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점방 현수막’
‘그 점방 현수막’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나는 격일제로, 대구혁신도시에 자리한 어느 아파트 경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새벽 네 시 반 무렵 내 ‘만돌이농장’ 농막에서 승용차를 몰고 30여분 달려, 다섯 시 경에 경산에 자리하고, 내 아내가 사는 아파트로 내려간다.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된장찌개와 다슬기국을 반찬으로 삼아 맛있게 먹고 다시 출발하게 된다. 다슬기는, 내 ‘만돌이농장’을 휘감고 사시사철 흐르는 개여울에서, 아내가 남편 몰래 수시로 잡아 가두어 뒀던 녀석들.
아파트 바로 앞 ‘경산네거리’에서 곧바로 우회전 받으면, 대구직할시 동구 ‘반야월(半夜月)’을 향한 ‘경안로(慶安路)’. 교통량도 적은 새벽, 상쾌하기만 하다. 이튿날 새벽, 그 시간대에는 맞교대자한테 바통터치를 하고, 갔던 길을 되돌아오게 되는데, 그 ‘경안로’의 어느 점방(?) 현수막은 나를 감동시키곤 하다. 그 현수막에 관해서는 내 애독자님들 약 올리기 위해(?) 좀 더 뜸을 들이기로 하고... .
엉뚱하게끔, 위에서 소개한 ‘半夜月’을 비롯한 대구 동구에 자리한 지역명 유래부터 소개해야겠다. 사실 나는 몇 해 전에도 이 대구직할시 동구 ‘팔공산(八公山)’ 초입 어느 아파트에서 전기주임으로 1년여 근무한 적도 있다. 해서, 한 시간 여 승용차로 출퇴근하면서 대구지하철 1호선역명과 겹친 동네이름도 꽤 알고 지낸다.
때는 927년. 나이 41세에 고려를 세운 왕건(王建, 877~943년, 향년 66세)은, 자기와 마찬가지로 한반도를, 삼국을 통일하겠다고 나선, 배포 있었던 후백제 견훤(甄萱,867~936년, 향년 69세)과 그야말로 건곤일척‘공산(公山) 전투’를 벌이게 된다. 사실 그게 다 부질없는, 일부 사내들의 허욕이지만, 민중을 전장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 전쟁광에 불과하지만... . 당시 견훤은 왕건보다 정확히 10세 위인 51세. 견훤의 군대는 파죽지세였다. 견훤 군대에 쫓기던 왕건 군대는 어느 동네에 이르러, 적군을 저만치 따돌렸다고 생각하여 ‘휴우!’ 안심(安心)을 하게 된다. 그래서 후일 그 동네 이름은 ‘安心’이 된다. 위에서 소개한 ‘慶安路’는 ‘경산’과 그러했던‘안심’이 합쳐진 말. 어쨌거나, 왕건 일당이(?) 그 ‘안심’마을에서 좀 더 말[馬]을 달려 가다보니, 하늘에는 반달. 그래서 ‘半夜月’. 반야월을 지나 다시 군대가 이동하다가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돌아 ‘얼굴이 펴졌다’ 하여 ‘해안(解顔)’. 왕건은 팔공전투에서 신숭겸, 김락, 전의갑 등 8명의 장군을 잃고, 공산 삼거리에서 군대를 흩였다 하여 ‘파군재(罷軍-)’. 본디 전투가 치열했던 그 산 이름이 ‘公山’이었으나, 후일 왕건이 삼국을 통일하고, 전사한 휘하의 8인 맹장(猛將)들을 기려, ‘八公山’이라고 이름 지으라 했다는 설(說)이 있다. 사실 이와 관련해서 나는 이미 여러 편의 수필작품 적었으니, 관심 있는 애독자들께서는 인터넷 검색창에다 ‘윤근택의 도이장가(悼二將歌)’등으로 쳐보시길.
다시 내 이야기 본류(本流)로. 참말로, 나는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 도로를, 이 늘그막에, 돈벌이하러 새벽마다 승용차를 몰고 달린다. 적잖은 급여. 이 대단한 감회. 그런데 왕건의 전쟁 스토리 못지않게, 나를 감동시키는 그 점방의 현수막. 현수막 걸대에는 언제고 넉 장 정도의 현수막이 횡으로 걸려있다. 그 걸대 아래 켠 석 장은 장삿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숫제 짜증나는 타회사의 자극적인 광고문구. 대신, 맨 위 켠 현수막은 매월 주기적으로 바뀐다. 이번 달 현수막은 이거다.
‘ 이 달의 고사성어
出谷遷喬
봄에 새가 깊은 산골짜기에서 나와 높은 나무 위에 앉는다는 말로, 출세를 뜻함.’
그 점방의(?) 이름은 ‘희망주유소’. 그 점방 이름도 ‘희망’. 나는 더는 양심상 견딜 수가 없었다. 오늘 새벽 퇴근길에 그 주유소에 들렀다. 연세 드신 주유원이었다. 여쭤봤더니, 50대의 사장이라고 일러주었다. 휴대전화번호만은 개인정보 운위(云謂)하면서 끝끝내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이 글을 쓰는 동안 ‘114’로, 그 주유소 이름을 대면서 일반전화번호를 기어이 알아내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전화를 걸었다. 젊은 목소리였다. 그가 그 주유소 사장이었다.
“사장님,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수필작가 윤근택입니다. 이 글 완성되면, 휴대전화 메시지로라도 글을 헌정하고픈데요, 휴대전화번호 알려주세요. ”
그랬더니,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면서 하는 대꾸가 더욱 멋있었다.
“선생님, 고객님, 저는 거의 종일 주유소에 근무합니다. 시간 되시면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다만, 저는 고객님들께서 주유하는 동안만이라도 편하시라고 그렇게 ‘사자성어’ 현수막을 걸어왔을 뿐인데요. 제 마음 헤아려보시어 오히려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
맞다. 당신 말이 맞다. 그게 우리네 ‘희망’이다. 당신 주유소 이름 그대로, 우리는 ‘가솔린’이나 ‘디젤’이 아닌, ‘희망’을 주유해야한다고! 우리네는 너나없이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길로 ‘쌩쌩’ 앞으로 달려 나아가야한다고.
‘희망’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희망’이여!
감히 사족을 붙인다. 폭군 궁예(弓裔, 856~918년, 향년 62세)를 끝까지 섬기다가, 결국은 한민족을 통일하여 고려왕국을 세운 왕건. 사실 당신이 쓴 국호 ‘Corea’가 여태 여러 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오. 왕건, 새벽마다 말[馬] 대신 승용차로 출퇴근하는 나. 왕건, 당신은 사십대 초반에 그런 위업을 이룩했던 걸 생각하노니, 감개무량하오. 왕건,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한민족의 유일무이한 ‘통합의 영웅’이라오. 내가 새벽마다 지나다니는 ‘당신의 길’, 거기서 마주친 ‘희망주유소’는 나한테 ‘희망’이라오.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