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택 2024. 5. 2. 20:18

농사철이라서요.

하더라도, 잠시도 '수필' 잊어본 적 없어요.

무디어질세라, 자세 가다듬고 또 적어요.

주소록( 연명) 너무 홀가분하죠?

'GO MAN GO, IS MAN IS(갈 사람 가고, 있을 사람은 있고).'

 

                                                    틀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정치철이(?) 되다보니, 그 눔의(?) 말이 무성하다.

     이런 식.

     “(그는 애당초) 선거 전략상‘프레임(frame)’을 잘못 짰어. ‘민생(民生)’에 초점을 맞추었어야했거늘... . ”

      본디, 무식하면 용감해진다, 해서, 수필작가인 나는 정치인들이 자주 쓰는 ‘프레임’의 본디 뜻부터 시작해서, 마구마구 유의어(類義語)를 찾아들게 된다. 그것도 몇 몇 날에 걸쳐서.

     프레임, 사전적 의미는 ‘자동차나 자전거, 건조물 등의 뼈대’다. 그처럼 고급스런(?) 외국어 차용(借用) 이전에 순 우리말, ‘틀’이 있었거늘... .

    ‘맞아. 홑글자 ‘ 틀’은 그 값어치가 참으로 대단해. 두루 쓰이고 있어! 말수가 많으면 무슨 소용? 글이 길어지면, 독자들이 지치기만 할 터인데... .’

     국어사전을 펼쳤다. ‘틀’의 새김이 어지간하였다. 지금부터 순서 없이 ‘틀’에 관한 개념. 이렇게 주욱 적게 되면, 내 신실한 애독자님들께서 순조로이 따라오실 듯하여서.

   내 선친(先親)께서는 종종 ‘와꾸’라고 말하곤 하였다. 살펴본즉, 일본어에서 비롯된 듯하기는 하나, 국어사전에서는 ‘틀’의 속된 말로 규정.

  내 중씨(仲氏)는‘와꾸’를 짜서 이긴 흙을 꼭꼭 밟아 흙벽돌을 잘도 만들었다.

  내 어머니한테 ‘틀’은 색다른 의미였다. 당신은, 쪽머리를 한 당신은, 겨우내 ‘베틀 의자’에 앉아 베를 짰다.

  53세로 요절한 내 손위누이 봉자씨. 어버이 슬하 아들 다섯, 딸 다섯 가운데에서 셋째딸이었던 당신. 본디 당신의 이름은 ‘봉자(鳳子)’였지만, 생계수단으로, 결혼 이후에도 운명처럼 죽는 그날까지‘재봉틀’을 잘도 밟았던,‘봉자(縫子)’.

   겨우내 포장마차 붕어빵 할배. 그분은 팥 앙금을 작은 쇠갈퀴로 빵틀을 찍어 돌리는 한편, 양은주전자를 통해 주둥이로 밀가루 반죽액을 잘도 따르곤 하였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붕어빵. 참말로 그것은 틀이었다. 빵틀이었다. 무쇠로 주조(鑄造)된 빵틀이었다. 음각(陰刻)으로 된 붕어틀.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 ‘극한직업’에서 무쇠솥 따위를 만들어내는 장인(匠人)들 구슬땀을 수차례 본 적 있다. 그분들의 틀은 선사시대, 청동기를 걸쳐 현대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니!

  그런가 하면, ‘형틀목수’가 있다. 이 ‘만돌이농장’ 이웃의 황토방 박 목수. 사실 그는 내손아랫사람인데,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였고, 그의 부친 솜씨를 본받아서인지, 손재주가 좋아, 말년에 이르러 전통가옥 짓기로 생업을 이어간다. 그는 내 ‘만돌이농장’농막 한 칸을, 편백나무 판자로 너무도 이쁘게 꾸며주었다. 그의 솜씨 가운데에서도 ‘문틀 짜맞추기’는 일품이었다. 그 방법이 10여 종 있다고 일러준 바 있다. 전문용어도 각각 있었다. 암·수가 ‘아귀맞춤’ 되는 과정 등 설명해 준 적 있다.

   틀, 어디 위에서 소개한 것들뿐이랴! 죄를 지은 이는 ‘형틀(刑틀)’에 사지(四肢)가 묶이어 곤장 등 형벌에 처해졌다. 사실 예수님의 ‘십자가 묶이심’도 우리네 형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틀, 외자(외字)로 되어 있으나, 그 활용형은 어지간하다. ‘틀니’를 비롯하여 접두어로 ‘틀-’을 갖다 붙이기만 하면 온갖 어휘가 된다. 또, ‘가마니 한 틀’따위로 쓰여, 수사(數詞)가 되기도 한다.

   틀, 눈치 빠르고 여태 인내심 지니고 나의 수필폭탄에(?) 살아남은(?) 애독자들께서는, 내가 무슨 말로 이 너절한 글의 ‘벼리[綱]’를 낚아챌지 이미 아실 것이다. 나는 엉터리로(?) 이 대한민국 수필계를 이끌었던 선배 수필가들한테 욕을 한바탕 퍼붓고자한다.

  ‘뭐? 수필은 형식(틀)이 없는 자유로운 글 형태의 문학 장르라고요?’

   천만의 말씀. 나는 습작기를 거쳐 40~50년 수필작가 행세를 해오는 동안, 5,000여 편 글들을 적어온다. 편편 보이지 않는, 여러 장르(틀)의 수필작품을 적어왔는데... .

    ‘대체, 문학 장르가 수필·소설·시·희곡 등으로 장르를 대별(大別)하거늘, 수필 장르를 다시 세분화하여 틀(장르)이 있다고? ’

    적어도, 대한민국 현존 수필작가 윤근택은 그렇게 해왔다. 놀랍지 아니한가. 나머지 ‘틀’에 관한 상상은 애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작가의 말)

  내 젊은 날 첫 수필집, <독도로 가는 길(1989년 발간)> 400여 쪽을 필사(筆寫)해서 공부하셨다는 그분. 정확히 35년 시간 지난 지금에 이르러, 뒤늦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이 글을 그 여류 수필가 겸 여류 시인께 바친다. 내가 너무 무심하였다. 사실 그분은 나더러 대한민국 최고봉 수필가이길 바라셨는데, 사후(死後)에라도 평가받길 바라셨는데... .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