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베론(Bebe 論) (3)
듣고 있나요, 제 목소리를요?
듣고 있나요, 제 진정된 목소리를요?
듣고 있나요, 제 목숨떼건 사랑의 목소리를요?
저는요, 죽는 그날까지 '진정한 예술'을 위해서만 헌신할밖에요.
베베론(Bebe 論) (3)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우리네 속된 말에는 ‘기왕에 벌인 춤판, 끝까지 가보자.’란 말이 있다. 한편, 내 젊은 날 ‘먹을 내기 고스톱화투’도 엄청 즐겼는데, 그 고스톱판에서 우리가 늘 쓰던 말도 있다.
“ ‘쌍피’는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도 얼른 내려서 따먹어야 하는 기라(하는 거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펼치고자 이렇게 뜸을 들이냐고? 40년가량 수필작가로 행세해온 나. 내 더듬이에 그 무엇인가 닿기만 하면, 결코 나는 그 사물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물어뜯는다는, 끝끝내 온전한 나의 것으로 소화한다는... . 나는‘베베론’을 이미 두 편 연재물로 적었다. 사실 나는 여느 대한민국 그 많은 수필작가들과 달리, 동일 제재의 연작수필도 참으로 여럿(종이책으로 묶자면 10권 이상) 적어왔는데, 이 ‘베베론’도 언제 끝낼지 모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부터 내 이야기는 ‘베베’에 집중해서‘Go go 씽씽’이다.
졸지에(?), 나로부터 반려묘(伴侶猫) 지위를 거뜬히 꿰찬 베베. 내 ‘만돌이농원’ 6평 남짓한 농막이 예전에는 ‘개판(만돌이판)이었으나, 지금은 숫제 ‘고양이판(베베판)’이다. 그 무엇보다도 내가 불편한 점은, 녀석이 온데에다 자기 긴털(長毛種임)을 오줄없이(?) 엉클어놓는다는 점. 이젠 포기상태를 훨씬 뛰어넘어, 아주 자연스런 일로,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편. 하기야 녀석이 나와 어느새 동거자가 된 터에, 내가 겨우내 오리털 파카도 입고 지내는 터에... . 녀석의 털도 내 옷에 달라붙어 보온을 돕고 있지 아니한가.
여기서 요즘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말인 ‘반전(反轉)’. 내가 24시간 격일제로 경비원으로 근무하는 경산의 어느 아파트에는 참으로 괴이한(?) 입주민 여인 하나가 살고 있다. 그녀는 해질녘에, 내가 맡은 다섯 개 동(棟)의 현관등을 켤 때 나한테 먼저 말을 건네 왔다.
“경비 아저씨,102동 세 라인은 제가 책임질 테니, 더는 수고 아니 하셔도 되어요.”
알고본즉, 그녀는 그 시간대에 현관등을 켜고, 손수레에다 고양이의 사료와 물과 간식을 잔뜩 싣고서, 900여 세대 11개 동(棟) 구석구석 아홉 군데 고양이들 은신처에 가서, 일일이 자기가 지어 부르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저녁밥을 챙겨주는 여인이었다. 그게 그녀 유일한 낙이고, 일상임을 며칠 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실 자기 댁에도 다섯 마리 고양이를 키운다는데... . 그 정성이면, ‘버림받은 아가’ 하나를 키우는 게 더 보람있을 텐데... .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닌 듯하다.
하기야, ‘머리에 털 난 짐승(인간)은 돌보아주어봐야 말짱 황’이란 말이 분명히 있다.
딴에는, 그녀로부터 ‘베베’의 태도에 관해 이참에 한 수 배워야겠다고 벼르며, 말을 붙였다. 사실 10여 년 동안, 17차례 아파트 경비원복을 갈아입은 나한테는 크게 이롭지 않은 ‘말 붙임’이었지만.... .
그랬더니, 그녀가 우리 ‘베베’의 습성에 관해, ‘냥이 엄마’답게 친절히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1. 베베가 밤마다 이 할애비한테 안아달라고 조르는 이유
녀석은 이 연재물 제1과 제2에서도 언뜻 밝혔듯, 그 누구로부터 더는 버림받지 않으려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생존전략으로 그렇듯 애교를 떤다고 진단해 주었다. 특히, 홀로 사는 ‘반려려묘’의 경우에는 그러한 경향이 강하다고 알려주었다. 인간인 동거자를, 베베는 자기의 부모로 여긴다고 일러주었다. 그렇다면 베베한테는 내가그저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엄마 고양이인 셈.
2. 틈만 나면 자기 털을 혀로 핥아대는 습성
그녀, 석여사(石女士)는 그 점에 관해서도 알려주었다. 석여사는 그게 ‘그루밍(grooming)’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루밍이란, ‘동물이 혀나 이빨, 발톱 등을 써서 털에 묻은 이물질을 제거하고 손질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포식류인 고양이과 동물은 그 그루밍을 생활화한다고도 일러주었다. 그 ‘몸단장(?)’이 오로지 자기 ‘몸 청결 위함’ 만이 아니라는 점에 나는 혀가 다 내둘렸다. 그 행위가 자기 체취(體臭)를 지워서, 상위자 포식자한테 자신의 신변보호, 하위 피포식자한테는 ‘신분 감춤’의 행위라니! 베베는 자기네 종족인 여타 고양이들처럼 혀에 ‘돌기(突起)’가 돋아나 있어, 그게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 돌기를 빗자루 내지 솔로 삼고 있다고 하였다. 해서, 반려견들과 달리, 베베를 포함한 반려묘들은 따로 목욕시켜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잠시. 그 그루밍에 짚이는 게 하나 더 있다. 어린 날, 비오는 날, 초막집 처마 밑에 후줄그레 비를 맞고 떨던 닭들을 아니 떠올릴 수가? 닭들은 자기네 꽁무니에 부리를 갖다 대어, 그 도톰한 항문 언저리의 기름을 부리에 묻혀 깃털에 기름질을 하더라는 거. 마치, 우리네 어른들이 지우산(紙雨傘)에다 들기름을 바르듯. 사실 근본적으로 새들 깃털은 우리네 손톱·발톱의 성분과 같은 ‘케라틴(Keratin)’으로 되어 있는데다가, ‘깃봉’과 ‘작은 깃봉’의 안이 대롱처럼 생겨먹고 가볍기에, 쉬이 날 수 있다고 한다. 거기에다 깃털에 기름을 그처럼 자주 먹이니... .
3.최초 베베를 입양한 내 큰딸, ‘요안나 프란체스카’가, 녀석의 특별한 집을 준비했던 이유
고양이들의 습성을 정확히 적용한 구조임을, 입주민이자 수십‘냥이 엄마’인 석여사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 베베를 비롯한 모든 고양이들 습성과 맞물려있다는 것을. 녀석들 무리는 자기 배설물 관리에 그 어느 동물보다도 철저한 모양. 본디, 사막 원산이었던 고양이들. 그들은 모래에다 자기네 배설물을 감추곤 했단다. 상위 포식자들한테 자신을 보호하고, 하위 피포식자들한테 신분을 감추려고 유전적으로 그처럼 특화되어 있단다. 그래서인지, 어레미가 꽃인 요강단지 위에 인조모래로 꾸며진 게 베베의 숙소. 나는 뒤늦게나마 그 원리를 알아, 직장 관계상 격일제로 녀석의 오줌·똥을 때맞추어 가려줄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적는 동안에도 농막 아랫목에 얌전히 앉아, 내내 ‘그루밍’하는 베베. 어느새 내 생각은 비약하고 만다.
마침 다다음달(2024년) 총선. 반갑지 않은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어찌 이리도 많이 오는지.
‘예비후보 ooo 가 어쩌고 저쩌고... .’
다들 내 동거자 ‘베베’ 보다도 못한 인간들. 베베야말로 공자님의 가르침인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자기 혀로 저렇듯 틈만 나면 실천하고 있건만, 자기 몸을 청결히 하고자 저렇듯 애쓰거늘... . 어디 베베만이 ‘수신제가’를 실천하느냐고? 일찍이 학창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배웠던,‘나다니엘 호손(1804~1864, 미국 작가)’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 겹쳐질 줄이야! 사실 그는 <주홍글씨>라는 소설로도 유명한 작가.
대체, 뜬금없이 베베의 ‘그루밍’으로 시작하여 정치지망생들 이야기까지 끌어올리다니? 그게 바로 40년가량 수필작가 행세를 해온 나의 역량(?)이다.
“힘주어 말하건대, 당신들 정치 야바위들은 모조리 나의 동거자인 베베보다도 못한 인간들. 내 동거자 베베처럼 그루밍이나 제대로들 하시오. 그게 바로 ‘수신(修身)’이라오, 남들한테 불결한 냄새 풍기 않는... .”
작가의 말)
이 글이 제대로 구운 빵 같다. 작가의 혜안 내지 예지력이 제대로. 속된 말로, ‘돈 아니 되는 국회의원 지망생’들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오는 통에, 열 받아서(?) 이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제발 그 잘나빠진 정치지망생들, 내 반려묘 베베한테서 배워, 다들 정신 차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작중인물 석여사님의 그 말씀은, 이 글 완성도를 더하고자, 그 입을 빌렸을 뿐이다. 즉, 남의 입을 빌려서 글을 적으면, 효율 내지 효과과 증진된다는 것을. 사실 대한민국의 그 많은 수필작가들은 이 기교도 여태 모르고, 자기 말로만 주절주절, 글 아닌 글을, 작품이라고 마구 적어댄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