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약을 노래함
농약을 노래함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낮 동안 벼 타작을 하였다. 400여 평 논에서 수확한 곡식이 지난 해 2/3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인즉, 출수(出穗) 후 곧, 벼가 팬 후 목도열병을 한 차례 앓았기 때문이다. 병충(病蟲) 발생 여부를 자세히 예찰(豫察)하지 않다가 발병 이후에 뒤늦게야 부랴부랴 도열병약을 살포했으니… . 사실 농부들은 하나같이 이 말을 즐겨 쓴다.
“ 이 눔의 농사, 농약을 치지 않고서는 도대체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유기농 신봉자나 무공해농법 애호가들의 낭만적인(?) 태도에 관해, 나는 여느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냉소(冷笑)를 보내는 편이다. 풍성한 수확을 보자면, 오로지 농약만이 답이며, 그것도 예방이어야 한다. 우리는 곧잘 ‘방제(防除)’라는 말을 쓰는데, ‘除’가 아닌 ‘防’에다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뜻이다. 정말로, ‘사후 약방문’이어서는 안 된다. 하여간, 농부로서는 올해 벼 농사를 망쳤지만, 수필작가로서는 또 새로운 글감을 낚아챘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
자연스레, 오늘 밤 나의 이야기는 농약이다. 일전 내가 적은 수필, ‘황(黃)을 노래함’에서 ‘황’이 살충살균제로 쓰인 역사가 깊다고 하였다. 석회와 혼합하여 만든, 이른바 ‘석회유황합제’는 가장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농약이다. 4,500년 전 슈메르인들이 유황을 농약으로 썼으며, 기원 후부터 1850년까지는 ‘천연산물 이용시대’로 구분한단다. 쥐의 방제를 위해, 지중해의 해초(海草)인 ‘해인’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단다. 15세기까지는 비소, 수은, 납 등을 농약으로 썼다고 한다. 그렇더라도 인류가 제대로 된 살충제를 과연 언제부터 썼으며, 어떤 물질에서 얻었을까 궁금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각종 자료를 챙겨보았더니, 글쎄 놀랍게도 그게 아닌가. 바로 내가 즐겨 태우는 담배더라는 사실. 17세기에 이르러 담배를 살충제로 쓰기 시작했다는 거 아닌가. 담배에서 추출한 ‘황산니코틴’이 인기 있고 유용한 살충제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러, 천연적 농약을 또 다른 물질에서 얻게 되었다는 거 아닌가. 바로 국화(菊花)로부터 유래된 ‘피레쓰룸(pyrenthrum)’ 과 열대 채소뿌리에서 유래된 ‘로데논(rotenone)’이라는 약제. 그랬던 농약은 1939년에 이르러 일대 전환점을 맞게 된다. 스위스의 화학공업회사 ‘가이기(Geigy)’의 연구원이었던 뮐러(Paul Muler, 1899~ 1960)가 이른바, ‘접촉성 살충제’를 연구하여 그 유명한 D.D.T.를 개발하게 된다. 사실 우리가 어릴 적에만 하여도 몸에 이[蝨]가 스멀스멀 기어 다녔는데, 흰 가루약이었던 D.D.T.가 특효약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그 유기염소계 농약이 살충능력은 뛰어나지만,인체에 대단히 해롭다는 게 밝혀져,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뮐러의 이상(理想)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해충에는 강한 독성을 갖는 반면 식물과 온혈동물한테는 무해하고, 냄새가 없으며, 오래 가고, 값이 싼 살충제’를 개발하고자 애썼던 결과물이었다. 사실 그의 이상이야말로 모든 살충 농약의 지향점이다.
내 이야기가 제법 두서 없이 전개된다. 해서, 농약의 약사(略史)를 아래와 같이 다시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1. 살충제 : 1825년 BHC 합성, 1939년 DDT 합성, 1941년 독일인 슈라더(Schrader)의 의해 유기인계 침투성 살충제 개발.
2. 살균제 : 1941년 독일인 라이흠(Riehm)에 의해 보리깜부기병약 개발, 1934년 유기유황 개발, 1945년 원예용 살균제 개발.
3. 제초제 : 1936년 살균제로 개발된 PCP가 강력한 살초(殺草) 기능 발휘, 1942년 2.4D 개발.
4. 1900~ 1950년 : 유기인계· 유기염소계 살충제 개발, 유기유황계·유기수은계 항생물질 등의 살균제 개발. 특히 1940~1950년대를 ‘농약의 시대’라고 함.
5. 1950~ 1970년 : 수 많은 종류의 유기합성 농약 개발. 농약 사용이 50배로 늘어났으며, 연간 230만 톤(250만 미국 톤)이 전세계에 사용됨.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농약산업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에 접어들면서 식량증산과 함께 최대 관심사로 떠올라 강대국들이 농약 개발에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는 거. 또, 그렇게 많이 생산되는 농약의 75%가량이 흔히 말하는 선진국들에서 쓰인다는 거.
많은 이들이 농약의 부작용에 관해 우려를 한다. 해서, 자기네가 먹기 위해 소량으로 재배하는 채소 등에는 농약을 아예 살포하지 않거나,살포하더라도 그 회수를 가급적이면 줄이는 추세다. 그러나 나 같은 일반 농부들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낭만을 추구할 수가 없다. 농사는 병충(病蟲)과 전쟁이며, 잡초와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안심해도 좋다. 시중에 나온 농약들은 대개가 저독성이며 약효의 지속력 또한 짧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감안하여, 규제를 날로 강화한다. 대체로, 요즘 농약들은 그 약효가 10일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그러니 농부인 우리는 적어도 10일 간격으로 농작물에 농약을 살포할 수밖에 없다. 과일농사가 그러하고, 고추농사가 그러하다. 특히, 고추에는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농약을 살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고추의 열매 맺는 습성이 여느 작물과 다른 데 기초한다. 매일 새롭게 꽃피우고 새롭게 열매를 맺으니, 병충에 취약한 신생(新生) 열매를 기준으로 농약을 살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른 고추나 고춧가루의 안정성은 제법 확보된다. 설령 고추에 농약성분이 잔류하더라도, 열건(熱乾) 과정에서 농약 성분이 열분해 된다는 게 농약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역으로, ‘태양초’니 하는 고추를 선호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태양 볕으로 말린 고추는 거의 없다. 그러면 이내 곰팡이가 핀다. 그것마저도 일단 건조기에다 넣어 찐 후 볕에다 말린 것들이다. 알고나 사 드셔야 한다.
위 단락을 적고 보니, 내 이야기가 좌충우돌인 것 같다. 다잡아야겠다. 아무튼, 농부인 우리는 병충과 잡초와 전쟁을 힘겹게 벌여야 하고, 해마다 농약방에 갖다 주는 돈이 작물 생산비의 1할대 이상은 된다. 아울러, 농약 살포에 따르는 수고와 시간도 만만찮다. 이러한 어려움도 타개하고, 소비자들께도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고자 뜻있는 이들의 노력도 여간 아니다. 많은 이들이 유기농으로 대변할 수 있는 생약제 개발에 애를 쓰고 있다. 이미 위에서 언뜻언뜻 소개하였지만, 담배와 제충국(除蟲菊)은 우수한 살충 생약 성분을 지니고 있다. 할미꽃뿌리도 구더기를 몰아내는 성분을 지녔다고 하였다. 국민학교에 다닐 적에 선생님은 할미꽃뿌리 캐오기 과제물도 내었던 기억 새롭다. 요즘은 은행잎이나 은행알을 발효하여 그 물을 작물에 뿌리는 이들도 있다. 아무튼, 친환경적인 생약성분의 농약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의미롭다.
농약과 관련한 나의 이야기는 이제 정점(頂點)에 닿는다. 임학도(林學徒)였던 나는, 레닌그라드 대학(현 상트페레부르크 대학)의 보리스 토킨(Boris P. Tokin) 박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1937년, 그분은 식물이 병충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보호코자 내뿜어대는 방향물질(芳香物質)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애썼다. 그리하여 그 방향물질을 ‘파이톤사이드(phytoncide)’라고 명명하게 된다. 여기서 ‘phyto’는 그리스어로 ‘식물’을 일컫고, ‘cide’는 ‘죽이다’를 나타낸다. 애당초 만국공통어인 영어식 표기였으면 좋으련만, 일본에서 공부한 우리네 학자들은 ‘피톤치드’라고 번역했기에 그 점 무척 아쉽다. 어쨌든, 토킨 박사는 식물들이, 특히 수목들이 살균살충을 위해 방향물질을 내뿜는 걸 그렇게 명명하였다. 파이톤사이드는 테르펜,페놀화합물, 알칼로이드 성분, 글리코시드 등의 물질에서 비롯된다. 요즘 부쩍 인기가 있는 산림욕(山林浴)이 이 파이톤사이드와 관련이 있다. 특히 인기몰이를 하는 수목은 편백나무다. 일본인들은 편백나무를 ‘히노끼’라고 하는 모양이다. 자, 이제 내가 제안해 볼만한 사항이 있다. 내가 제약회사 직원은 아니지만,농약의 발전방향은 편백나무 등 파이톤사이드 물질을 많이 갖춘 수목의 잎이나 가지 등을 최대한 이용해 보는 쪽이어야 하지 않겠나 하고서. 그러한 점에서도 나는 지난날 수목학을 익혔던 것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니, 나는 숲의 후생가치(厚生價値)를 그 누구 못지않게 알고 지내기에 행복하다.
사족을 하나 붙여야겠다. 위에서도 이미 한두 차례 이야기하였지만, 담배가 인류 최초로 살충제로 쓰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이야기 아니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진짜로 살충제의 기원이었을지도 모를 담배. 그 애꿎은 담배를 두고, 정부 관료들이 나서서 값을 올려야 된다느니 헛소리를 일삼는다. 이 무슨 난데없는 소리냐고? 지금이 조선 후기라도 된다는 말인가. 나는 그 악명 높았던 삼정문란(三政紊亂)을 지금 말하는 것이다. 담배세금 인상 운위는 백골징포(白骨徵布), 황구첨정(黃口簽丁), 족징인징(族徵隣徵) 셋 가운데 족징인징에 해당할 터. 그러니 얼빠진 정부 관리들이여! 누구 말마따나 “당신네들, 약 드셨어요? “다.
“여보시오, 나리님들! 그럴 용기 있으면 차라리 우수 농산물을 증산(增産)하라고 나처럼 힘 없는 농민들을 위해 농약 제조회사에 법인세 내려주든지 개발비 대어 주든지 하여 값싸고, 안전하고, 약효 우수한 농약이나 개발토록 해주시구려.”
작가의 말)
모름지기 작가는 그 시대의 아픔 따위를 이웃들과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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