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각시풀

윤근택 2023. 4. 20. 22:59

    * 생각나는 대로 마구 적어댑니다.

 

     각시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는 24시간 내내‘KBS Classic FM’을 틀어둔다. 승용차, 농막 처마 밑, 아파트 경비실. 그야말로 채널 고정. 일전, 화가이기도 한‘백승주’아나가 오후 5시~6시에 진행하는 ‘FM 풍류마을’에서는 색다른 민요를 내보내주었다. 절로 흥이 났다. 여기 그 노랫말을 그대로 옮겨보도록 한다.

 

 

    각시풀 타령(동살풀이,‘-煞--’)

 

   각시방에 불을 켜라/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 각시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신랑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 감대같은 머리채를 치렁치렁 따 내리고/ 널 뛰우고 놀던 일을 어찌 잊고 시집가나/ 각시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신랑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 연지곤지 바르고 우수각시 따라서/직녀걸음 나오신다 직녀걸음 나오신다/ 각시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신랑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 제일마당 달이 떴네/ 제일마당 달이 떳네 제일마당 달이떴네/각시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신랑코가 이쁘냐 으으으으응/ 각시방에 불을 켜라 신랑방에 불을 켜라/불을 켜라//

 

    호기심 많은 나는, 실마리를 잡고서 하나하나 인터넷을 통해, 솔솔 풀어본즉, 재미나는 걸 알게 되었다. 위에서도 이미 밝혔듯, ‘각시풀타령’의 별칭이 ‘동살풀이 [-煞--]’이다. ‘동살풀이’란, 전라남도 무당 음악에 쓰이는 4분의4 박자 장단이라고 한다. 위 노랫말에 나오는 ‘감대’는 ‘감태’, 즉 ‘갈조류의 바닷말’ 혹은 ‘가시파래’를 일컫는 사투리인 듯. 각시의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가 감태의 오라기 같음을 뜻하는 듯. 사실 우리네는 그러한 머리카락을 ‘삼단 같은 머리’라고 부른다. 내 어린 날 어머니와 손위누이들은, 내 아버지가 냇가에서 마을 어른들과 공동작업으로 ‘삼굿’하여 찐 삼[麻] 의 껍질을 일일이 올올 벗겼다. 그렇게 벗겨 다발지운 것이 삼단. 정확히 말하면 삼실다발. 그 삼실다발이 마치 아가씨들의 잘 빗은 긴 생머리를 연상케 하여, ‘삼단 같은 머리’라고 관용적으로, 비유적으로 써온 듯.

   나는 위 민요의 노랫말 가운데에서 ‘감대같은 머리채를 치렁치렁 따 내리고/ 널 뛰우고 놀던 일을 어찌 잊고 시집가나/’를 주목한다. 사실 처녀가 시집을 가게 되면, 그 치렁치렁하던 머리카락을 달리 손질하게 된다. ‘쪽머리’, 곧 낭자머리로 하고, 비녀를 꽂게 된다. 거기에 대응하여(?) 남자가 혼인을 하면, 상투를 하고 여성의 ‘비녀’에 해당하는‘동곳’을 꽂았다.

   이제 내 이야기 한 꼭지만 남았다. 위 민요의 제목에 쓰인 ‘각시풀’이 대체 어떤 풀인지만 밝혀내면 될 일. ‘다음백과 한국의 인형’에는 이런 내용을 적고 있다.

 

   <(상략) 풀각시인형이 있다. 해마다 음력 3월이 되면 5, 6세 되는 계집아이들은 각시풀을 뜯어서 대나무쪽에다 풀끝을 실로 매고 머리를 땋아 가느다란 나무로 쪽을 찌우고, 헝겊조각으로 대쪽에다 노랑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만들어 입혀서 새각시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요·이불·베개·병풍을 차려놓고 혼례식 등을 흉내 내는 놀이를 했다.(하략)>

 

    위 인용부분에‘각시풀을 뜯어서’란 어구(語句)가 들어있다. 그렇다면 ‘각시풀’이란 식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호기심 많은 나는 기어이 인터넷을 통해, ‘각시풀’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정말, 그 풀은 아가씨들의‘삼단 같은 생머리’ 모양이었다. ‘사초(莎草,산거웃)’이란 식물 이름. ‘가는잎그늘사초’를 비롯하여 230여 종 있단다. ‘산거웃’이라고도 부르는데, ‘-거웃’은 수염의 옛말로, 할아버지의 수염을 닮았다고 그리 부르게 된 듯하다고 한다. 정말로, 아가씨들의 잘 빗은 긴 생머리같이 생긴 식물이다. 그 각시풀의 일종인 ‘갯뿌리방동사니’는 <동의보감>에, ‘향부자(香附子)’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고, 고소득 한약재란다.

   하여튼, 각시풀은 위 단락에서 주욱 설명한 대로 야생풀 이름이고, 그걸로 우리네 할머니 세대는 ‘풀각시 인형’ 재료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어린 날 우리들한테도 독특한‘풀각시 인형 만들기 놀이’가 있었으니... .

    내가 이미 적어 인터넷 매체에 올리자, 많은 블로거들과 많은 카페지기들이 퍼 나른 ‘무릇,꽃무릇,상사화(相思花)’란 수필작품 일부분을 다시 따다 붙이고자 한다.

 

    <(상략) 사실 그러했다. 우리는 그 ‘무릇’을 ‘물냉이’ 혹은 ‘물래이’라고 불렀다. 봄날 그 무릇을, ‘소꼴’을 캐면서 여러 갈래 잎이 있는 째로 잘도, 조심스레 캐곤 하였다. 그것들을 ‘꼴 다래끼’에 공손히 모셔왔다. 어린 우리는 그 ‘무릇’을, 먼 훗날 맞고픈 각시로 생각했다는 거 아닌가. 이 무슨 이야기냐고? 몇 갈래의 잎을 지닌 무릇, 그 비늘뿌리가 쪽파의 뿌리처럼 생겨 먹은 무릇, 그 비늘뿌리가 ‘미인 여성형’으로 대변되는 ‘거꿀달걀꼴’보다 더 곱고 얼굴이 하얬던 무릇. 우리는 소죽 쑤는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장래의 각시’를 경쟁적으로,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꾸며나갔다. 이글거리는 장작불에 은근슬쩍 그 무릇을 구웠다. 정말 이뻤다. 유들유들했다. 낭창했다. 향긋한 ‘살 내음’과 함께. 참말로, 그렇게 구워낸 무릇의 얼굴은, ‘거꿀달걀꼴’ 얼굴보다 훨씬 빼어난 미인이었다. 우리는 서로 으스대며, 그렇게 은근슬쩍 그 몸을 달군 각시를 치장해 주었다. 그 갈래 잎으로 머리를 땋아 주고, 각시한테 가는[細] 싸리꼬챙이로 비녀도 꽂아주고... . 정말로, 나중, 아주 나중에 그렇게 이쁜 색시를 맞고 싶었다. 이 '만돌이농원’뒷산에 누워계신 그분도 그러한 추억 때문에 그렇듯 무리 지어 무릇을 당신 묘역에 들어서도록 했을까? 그분도 유년시절 무릇으로, 지난날 나처럼, 유년시절의 나처럼 아주 이상적(理想的)인 각시를 아직도 그리워하는 걸까?

    “오, 지금의 나의 색시여! 이젠 할미가 된 나의 색시여! 혹여 이 글 읽으시더라도, 이렇게 말하는 나를 용서해주시길... .”(하략)>

 

   각시풀을 맞으러, 더 늙기 전에 산 속으로 가보아야겠다. 참나무류의 큰 나무 밑 그늘에서만 잘 자란다는 각시풀. 그곳은 편편하기도 하고, 걸리적대는 게 없을 터이니, 거기서 올올 각시풀의 머리카락을 양 손 열 개의 손가락을 빗 삼아 빗어주고 싶다. 정녕, 나는, 영원히 소년인 나는, 그 각시풀을 ‘풀각시 인형’으로 꾸며주고 싶다. 참말로, 내 그리운 뮤즈의 머리카락을 올올 양손 손가락을 참빗삼아 빗어주고 싶다.

 

 

 

 

 

 

    작가의 말)

   이러한 글을 '에로티시즘(Eroticism)의 수필'이라고 부를 수 있겠죠. 밑줄친 부분의 암시. 특히, 마지막 단락의 암시.
   다들 잘 아시겠지만, 에로티시즘이란,  '인간의 성적 본능이나 사랑에 대한 욕구 등을 자극하는 암시적인 성질이나 경향.'

   나의 글을, 언제고 정말 관심 있게 꼼꼼 읽어주시는, 나의 뮤즈께 바쳐요. 나의 글 가운데에서 모자라는 점은 님께서 채우거나 고치는 등 님의 글로 편곡하여(?) 종이매체에 발표하시어도 개의치 않아요. 그리고 제발 아프지 마세요. 얼른 쾌차하시어, 많고 아름다운 수필작품을 지으시기를.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