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칼럼니스트)
나는 30여 년 만에 다시 이 방식을(?) 실행했다. 내 휴대전화기의 버튼을 차례차례 조심스레 눌렀다.‘*23#010-4542-65XX’. 그녀가 용케도 전화를 받았다.
“저, 윤근택입니다. 잘 계시죠? 건강은요?”
그랬더니, 저쪽 응답은 아주 간략했다.
“끊겠습니다.”
그 동안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지, 내 애독자들한테 겅중겅중 설명할 필요가 있을 듯. 나는 그녀의 얼굴을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다. 세간에, 그녀는 여류 수필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혜성(彗星)이라고 하였다. 이에 호기심. 어떠한 목적으로(?), 그녀가 지난 해 9월께에 문자 메시지가 하나 들어왔기에, 답신으로 알게 되었는데... . 본디 나는 젊은 날, ‘덴 가슴’ 있어, 그 이후 이성(異性)을 직접 만난 적 없다. 대신, 1년 여 그녀를 ‘뮤즈(muse)’로 삼아, 종이책 한 권 분량의 수필작품을 써왔다. 그 동안 둘은 사이가 대체로 좋았다. 휴대전화기를 통한 교신도 잦았다. 그런데... . 무슨 심술이었던지, 술김에, 나는 그녀가 수필작가로서 역량 내지 필력(筆力)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머저리 같은(?) 평론가들 따위가 과대평가하여... . 해서, 40~50년 독학으로 모국어를, 수필창작을 익혀온 내가,‘폭탄선언’을, 문자메시지로 날렸던 게다. 그 요지는 이렇다.
‘겉멋 들어서, 역량 아니 됨에도... .’
한 마디로, 그녀는 꼭지가 ‘훽’돌렸을 게 아닌감?
일종의 신앙심 같은 게 한꺼번에 무너진 그녀의 반응은 뻔하다. 애써 겸손되이, 연장자인 나를 낮은 톤으로 나무라는 마지막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동시에 e메일 및 휴대전화 수신거부를 걸어두겠다고 하였고, 그걸 결행하고 말았다.
해서, 술이 깬 후 내가 행한 일이‘*23#010-4542-65XX’. 이는 ‘발신자표시제한서비스’다. 즉, 송신자인 나의 번호가 상대의 전화기 표시창에 뜨지 않는 서비스다. 참고적으로, 일반전화기로 ‘발신자 표시 제한서비스’를 할 적에는, ‘169+010-4542-65XX’이면 된다. 사실 나는 사 반 세기 동안 당시 국영기업체였던 ‘KT(한국전기통신공사의 후신)’에 근무한 이. 그 서비스 모를 턱없고, 한두 차례 옛 애인한테 그 서비스를 아니 써먹은 적 없다. 그 애절한(?) 목소리 듣고파서, 배우자 눈치 아니 채게.
자, 명색이 수필작가인 내가, 에피소드 하나로 이야기를 끝낼 성싶은가. 조심스레,‘#’와 ‘*’라는 특수문자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야겠다. 컴퓨터 키보드 상단에 자리한 이들 두 ‘특수문자’. ‘특수문자’라는 이름에 걸맞은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것을. 우선, ‘#’은 이른바 ‘해시태그’를 이끄는 문자다. ‘*’은 아이디 및 비밀번호에, 아라비아 숫자와 영문자와 더불어, 자주 쓰인다. 아파트 현관문 출입 비밀번호에도 이들 두 특수문자가 두루 쓰인다.
‘#’, 영어로는 ‘sharp’이라고 새기고, 한자로는 ‘우물 정’이라고 새긴다. ‘*’은 영어로는 ‘asterisk’즉, ‘별’로 말한다. ‘#’은 음악용어로도 제대로 자리 잡고 있다. ‘반음 올림’을 뜻한다. 대신, ‘b’는 ‘flat’을 말하며 악보상 ‘반음 내림’을 나타낸다. 이따가 따로 모아 이야기하겠지만, ‘반음 올림’과 ‘반음 내림’은 나이 칠십을 바라보는 나한테 시사하는 바 크다.
‘#’, 나는 보았다. ‘우물 정’이라고 새긴다. 본디 이 문자는 상형문자. 중국 사람들이 우물을 내려다본즉, 즉 조감도로 그린 즉, ‘#’로 명치만큼 우물 위가 쌓아져 있더란다. 그래서 우물을 그 형태에 따라, ‘#’로 표현했단다. 한자 형성의 6가지 원리에 의해, ‘상형문자’. ‘#’, 나는 보았다. 어린 날 나는 경험했다. 깊이 10미터도 넘은 ‘밤나무골 우물’. 그 아래 갱목(坑木)은 생나무 토막으로, ‘#’로 되어 있었다. 물론, 구간구간 돌멩이로 옹벽을 쌓아올린 곳도 있었다. 다 지나간 옛 추억. 그 우물은 폐쇄되었다. 여름날 수박을, 두레박에 담아 그 우물 바닥에 담가두었다 꺼내 먹었던 추억.
‘#’, 나는 보았다. 당시 10대 후반이었던 나의 중씨(仲氏;둘째형님).그는 장작을 팼다. 속히 말리려 장작을 ‘#’로 쌓아올렸다. 그리고는 다음 오일장 그렇게 말린 장작을, 지게에다 예쁘게 지고 내 등굣길 십 리 ‘금곡리’에 가곤 하였다. 그는 ‘장작팔이 소년’이었다.
나는 모르겠다. 나이 칠십 바라보는 나는 모르겠다. 내가 새롭게 뽑았던 ‘뮤즈’가 다시는 아니 돌아온다 하여도, 내가 그녀한테 휴대전화기로 입력한 ‘*23#0104542XX’는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 왜? 30년 이상 창작활동 이어온 작가로서, 아닌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아니니!
그래도 퇴로 하나만은 남겨두리.
"이제 나는 반음내림(b)할 테니, 제발 그대는 반음올림(#)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