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 가든(Secret Garden) (3) -유택(幽宅)에 떼 입혀 드리기 마감 -
* 하여간, 쉼 없이 글을 적어요.
‘생활이 글이요, 글이 곧 생활이다.’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 (3)
- 유택(幽宅)에 떼 입혀 드리기 마감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
20여 년 전 이 ‘만돌이농장’농토를 장만했다. 이곳 가운데에서, 저 아랫녘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둔덕에 농막까지 진즉 앉혔다. 손수 온갖 시행착오 끝에 지은 농막인데, 그 동안 20여 년 둘레를 다듬고 잡목과 잡초를 베어내는 등 이젠 거의 반짝반짝할 지경이다. 아내, 차마리아님은 그 동안 해마다 둘레에다 야생화를 가꾸어, ‘시크릿 가든’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희한한 자리에 농막을 앉힌 셈.
실은, 내가 이 농막의 자리를 자랑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 얼굴 뵈온 적 없는, 저승 분들 열 분들과 이웃하며 다정하게 지낸다는 점. 이 연작수필 1과 2에서도 이미 소개하였지만, 농막 바로 뒤편부터 야산이 펼쳐져, 경산시가 자랑하는 선의산(仙義山, 해발고도 756.4m) 정상으로 이어진다. 농막 바로 뒤켠에는 100년 넘게, 그분들 후손들이 돌보들 않은 고인들의 유택이 정확히 10기(基) 계신다. 사실 11위(位)였으나, 한 위는 이장(移葬) 흔적이 움푹 남아 있었다. 연세 지긋한 마을 어르신들은 당신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저승으로 간 분들이라고 일러준 바 있다. 그 유택 봉분이며 벌(뻘)에는 아름드리 참나무 그루터기 남아있었다. 이 골짝의 이름이 ‘숯골[炭谷]’임에 비추어 볼 적에, 예전에는 그 아름드리 참나무류를 베어, 숯을 구웠을 듯.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온갖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정말 마련 없었다.
그러했던 열 분의 유택들. 나는 그 동안 해가 거듭될수록 차근차근 챙겨드렸다. 톱과 낫으로 가시덩굴 등을 걷어내었고, 염소들을 지뢰제거반 내지 첨병(尖兵)으로 삼아보기도 하였다. 사실 내가 염소들을 그렇게 부린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내 꾀는 멀쩡했다. 출근 전에 그 녀석들의 고삐를 말뚝에 옮겨 매되, 활동반경에 장애물이 없도록 함으로써 그것들 안전도 도모하고, 개간 내지 개척도 동시에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20여 년 해온 작업. 다행스레 그분들 유택 10기의 봉분들은 거의 원형대로 드러났다. 지난해에는 그분들 유택 가운데에서 여섯 위의 봉분과 벌에다 떼를 다 입혀드렸다. 그랬던 것이 이 봄 둘러보니, 새로 쓴 묘 같았다. 후손들이 잘 보살핀 묘 같았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벌초(伐草)는 추석 전 묘에 풀 깎아드리는 일, 사초(莎草)는 윤월(閏月)에 묘와 벌에 떼를 입혀드리는 일. 나는 그분들 유택 벌초와 사초를 해마다 행해왔던 셈. 사실 자기네 조상묘에는 떼를 입히되, 호미나 괭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귀신이 쇳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떼를 입히되, 나무작대기로 골을 타서, 줄떼(길다랗게 기어나가는 잔디)를 심으라고 내 선친은 일러주었다. 나는 크게 개의치 않고, 남의 조상묘이니까, 호미로 군데군데 띄엄띄엄 떼를 입혀드렸던 게다. 그런 다음 비가 내릴 적에 복합비료를 던져 주었다. 그랬더니 한 해 사이에 온전한 잔디밭으로(?) 어우러졌다.
마침 내가 올 사월 한 달 동안을 ‘안식월’로 삼아, 아파트 경비원생활 잠시 쉬게 되었다. 나는 그야말로 여세를 몰아(?), 나머지 네 위의 봉분과 벌에다 떼를 다 입혀드렸다. 넉넉하게 스프링클러를 틀어 물도 주어가면서. 오래지 않아, 그분들 유택도 숫제 잔디밭이 될 테지. 죽은 분들과 산 이가 공존하고, 늘 대화하는 이곳 ‘만돌이농장’의 농막. 내가 이번 안식월에 한 일 가운데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다. 이로써, 내 아내 차 마리아님의 ‘시크릿 가든’은 완비가 된 듯. 농막 뒤에 계시는 열 분의 고인들과 맘 놓고 종종 대화를 나눌 수 있게 생겼다.
이제 내 신실한 애독자들께만 덤으로 알려드릴 사항만 남겨두었다. 나의 글 제대로 아니 읽는, 게으른 이웃들한테는 널리 소문내지 마시길. 이는 우리끼리만 쏙닥이는 이야기다. 벌초의 계절은 추석 전후가 아니다. 봄이나 여름이면 좋다. 조상님들께 이렇게 한 번만 용서를 구하면 된다.
“할아버지, 할머니, 올 한 해만 봐주십시오. 당신들 유택에 잡목과 잡초가 너무 많이 들어차 있어, 구체없이(←구차없이) 올해는 그놈들 박살부터 낼 게요.”
이 무슨 소리냐고? 잔디만 살아남고 여타 잡목과 잡초가 박살나는 선택적 제초제로 다스리라는 말이다. 산 속에 조상님들 묘가 자리했으면 ‘반ㅇ’이라는 제초제, 밭 가운데에 조상님들 묘가 자리했으면 ‘파란ㅇ’이면 만판이다. 일단, 그렇게 한 두 차례 제초제로 봉분과 벌에 자라나는 잡목과 잡초를 잡는다. 그런 다음, 뗏장을 많이 짊어지고 갈 일도 없다. 위에서 언뜻 이야기하였듯, ‘줄떼’를 가위로 토막토막 잘라, 실오라기처럼 된 걸 한 봉지만 가져가면 된다. 그걸 군데군데 심으면 만판이다. 그런 다음, 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다시 가서 복합비료를 뿌려주면 끝. 그러면 채 한 해 아니 가서, 님들 조상묘는 잔디밭으로 변할 것이다.
삶은, 생활은 오로지 경험이다. 체험이다. 사실 나는 위와 같은 슬기로, 남의 조상묘 3기를 해마다 관리해드림으로써 적정한 수고비도 챙기고 있다. 그분들은 매년 성묫길에 나를 찾아와, 감사하다는 뜻을 전해주곤 한다. 사실 나는 해마다 간단한 작업으로 끝낼 따름인데... .
곧 기말고사가 닥칠 테니, 윤 수필작가가 다시 모의고사 문제를 하나 내겠다.
‘벌초는 언제? 사초는 언제? 그 각각의 요령은?’
감히 사족(蛇足)을 붙인다. 화려한 글이 무슨 소용? 글은 삶이여야 하고 슬기여야 한다. 실사구시가 아닌, 관념적인 글이 대체 무슨 소용?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