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너를 보내야 해

윤근택 2024. 7. 31. 16:58

 

' Lost words '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http://www.youtube.com/watch?v=gTyI3EfMBPk

 

 

    너를 보내야 해

 

 

윤근택(수필가/수필평론가/문장치료사/음악 칼럼니스트)

 

 

 

   오늘 새벽 여섯 시 반. 나는 경산시 백천동 소재, 어느 아파트 경비실에서 맞교대자 오 형과 바통터치를 하고, 아파트 정문 앞에 자리한 시내버스 승강장 벤치에 앉아 있었단다. 내가 기다리는 ‘남천1’은 여섯시 반에 경산시장을 경유하여 이곳으로 올 텐데, 5분 내지 10분만 기다리면 될 일.

   슬프고, 쓸쓸하고, 우울하고... . 너를 떠나보내야한다니! 구급차에 싣고 시내 중환자실에(?) 너를 데려간 것이 엊그제. 너를 되살리자면, 새로 한 필(疋)을 사서 애마(愛馬)로 길들여 타는 것보다 수술비가 더 든다고 하였단다.

  아내와 큰딸아이와 숙의(熟議)를 거친 후 너를 안락사해주기로 결정했단다. 네가 배신 때리는 주인을 원망하더라도 구차없다. 본디 우리네 인간들은 이처럼 매몰차지 않던?

   지금은 너랑 14년여 동고동락했던 ‘만돌이농장’. 이 둔덕에 자리한 농막 아래 저기쯤 네가 주인 분부대로 꼼짝 않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꼿꼿 서서 머물었던 ‘마답’에 너는 없다. 휑하다. 왜 이리도 허전한지? 일찍이 우리네 조상들은,“든 이는 몰라도 난 이는 안다.”고 하였단다. 그 말씀이 새삼스럽다.

   네 주인은 지금 펑펑 울며 여러 가지를 후회한단다. 남들과 달리, 네 주인은 1년에 한 차례나 제대로 너를 멱감겨 주었던가? 너는 주인 잘못 만나, 온몸 구석구석에 상처를 입었지 않은가? 이 좁은 농로(農路)를 조심스레 너를 몰지 않고서, 마구 채찍질을 가하곤 하지 않았던가? 온갖 농산물을 네 등짝에 무자비하게 실어, 네 발굽과 무릎연골도 최근에 수술해주어야 했지 않은가. 그 무엇보다도 내가 네게 크게 잘못한 점이다. 네 고삐를 제대로 잡고서, 윽박지르지 말고 살살 달래며 타고 왔어야했거늘... .

    네 주인이 죽으려고 환장하지 않고서야 어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으로 술을 마시고 네 잔등에 올라타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고?

   대조영의 후손들 태씨들 집성촌인 송백2리 마을 입구. 송백1리에 사는 내가 어찌 또 그곳으로 접어들었을까? 아마도 그곳에 사는 객지친구 ‘태OO’한테 가서 술을 더 마실 요량이었던 모양. 화들짝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네 고삐를 잘못 낚아챈 까닭에, 도로변 복숭아밭으로 너는 들어가고 말았음을, 사고 난 다음날에야 알게 되었단다. 만신창이가 된 너는 어찌 용케도 다시 콘크리트 도로 위에 올라와 멈춰 서 있었다. 사실 너의 네 개 다리도 와지끈 부러져 있었거늘... . 30년 무사고 경력자인 ‘태OO’와 함께 사고 경위를, 사고지점을 찾고자 그날 밤 라이터를 켜고 다시 왔던 길 살피며 되돌아가보았건만, 찾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이튿날 재차삼차 사고지점과 사고원인을 찾아보았단다.

   대체, 그런 일이? 너는 정말 가상하다. 복숭아 나뭇가지에 네 오른쪽 볼, 오른쪽 눈, 갈기 등이 갉히어 마련없게 되었음에도, 너는 그 두 그루 복숭아나무를 가드레일 삼아 쓰러지지도 않고 다시금 콘크리트 도로 위에 성큼 올라와 있었다. 너는 네 주인을, 낙마(落馬)치 않고 온전한 몸으로 안장에 앉아 있게 하였다.

   불쌍한 나의 애마. 네 이름은 ‘투싼 50조 9115.’. 나는 너를 어쩔 수없이 이젠 보내야한다. 14년여 동고동락했던 너. 내가 이처럼 회한(悔恨)의 고별사를 적고 있는데, 조금 전 내 휴대전화기에 너와 관련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단다.

  ‘손해사정내역 안내 ... 사고차량(50조 9115)의 손해사정내역을 안내드립니다. ... ’

   그러면서 보상담당자는 너를 폐차업체에 경매로 팔아치워, 내일 실어간다고 덧붙이는구나. 너는 주인 잘못 만나 졸지에 ‘퇴역마(退役馬)’가 되었고, 고철값으로 팔려간다는구나.

   나의 벗이여, 안녕. 네 주인은 가족한테 맹세를 했단다. 앞으로 술 한 방울도 아니 마실 것이고, 오랜 냉담 풀고 성당 미사참례를 할 거라고. 그러자 네 누나는 나의 다짐을 ‘공증하자고’ 말했단다.

   나의 오랜 벗이여, 안녕. 살롬!

 

   * 이 글은 본인의 티스토리 ‘이슬아지’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