니다.
저는 언제고 말해왔습니다.
'생활이 수필이요, 수필이 생활이다.'
덧붙여,
'결코, 아름다운 글은 글이 아니다.' 에요.
'땜빵'을 하면서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아파트 전기주임, 경비원 등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나. 10여 년 줄기차게 이 일을 이어왔다. 그러다가 자의 반 타의 반 이번 4월 한 달은 ‘안식월’로 삼아 잠시 쉬고 지낸다. 말이 쉬는 것이지, 실은 ‘만돌이농장’일도 분주하기만 하다. 내 선친을 닮아, 일하는 게 취미인 나. 게다가, 다음 코스가 이미 확정되어, 5월 1일자 또 다른 아파트 경비원으로 가게 되어 있다. 사실 내가 너무 이것저것 재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부어온(?) 고용보험료가 있어, ‘조기취업수당’이란 개념의 고용보험금을 일시에, 혹은 6개월여 월정액으로 적잖이 받을 수도 있다. 한마디로, 나는 꽃놀이패.
일전, 내가 근무하였던 용역회사 간부로부터 통사정하는(?)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나한테 늘 깍듯하다.
“윤 반장님, 도와주세요. 담티역 근처 ‘ㅇㅇ아파트' 외곽청소원께서 수술하신대요. 쉬시는 동안 3일간만 ‘땜빵’ 해주세요. 일당은 적지만요.”
그와는 끈끈한 인연이다. 사실 나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그에게 예닐곱 분 늙은이들을 아파트 경비원 등으로 알선해주기도 하였다. 이는 ‘자기자랑’이지만, 나는 ‘늙은이들 일자리 창출’을 늘 하고 있는 셈.
사설이 길어졌다. 오늘 나는 그 아파트 외곽청소원으로 첫날 ‘땜빵’을 하고 왔다. 이 바닥에서는 외곽청소원을, ‘마당어른’ 혹은 ‘마당쇠’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도 나의 신실한 애독자들께 이참에 전한다. ‘마당쇠’라고 하면, 금세 떠오르는 배우가 있다. 배우 이대근. 그는 특유한 목소리로, “마님, 마당을 깨끗하게 쓸 깝슈? 이 빗자루 내팽개치고 곧바로 뽕밭으로 모실깝슈?”하였다. 오늘 내가 낮 동안 ‘땜빵’으로 마당쇠를 하면서, 이대근 배우의 그 말이 떠올라, 혼자 웃곤 하였다는 거 아닌가.
땜빵, 참말로 아파트 경비원 대리근무를 땜빵이라고 부르고 있다. 근무자가 사정이 생겼을 적에, 그 자리를 메꾸는 일을 그렇게 말한다. 프로야구의 대타(代打)에 해당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땜빵’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이참에 한 번 살펴보아야하지 않겠나.
‘다음 국어사전’은 이렇게 적고 있다.
< (1) 남의 일을 대신하여 시간을 보내는 것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구멍나거나 금이 간 것을 때우는 일을 속되게 이르는 말.
(3) 머리의 흠집을 속되게 이르는 말.>
명색이 작가인 나의 연상(緣想)이 여기에서 끝나겠는가. 그 말은 우리말 ‘땜’과 영어 ‘펑크 [puncture]’의 조합인 듯하다. ‘땜-’은 말 그대로 ‘때우다’에서 온 말일 테고, ‘-빵’은 '펑크 [puncture]’,즉 ‘고무 튜브 따위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일컫는 일본어식 조어(造語)인 듯하다. 해서,‘땜빵’은 그냥‘땜’혹은 ‘때우기’라고 하여도 무난한 말인 듯.
나의 연상은 계속 이어진다. 내 어린 날, 어머니를 따라 오일장에 가면, 흰 고무신을 때우던 장인(匠人)이 계셨다. 그분은 고무 타는 내음을 물씬 풍기며, 흰 고무신을 잘도 때워 멀쩡하게 만든 후 나립(羅立)한 장꾼들한테 차례차례 건네주곤 하였다. 안타깝게도, 그분은 우리가 신었던 ‘까만 타이야 고무신’은 땔 수 없다고 하였다. 때우기의 달인이 어디 그분뿐이었던가.
어느 날 마을에는 ‘때우기 전문가’가 나타났다. 그분은 온 마실을 외고 다녔다.
“깨어진 항아리를 때워드립니다.”
그분은 조각조각 항아리 파편을 모아, 철테를 메워나갔다. 그런 다음, 알 수 없는 액체를 그 금 사이에 발랐다. 그러자 멀쩡해져 물 한 방울, 간장 한 방울 새지 않았다.‘땜’ 혹은 ‘때우기’에 관한 추억은 이 정도에서 그치자.
현대에 이르러, 새로운 ‘땜의 전문가’가 등장하였다. 그들은 자동차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은 ‘자동차 사고 처리 회사’ 직원들. 내 애독자들께서도 종종 경험하시겠지만, 자동차 타이어 펑크가 났다고 자동차보험회사에 전화를 걸면, 그야말로‘총알같이’ 달려온다. 그들의 작업은 아주 능수능란하다. 바퀴에 박힌 나사못을, 귀신같이 찾아, 집게로 빼내고, 그 구멍에다 ‘무시(むし,虫)고무’,곧 ‘지렁이고무’를 ‘타이어펑크바늘’ 귀에 꽂아, 쑤셔 넣은 다음 곧바로 바람을 집어넣으면 끝.
이처럼 날로 진화하는 땜빵. 땜빵의 기술과 재료도 날로 발전한다. 여기서 여담 하나. 나는 기술력이 개뿔도 없으면서도 아파트 전기주임을 2년여 하였다. 어느 날 어느 젊은 입주자 부인이 낭패를 당했다며 아파트관리사무실로 찾아왔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사기 변기 물통의 모서리가 깨어졌어요. 제 실수였어요. 별난 신랑이 알면 큰일 나는데, 묘안이 없겠어요? ”
사실 이 비법을,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 다 알려드리면, 사기변기 시공업자들한테서나 판매업자들한테서 집중공격을(?) 받을 것도 같지만... .
나는 그 사기변기 물통을 깔끔하게 수리해주었다. 그 물통을 하루 이틀 바짝 말린 후 ‘실리콘건(silicone-gun)’으로 실리콘(silicone)을 쏘아, 변기 물통 조각을 감쪽같이 땜빵해 주었던 기억. 사실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서도 실리콘의 개념을 모를 턱없다. 더러는 콧대와 ‘찌찌’를 오뚝 세우면서 주입하기도 했을 그 물질. ‘유체·수지 또는 탄성 중합체의 형태로 만들어진 실리콘 원소가 포함된 화학 중합체. 폴리실록산(polysiloxane)이라고도 한다.’ 사실 인류 발명품 100 순위 안에 드는 게 실리콘이다. 덤으로 알려드리겠다. 실리콘은 땜빵에는 거저다. 나는 고무다라, 고무바가지, 물조루 등 가정용 플라스틱 제품이 깨어져서 못 쓰겠다고 버린 것들을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종종 주워온다. 나는 그렇게 주워온 물품들을 실리콘으로 때워, 농장 곳곳에 둔다. 해서, 내 아내, ‘차 마리아님’은 아쉬움 없이 온갖 물품을 맘껏 쓴다. 감히 말하노니, 이는 삶의 지혜다. 내가 매양 말하지만, 아무리 빼어난 수필작가라 할지라도, ‘실사구시’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말짱 황’이다. 해서, 나는 탁상 맡에서 적어대는 관념적인 글들을 엄청 경멸한다.
자, 이제 내 애독자들 여러분께 메시지 하나 던져드릴 차례. 나는, 칠십 나이를 목전에 둔 나는, 수필작가이기 이전에, 아르바이트로 ‘투 잡(two- job)’하는 젊은이들을 늘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들은 온갖 위험 무릅쓰고, 심야에 ‘대리운전’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들이야말로 ‘땜빵 인생들’. 해서, ‘땜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말. ‘Win win 전략’이기도 하지만, 상호간 나름의 고충이 있어 이루어지는 일. 하여, 이번 나의 아파트 외곽청소원 땜빵 이야기는, 정규직원인(?) 그분께서 온전한 수술로 이어져 속히 건강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으로 마감코자한다.
작가의 말)
나의 글을, 언제고 정말 관심 있게 꼼꼼 읽어주시는, 나의 뮤즈께 바쳐요. 아프지 마세요. 얼른 쾌차하시어, 많고 아름다운 수필작품을 지으시기를.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