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농기구 사용요령

윤근택 2014. 7. 18. 23:35

 

                  농기구 사용요령(1)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우리는 상반된 내용의 이야기를 하는 일이 왕왕 있다. 일 못 하는 이 연장 나무란다.연장이 일을 한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속속들이 알고 나면, 둘 다 옳은 말이다. 서로 통하는 말이다.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소꼴을 베고 호미질을 하고 지게를 져 보았던 나. 거기다가 농과대학(農科大學)을 나왔고, 직장 은퇴 후 10여 년째 본격적으로 농사를 하고 있으니, 웬만한 농사 경험이 쌓였을 게 아닌가. 적어도 내가 그 누구처럼 벽창우는 아니어서, 남이 하나를 알려주면, 곧바로 작업방법을 개선하거나 그 힌트를 다른 작업에도 응용해 보는 편이다. 한마디로, 나는 유연한 사고(思考)를 지닌 사람이다. 충고를 듣거나 나 스스로 시행착오 등을 통해 터득한 몇 가지를 차례차례 소개코자 한다.

1. 삽 갈기

몇 해 전 겨울에, 직장 은퇴로 돈줄이 막혀 이른바 노가다(막노동)을 나간 적이 있다. 경산시 환상리 묘묙 단지였다. 나는 장화를 신고 갔다. 그랬더니, 그 묘목 농원의 주인이 한마디 했다.

윤근택씨, 그 복장 그 신발로 어디 묘목 하찌(의 일본말임.) 제대로 뜨겠어요? 장화는 바닥이 고무인데, 삽을 밟으면 힘이 실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대신, 안전화를 신으면 바닥에 철판이 깔려 있어 삽을 밟으면 힘이 실려요.

 이튿날 곧바로 안전화로 갈아 신고 가 보았다. 역시 삽질하는 데 힘이 더 실렸다. 함께 일을 하던 고참들(?)은 틈만 나면 삽날을 톱 스는 줄로 슬곤 했다. 그들은 줄의 자루를 왼손으로 잡아 꼭지점 삼고 오른 손으로는 줄의 끝을 잡고 반원 왕복운동을 하여 삽의 안쪽 날을 갈아댔다. 승용차의 윈도브러시 작동을 연상하면 된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렇게 간 삽날은 웬만한 나무뿌리도 싹뚝 자르곤 하였다. 사실 내 아버지는 84세까지 살다가 가셨으나, 한 평생토록 삽을 갈아 쓰는 걸 우리한테 보여준 바 없다. 당신은 삽 한 자루 값이 고작 6,000원밖에 되지 않건만, 닳고 무딘 삽으로만 작업을 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괭이나 호미를 갈아 쓴 적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연장을 전동 그라인더로 갈아 쓰고 있다. , 괭이, 호퍼 괭이, 곡괭이, 호미,도끼 등 거의 모든 연장을 그렇게 갈아 쓴다. 쉴 참이면 막걸리 한 대접 따라 마시고 연장 가는 건 필수다. , 면도칼처럼 날카롭게 갈아야 하는 조선낫과 왜낫은 전동 그라인더 대신 숫돌에 갈아 쓴다. 잠시 후에 낫 갈기에 관해 상세히 소개하겠다. 내가 초보 농사꾼들한테도 곧잘 연장을 갈아 쓸 것을 권유하는 편인데,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수구꼴통들이었다. 그렇게 하면 담금질이 풀려 연장을 못 쓰게 만든다고 고집을 피워대기도 한다. 그들은 그 동안 담금질에 관해 어설프게 안 지식 때문에 그처럼 벽창우가 된 것이다. 한 자루의 괭이를 천년 만년 쓸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쓰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버리고 새로 한 자루 사 쓰면 될 게 아니냐고?  나의 애독자 여러분만은 제발 고집 피우지 말고, 정원에 쓰는 꽃삽 한 자루라도 나처럼 자주 갈아 쓰시길.

 2. 낫 갈기 및 낫 사용요령

 낫 갈기다. 낫은 크게 조선낫왜낫으로 가르게 된다. 조선낫은 제법 굵은 나무를 벨 때 쓰이며, 왜낫은 풀을 벨 때 쓰인다. 그러함에도 요령 없는 초보 농사꾼들은 그 날 두꺼운 조선낫으로 풀을 베려고 덤벼드는 예도 있다. 하여간 풀은 왜낫이어야 한다. 왜낫이되, 어느 철물점에 가서든 그 가게에서 가장 싼 왜낫을 사기를 권한다. 한 자루에 단돈 3,000원이면 살 수 있을 것이다. 내 경험상 값싼 왜낫일수록 숫돌에 쉽게 갈리며, 날의 두께가 얇디 얇아 풀베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낫을 갈 적에 숫돌에 물을 축여가며 가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그게 아닐 때가 많다. 요즘 새로 나온 숫돌은 숫돌을 물에 오래 담그어 놓아 숫돌 입자(粒子)들 사이에 물기가 배여 든 상태에서 꺼내 갈아야 한다는 사실. 경험상 숫돌에 자주 갈수록, 첫낫질 때부터 조심스레 길들여 가면, 낫은 의외로 오래도록 쓸 수 있더라는 거. 숫돌에 자주 갈게 되면, 마찰열로 인해 담금질과 풀림질이 교대로 이루어져 묘하게도 날이 견고해지더라는 거. 낫을 부지깽이 대신에 쓰면 낫이 들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열기로 인해 담금질과 풀림질이 전혀 원치 않는 쪽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낫 사용요령이다. 나무가 되었든 풀이 되었든 대궁과 직각이 되도록 베면 아니 된다. 45도로 베야 한다. 이는 물리시간에 익힌 힘의 모멘트와도 관련 된다. 칼잡이들이 훈련 때에 세워둔 짚단이나 대나무를 비껴 베던 걸 떠올리면 된다. 직각이 되도록 즉, 수평으로 베려고 들면, 나무나 풀에 결이 있어 힘이 더 들뿐더러 땅바닥의 돌부리 등에 낫의 이빨이 빠지기 십상이다. 왜낫으로도 굵은 나뭇가지를 벨 수 있는데, 왼손으로는 나뭇가지를 휘고 낫자루를 든 오른손으로는 45도를 유지하며 빗당기면 된다. 물론 낫의 이빨이 빠지는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힘을 덜 들이고 낫질 하는 요령이다. 자루를 가급적 바투 잡지 말고 멀찍이 잡아야 한다. 위에서도 언뜻 밝혔지만, 물리학에서 말하는 힘의 모멘트 때문이다.

3. 호퍼 괭이, 레키(레이크), 갈쿠리(갈퀴) 사용법

위 연장들은 이랑을 짓거나,이미 지은 이랑에 비닐 피복을 할 적에 주로 쓰이는 연장들이다. 이들 연장은 뒷걸음질치며 이랑 건너편 고랑에서 흙 따위를 그러모으도록 고안된 것들이다. 요령부득인 양반들 작업하는 걸 보면, 마치 삶은 개가 눈이 다 튀어나올 지경이다. 그들은 무딘 날의 호퍼괭이 등의 연장으로 자루를 짧게 잡고 눈 앞의 흙에만 현혹되어 이랑과 직각이 되도록 그 흙만 그러모으게 된다. 그러면 동작은 바빠지기만 하고 힘은 배가 더 든다.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가급적이면 자루를 길게 잡고 저 멀리에 있는 흙을 45도 각도로 당기면 훨씬 능률적이다. 멀리에 있는 흙은 일부만 당겨 오지만, 뒷걸음을 비교적 넓게 하는 동안 중첩해서 흙이 모아지기에 원하는 두둑이 만들어진다. 남이 보기에 쉬엄쉬엄 하는 것 같아도 얼마나 능률적인지 모른다. 물론 이때 박자는 가수 주병선칠갑산 노랫말 콩밭 매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가 적절하다. 콧노래를 부르며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이는 순전히 나의 경험이다. 해마다 나 혼자서 호퍼 괭이 한 자루로 고추밭 비닐피복 300여 평, 참깨밭 비닐피복 200여 평 잠시 잠깐 하는 걸 보고서, 마을 어른들이 그 비결을 물으러 온 적도 있다. 심지어 어느 농부는 비닐피복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서 내가 품꾼으로 뽑혀간(?) 적도 있다. 여기서 애독자들께만 덤으로 살짝 알려드릴 게 있다. 괭이를 이따금씩 털어야 한다는 거. 여러 차례 흙을 긁어대다 보면 괭이 낯짝에 적든 많든 흙이 묻게 마련이다. 그 흙을 자주자주 털지 않으면 저항이 생기고 무거워 힘이 더 든다. 그것이야말로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일이다.

4. 들깨모 이종 요령

사실 들깨모 이종 요령은 이 마을 어느 할머니한테서 익힌 것이다. 그분은 물을 주어 가며 심는 나더러 충고해 주었다.

윤과장(나의 택호임.), 들깨모는 흙이 꼽꼽한 날 그냥 심어도 살아요. 그리고 들깨는 직파하면 열매 덜 맺어요. 들깨는 시집보내야 해요.

이식하는 걸 그분은 시집 보낸다고 표현했다. 사실 나의 애독자들께서는 그 할머니 말씀만 새겨들어도 들깨모 이종에 관해 제법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내 경험을 덧붙이고자 한다. 이쪽 분들도 나한테는 시쳇말로, 졌다고 혀를 내둘린다. 하룻만에 100여 평 밭에다 꽉꽉 들깨모를 심어버리니까. 어떻게 하냐고? 일단 호미날을 전동그라인더로 새파랗게 간다. 그 다음엔 다라를 준비한다. 다라에다 들깨모를 쪄서 잔뜩 담는다. 현장에 간다. 다라에서 들깨모를 한 움큼씩 왼손에 집어든다. 왼손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뿌리 쪽만 간추려 벼 모 모내기를 하듯 두 녀석씩 두 녀석씩 짝을 이뤄 가른다. 꼭히 두 포기씩 짝을 지을 필요는 없다. 그걸 세듯 하면 작업속도가 느려터져 못쓴다. 그냥 감각적이면 된다. 포기수가 적으면 장차 더 벌고, 포기수가 많으면 덜 벌게 될 터. 한편, 오른손에 거머잡은 호미로 흙에다 단 한 동작으로 쿡 찍어 홈을 내어 벌린다. 호미날은 벌어진 틈새에 그대로 있게 된다. 그 홈에다 들깨모를 넣고 호미날 뒷등으로 밀어 눌린다. 한 포기씩 심는데, 이처럼 불과 서너 공정으로 끝난다. 애독자들께서는 무척 궁금해 하실 것 같다. 그렇게 어설프게 심어도 들깨농사가 되느냐고 말이다. 들깨-이 뜻하는 바 참으로 강인한 녀석이다. 뿌리가 흙에 얕게 묻히기만 해도 된다. 설령 줄기가 꺾여 있어도 흙 닿은 줄기 발치에서 새 뿌리를 하얗게 내리는 게 들깨다. 공들여서 반듯반듯 심지 않아도 들깨는 며칠 아니 가서 반듯하게 선다.

아무튼, 무슨 농사를 하든 남의 말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유익하다. 어떤 원리를 다른 데도 적용해보려는 태도도 필요하다. 농부가 연장 나무라서도 아니 되겠지만, 토양을 나무라서는 더더욱 곤란하다.그리고 농부한테도 실험정신이 필요하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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