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PET병 유감(有感)

윤근택 2014. 10. 16. 15:14

 

 

PET병 유감(有感)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살아가는 동안,이따금씩 편리한 도구나 용기(容器) 따위가 유감스러울 때가 있다. 이 무슨 변덕인지 모르겠다. 새롭게 또 새롭게 나오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아름다웠던 날들이 추억으로 자꾸자꾸 떠밀려 가고, 차츰차츰 늙어감을 느끼게 되고 . 오늘 아침, 평소처럼 정수기를 통한 지하수를,4홉들이 PET병에 받다가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어느결에 주전자(酒煎子)가 사라져 가고 있어!  아쉬워했다.

     보태서, 잠시 내 일상생활을 소개하기로 하자. 나는 이 중소기업 대구·경북 연수원 사감실에서 격일제로 24시간 근무하고, 아침 일곱 시 반이면 맞교대 사감에게 업무인계인수를 한다. 나는 퇴근하기에 앞서, 미리 준비해온 4홉들이 PET병이나 연수생들이 한번 쓰고 버린 PET 생수통에다 정수기를 통과한 지하수를 가득가득 채우곤 한다. 내 농막에서 하루 종일 음용(飮用)할 물이다. 이곳 연수원이 자리한 경산시 백천동과 이곳과 이웃하고 내 농장이 있는 경산시 남천면 일대는 맥반석(麥飯石)의 고장 답게 지하에 맥반석이 즐비하다. 다들 아시다시피, 맥반석은 보리밥[麥飯]의 밥알이 빼곡히 박힌 듯한 암석을 일컫고, 흡착력이 대단히 뛰어나 물 속 불순물이나 유해성분 따위를 잘 걸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곳 연수원의 지하수는 맥반석을 더듬고 흐르던 물을 길어 올린 맥반석수(麥飯石水)로 유명하다.

     사실 나는 여태껏 PET병을 만능재주꾼으로만 여겨 왔다. 휴대하기에도 편리하고, 냉장고 냉동실에 그대로 넣어 물을 얼리기에도 좋고,주유소에 들고 가서 관리기나 예초기에 쓸 소량의 휘발유를 사 담아오기도 용이하다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내 농막 이곳 저곳에는 PET병이 지천(至賤)이다. 심지어 아내는 4홉들이 PET병에다 깔때기를 끼워 쌀이며 콩이며 참깨며 온갖 곡식을 담아 농막 안에다 두기도 한다. 그러면 바구미 등 벌레가 일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이 이른 아침에, 이처럼 편리하게 두루 쓰이는 PET병을 두고,새삼스레 정말 이건 아닌 것 같아! 푸념할 일이 뭣 있냐고? 합성수지인 PET가 환경호르몬을 배출한다느니, 함부로 다루어 환경을 오염시킨다느니 등은 너무도 흔해빠진 이야기이고. 나는 PET병의 출현으로 인해 주전자와 유리됫병이 사라져가고 또 사라졌음을 아쉬워한다. 그리 됨으로써 우리가 그 동안 잃어버렸던 게 한, 둘 아니다.

    첫째, 우리네는 대부분 지부지쳐 신세로 전락했다. 지가(자기가) 붓고 지가 쳐먹는 걸 그렇게들 말하지 않는가. 참말로 그렇다. 술상에 술주전자 대신 2홉들이 막걸리통이 그대로 올려지는 게 상례(常例). 캔맥주는 두말할 것도 없고. 특히 나의 경우는 그 2홉들이 막걸리통을 기울여 연거푸 두 대포 손수 따라 마시고 만다. 그게 무슨 놈의 흥이며 낭만이냐? 적어도 술맛은, 특히 막걸리맛은 작부(酌婦)가 찌그러진 양은주전자의 손잡이를 공손히 잡고 기울여, 그 주전자의 때기 , 부리를 통해 좔좔 쏟아내는 그 술맛이 최고였다. 그 작부를 두고서 우리네는 매미라고 불렀다. 매미처럼 유행가를 구성지게 잘 불렀기에 그렇게 불렀을까? 아니면, 매미 날개 처럼 하늘하늘한 저고리를 입고 술 접대를 하였기에 그렇게 불렀을까? 그러한 작부가 있는 술집을 우리네는 매미집 또는 방석집이라고 불렀다. 내 이야기가 이쯤에 이르면, 어떤 독자님들은 이러실 것 같다.

    정말 당신도 젊은 날 그런 곳에 가 봤어?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왜 그러셔요, 순진한 척 아마투어답게? 내 젊은 시절엔 캠퍼스 앞에도 그런 술집이 분명히 있었단 말입니다.

     사실 술값도 생각밖에 저렴하였고, 술시중을 드는 그 늙은(?) 아가씨들은 무척 친절했다. 나아가, 그 아가씨들은 젓가락으로 술상 두드리는 데는 귀재였다. 남정네들인 우린들 어디 술상 두드리는 데 그리 둔했던가. 거나하게 취하면, 주모(酒母)가 건넌방에서 어김없이 하던 말이 있다.

    숙아, 물 타라. 그 손님 취한 거 같다.

    그리고 당시엔 대체로 양은주전자가 반듯한 게 없었다. 주전자가 찌그러질수록 적은 술을 담아 한 되 값을 부를 수 있었으니까.

당시는 그것이 우리의 술 문화였다. 그러했던 아가씨들은 지금쯤 다들 할머니가 되었거나 세상을 떴을 테지. 어디 다시금 그러한 매미집이 생긴다면 득달처럼 달려가련만 .

둘째,우리네 아버지들의 니나노 타령을 잃어버렸다. 당신들은 친구분들과 어울리면 막걸리잔을 권커니잣커니 하며 젓가락 장단에  니나노 난 실로 내가 돌아간다. 등을 불러댔다. 그런가 하면, 들에 가실 때에 미리 새참과 새참술을 가져 가시면 좋을 텐데, 막상 그러지 않았다. 당신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였다.

자식새끼 두어서 어디다 쓰게?

손등에 때가 꼬질꼬질 하고, 코를 흘리던 우리들. 어머니네는 그러한 우리에게 술심부름을 시켰다. 양은주전자를 들고 주막에 가서 술을 받아 오고(사오고), 그 다음엔 그 주전자를 들고 밭으로 논으로 아버지들을 찾아 나섰다. 어머니네는 술을 쏟을세라, 주전자의 때기에다 풋고추를 하나 박아주었다. 그 풋고추는 우리네 사타구니에 달린 그 고추보다도 컸다. 아버지네는 당신네 꼬맹이가 들고 간 그 술을 마시곤 했다. 때기에 꽂혀 있던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안주 삼으며 입가에 행복한 웃음을 띠곤 하였다. 당신들의 꼬맹이들이 그렇게 양은주전자에 담아 들고 간 새참술이라야 맛이 제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 긴

기다림 끝에 비로소 느꼈을 행복감.

과연 나는 먼 훗날 얻게 될 외손주녀석한테라도 그처럼 술심부름을 시킬 수 있을는지?

끝으로, 주전자는 아니되, 주전자와 동시대를 풍미했던 유리소주됫병은 아예 자취를 감춘 듯하다. 2홉들이 소주 유리병이 주를 이루고, 4홉들이 유리병을 최근에 본 적이 없다. 그 됫병이야말로 요즘 PET병의 진정한 전신(前身)이다. 장날이면 어머니들은 그 걸 들고 읍내 기름방에 가곤 하였다. 주유소를 당시엔 기름방이라고 하였다. 호야나 호롱에 쓸 등유(燈油)를 사오곤 하였다. 참말로, 석유라 하지 않고 등유라고 하였다. 그 됫병을 아주 귀중히 여겨 병목에다 천 따위로 허리띠인양 고리를 이쁘게묶어 벽 등에 걸어두곤 하였다. 4홉들이 유리병은 등유통으로만 쓰인 게 아니다. 들기름,아주까리기름, 동백기름, 산초기름, 제피기름,꿀 등의 용기로도 두루 쓰였다. 그 됫병의 마개는 언제고 굴참나무 껍질로 만든 코르크였다.

이밖에도 주전자와 됫병에 얽혀진 추억이 수도 없이 많지만, 독자님들 께서도 가만히 눈감고 추억해보시도록 남겨 둠이 예의인 듯하다. 대신, 나는 요즘 지나치리만치 풍요롭게 살아가다 보니까 문명의 이기(利器)들에 관해 그 고마움을 깜빡깜빡 잊을 때가 많음을 반성해 본다. 용기만 하더라도 그 종류가 너무도 많고, 그 재질 또한 매우 우수하다. 합성수지인 PET병도 그 가운데 하나다. 사실 우리 속담에서조차  그릇은 새것이 낫고, 사람은 옛사람이 낫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가 있다. 여기서 부대란, 사막 지방에서 먼 거리를 가기 위해 낙타의 등을 타고 갈 때 휴대하기 쉽도록 고안된 가죽 용기를 일컫는다고 한다. PET병이야말로 여러 점에서 주전자나 유리병에 비해 새 그릇이며 새 부대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PET병을 한번 쓰고는 냅다 버릴 게 아니라 다양하게 재활용해보는 지혜가 필요한 듯하다. 하다못해 물이 귀한 나라에라도 보냄 직하다. 사실 아프리카 등 물 부족 국가의 아이들은 아직도 물동이를 투박하고 무거운 나무통 따위로 만들어 쓰고 있다. 사실 내가 여태 그 존재가치를 잊고 지냈던 용기가 양은주전자였을 뿐이다. 보온주전자·스텐레스주전자·전기주전자·도자기주전자·법랑주전자(琺瑯酒煎子)·휘슬러주전자 등 그 기능면과 재질면에서 아주 다양하다. 실제로 부인들은 그 다양한 주전자를 분위기에 따라 잘 부려 쓰고 있기도 하다. 다만, 나는 앞으로 즐겨 마시는 막걸리만이라도 합성수지병에 든 채로 그대로 단숨에 따라 마실 게 아니라 주전자에 담아 음미하면서 따라 마셔 보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사족 하나를 붙인다. 주전자는 한자어 酒煎子에서 온 말이다. 술을 데우는[] 그릇 또는 술을 담거나 물을 끓이는[] 그릇이란 풀이가 되니, 어쨌든 술은 주전자에 담아서 따라 마셔야 제 맛임을 암시하고 있지 않는가. 나아가서,酒煎子지부지쳐보다는 수작(酬酌)이 더좋은 술 문화임도  보여준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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