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을 노래함
황(黃)을 노래함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농부가, 특히 과일농사를 하는 농부가 황을 모르고 황의 고마움을 모르면 엉터리다. 이 늦은 가을, 나는 황불을 종종 피운다. 감을 깎아 ‘감말랭이’를 만들거나 ‘곶감’을 만들 적에, 황 연기로 훈증(燻蒸)을 하기 위해서다. 사실 독자님들께서 즐겨 사 드시는 곶감이나 감말랭이는 죄다 황 연기로 그처럼 훈증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그렇게 황 연기로 훈증을 하게 되면, 소독이 되어 곰팡이 등이 생기지 않으며, 감말랭이와 곶감 색깔이 노랗디 노랗게 곱다. 감말랭이를 그렇게 만들면, 인체에 해롭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들도 더러 계시리라. 사실 이 글로 인하여,감말랭이 주산지인 청도의 농부들과,곶감의 주산지인 상주의 농부들이 총궐기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소비자들께서는 안심하셔도 좋다. 말 그대로 연기로 잠시 잠깐 훈증했을 뿐이니까.
나처럼 과일농사를 하는 농부들 사이에는 색다른 봄철인사가 있다.
“이제 복숭아 잎이 막 나오려는데, 자네는 ‘황 소독’ 했는가?”
우리네 농부들은 황이 과수한테는 보약이라고들 말하기도 한다. 황은 약한 산성을 띠기에, 즉 ‘황산’이기에 자칫 과목(果木)의 잎이 탈세라, 잎이 피기 전에 황을 살포하게 된다. 능숙한 농부들은 가루 황을 사다가 드럼통 등에다 끓여서 분무기로 과목에다 살포한다. 하지만, 초보 농사꾼에 해당하는 나는, 그게 번거로워서 해마다 농약방에서 정제된 ‘석회유황합제’를 사다가 과수에 뿌리곤 한다. 다시 말하지만, 황은 잎이 돋기 전에 과수의 가지에 도포(塗布)하게 된다. 농부들은 자두·복숭아·매실·살구·감·사과·배 등 거의 모든 과수에 석회유황합제를 살포한다.
여기서 잠시. 황 못지않게 ‘석회’도 살균살충제로 쓰인다는 걸 소개해야겠다. 석회는 특히 ‘포도나무’에 특효약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들 ‘석회보르도액’라고 하는 약제. 그 약제의 탄생에 관한 대학 은사님의 소개는 흥미진진하기까지 했다. 이야기는 포도재배로 유명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출발한다. 길을 가던 대학교수는 온 들녘의 포도농사가 병충해로 엉망이 된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어느 할아버지네 포도는 유독 탐스럽게 달려 있었고, 그분 포도에는 하얀 가루가 묻혀 있었다. 대학교수는 농부한테 무슨 농약을 쳤느냐고 묻게 된다.
그랬더니, 할아버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농약은 무슨 놈의 농약을요. 자발없는 아이들이 우리 포도를 ‘서리’해가지 말라고 석회가루를 뿌렸을 뿐인 걸요. 녀석들 골려 줄 요량으로요.”
대학교수는 곧바로 연구실로 돌아가 제자들과 함께 석회의 효능을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그 유명한 ‘석회보르도액’이다. 실제로, 생석회를 물에 녹인 것에 불과한데… . 하기야 요즘은 석회보르도액이 더욱 진화하여 ‘구리보르도액’ 등도 나왔다.
다시 황 이야기로 돌아온다. 가장 전통적이며 고전적인 농약 즉, 살균살충제는 ‘석회유황합제’라는 사실. 말 그대로 석회와 유황을 혼합하여 만든 농약이다. 이 정도면, 황이 얼마나 농부한테 유익한 물질인지를 나의 신실한 독자님들께서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황이 식물한테만 유익한 물질이 아니다. 선사시대부터 우리네 선조들은 황을 써 왔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기원전 800년경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에서도 황으로 훈증하여 소독하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황의 효능이 기록되어 있다지 않은가. 우리 조상들은 집안 소독을 위해 황불을 피우기도 하였단다. 도가(道家)에서는 황을 최상의 양(陽) 덩어리로 보았으며,그것으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단다. 황과 수은의 혼합물질은 동양연금술에서 가장 필요한 성분으로 여겼다고도 한다. 우리네가 피부병 치료에 좋다면서 유황온천에 가는 일이며, 건강에 좋다면서 유황오리를 먹게 되는 일이며,유황을 화약으로 묻힌 성냥개비를 그어대는 일이며… .
지각암석의 0.034%를 차지한다는 황. 지구에서 16번째로 풍부한 원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1777년에 이르러서야 ‘라부라지’라는 화학자가 황이 한낱 화합물이 아닌, 원소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혀냈다고 한다. 황은 변통능력(?)이 뛰어난 물질로도 알려져 있다. 고온에서는 금과 백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금속이나 수소와 화합하여 화합물을 만들어 낸다는데, 그 화합물들은 그 쓰임이 광범위하다. 살균살충제,화학,화약,고무,제지, 합성섬유,금속, 식품,표백 등 실로 아니 쓰이는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기에 한 나라의 한 해 황 소비량이 그 나라의 경제개발 수준의 믿을만한 척도라고 하지 않던가.
황의 효능에 관해 몇 가지를 더 소개해야겠다. 우선, 여성 애독자들이 들으면 좋아할 효능이다. 피부탄력성 유지에 황의 역할이 크다고 한다. 그러기에 황을 ‘뷰티 미네랄’이라고도 부른단다. 황은 콜라겐의 기능을 강화한다고 한다. 위산과다,만성변비, 허파 기능 장애증세, 치은염, 위염, 역류성 식도염, 장염,말기 병 등에 두루 쓰인다고 한다. 파와 마늘에는 특히 유황 성분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파와 마늘을 평소에 많이 먹게 되면, 위에서 주욱 열거한 병 증세를 완화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특히, 탁월한 해독작용을 맛볼 수 있다는 말이 된다.
황은 생명체의 필수원소인데, 손톱발톱의 주성분이며, 깃털의 주성분이고, 달걀의 주성분이란다. 그러기에 손톱발톱이나 깃털을 태울 때 나는 내음이 바로 황 내음이고, 썩은 달걀에서 나는 내음이 황화합물 때문이라는 거 아닌가. 그러한 황이 각종 종교에서는 아주 나쁜 물질로 소개되어 있다. 구약성경 속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과 불로 파괴되었다고 적고 있다. 지옥을 흔히 유황불로 상징하기도 한다. 이는 마그마의 분출인 화산을 일컫는 말일 것이다. 실제로, 화산이 폭발하면 황화합물이 타서 유황불로 이글대게 되고, 이산화황이나 황화수소를 발생시켜 독성(毒性)을 띠게 된다. 평소 신심(信心)이 충만한 어느 교우(敎友)는 죽은 후 지옥에 떨어질세라, 늘 두려워하면서도 곧잘 유황온천에 가는 걸 보면, 참으로 알쏭달쏭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황이 원소인 상태에서는 독성을 띠지 않는다고 한다.
이제 두서 없는 글을 정리해보아야겠다. 농부인 나는 해마다 봄철이면, 온갖 과일 나무에다 황 소독을 한다. 그럴 적마다 입고 있던 방제복이며 마스크며 온 데 노란 황 입자가 묻곤 한다. 그랬던 내가, 이젠 가을에도 황을 가까이 한다. 남들 것과 달리, 내가 깎아 말린 감말랭이와 곶감은 해마다 태깔이 곱지 않았던 이유를 여태 모르고 지냈는데, 그 비결이 황불 훈증이었더라는 거. 해서, 농부인 나는 이래저래 황이 없는 생활을 감히 꿈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참으로 고마운 황! 이렇게 적고 보니, 그 많은 성씨(姓氏) 가운데 ‘黃’ 성을 지닌 분들조차 우러러 뵌다.
사족 하나를 붙이자. 내 신실한 독자들께서도 황을 앞으로는 고맙게 여겨주십사고. 지금 드시는 그 굵고 태깔 고운 과일도 지난 초봄 어느 농부의 황 소독 덕분에 얻어진 것이라는 점 잊지 마시길. 덧붙여, 집에서 곶감을 만들고자 한 접 정도의 감을 깎을 요량이면, 그렇게 깎은 감을 채반에 얹어두고 그 아래에다 못 쓰는 양재기 등에다 여남은 게 성냥개비의 황들을 긁어 모은 후 불을 피워 보시라. 그것이 바로 황 훈증이다. 물론 감을 담은 채반을 5~10분간 비닐천 따위로 싸서 밀폐시키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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