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연작(連作)에 관해

윤근택 2014. 11. 21. 21:02

 

연작(連作)에 관해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나는 일찍이 1900년대 후반에 연작수필로 이미 재미를 톡톡히 본 수필작가다. 수필가인 오창익 문학박사가 발행하던 계간 <<創作隨筆>>수평선 너머로 띄우는 편지를 꽤 오랜 기간 연재하였다. 2년여 울릉도에서 살면서, 그곳 풍광 등을 뭍에 두고 간 연인(戀人)한테 쓰는 서간문 형태였으며, 나름대로 너른 독자층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심지어, 다음 호엔 또 어떤 이야기가 실릴까 궁금해 하며 미리 전화로 문의하는 여류 수필가들도 더러 계셨다.

그러했던 나는 그 이후에도 여러 종류의 연작수필을 퍽이나 많이 적어왔다. 절골 이야기 , 대롱, 나무난로 앞에서, 겨울 밤의 우화,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미술 이야기, 어떤 보람, 문장수련(문장이론) . 이들 가운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문장수련은 계간 <<自由文學>>에 뒤따라오면서 연재되고 있긴 하다, 고맙게시리.

이 밤, 오늘은 마땅한 글감을 못 챙겼기에 쩔쩔매다가, 문득 위 연작수필들과 연작 문장이론이 떠오르고, 그 녀석들에 관해 연민(憐憫)과 아쉬움을 가지게 된다. 한마디로, 모두 미완(未完)이다. 언제고 그 연작수필 하단에는 (다음 호 계속)이라고 적어두었지만 . 어떻게 생각하면, 애독자님들한테 다음 호에 대한 기대감만 잔뜩 부풀게 한 것도 같고, 또 한 녘으로 생각하면, 여력(餘力)이 있는 듯 사기친 것도 같고. 하여간, 기회 닿으면 그 연작물의 후속작들을 적겠지만, 솔직히 힘이 무척 달린다. 나의 사례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누워서 침 뱉기 격이지만, 우리네 수필작가들의 필력(筆力)이란 게 대하소설 내지 대하 드라마를 적는 작가들과, 교향곡이나 오페라를 적는 음악가들에 비하면 한심한 축에 든다.

문득, 군대생활 때와 신혼초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텔레비전 대하 드 

 라마 또는 사극(史劇)에 푹 빠져들곤 하였다. 욕심 같아서는, 밤새도록 끝까지 주욱 이어서 보여주었으면 좋겠던데, 아쉽다고 여길 만큼만 보여주고서 다음 주 수요일에 식으로 자막처리하고 끝내곤 하였다. 그것이 작품의 감칠맛을 더해주었음을 새삼 깨닫게 되며,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작가의 능력이었음을. 특히 내 기억에 남는 대하드라마는 MBC에서 방영했던 여명(黎明)의 눈동자 . 작품 속 윤여옥(채시라 분), 최대치(최재성 분), 장하림(박상원) 세 청춘 남녀가 한국전으로 겪게 되는 온갖 비극. 마치 외국 영화 가운데서 닥터 지바고와도 같던 드라마 아니던가.

  다시 내 이야기는 연작수필에 관한 사항으로 돌아온다. 사실 어느 수필가가 자신이 적은 수필들을 편편 모아 한 권의 수필집을 만들고, 또 그렇게 만든 수필집들이 여러 권을 이루고, 거기 한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면, 대하소설에 버금가는, 소설다운 수필도 되는 셈이다. 하더라도, 장르 특성상 수필은 아무래도 대하 소설 등에는 크게 못 미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쯤 되면, 내가 평소 추앙해 마지 않는 세헤레자데를 다시 떠올릴밖에. 그녀는 페르시아 장관의 딸이었다. 그 장관은 폭군(暴君) 샤리드 에게 늘 새로운 하룻밤 왕비(?)를 선발해서 왕의 침실로 들여보내는 책임자였다. 세헤레자데는 고민하는 아버지에게 자청해서 자기가 이번엔 궁궐로 가겠다고 하였다. 설마 여지껏 아가씨들처럼 죽어서 나오겠느냐고 아버지를 위로하기까지 한다.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으며, 자신 못지 않게 지혜로운 여동생 둔자야르와 수작하여, 둔자야르도 궁궐에 불러들인다. 그러고는 밤마다 폭군의 침방(寢房)에서, 폭군의 품 안에서 재미나는 이야기를 한 자락씩 들려주게 된다. 첫닭이 울 때쯤이면, 왕한테 고한다.

대왕이시여, 날이 밝았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는 낮 동안 나랏일을 보신 후 내일 밤에 마저 들려 드리겠어요.

세헤레자데야말로 인류 최초의 훌륭한 극작가였던 셈이다. 그녀는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 부분에 이르러, 일단 스톱 했음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알고 지내는 것과 달리, 그녀는 하루 만에 한 자락의 이야기를 끝냈을 것 같지가 않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여 이어간 이야기가 1001(1001일분). , 그녀야말로 연작(連作)의 대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따로 붙이지는 않았지만, 그 연작물의 이름은 1001일 야화이고 1001개의 부제(副題)가 붙은 작품인 셈이다. 사실 그녀의 여동생인 둔자야르의 역할도 컸으리라고 추정된다. 둔자야르는 수시로 언니한테 용기를 불어 넣어줬을 것이고, 이야깃거리를 챙겨주었을 것이고 . 오늘날 이 대한민국의 어느 수필가한테도 둔자야르처럼 자료를 챙겨주는 이도 있으니, 바로 네이버 박사(?)와 다음 박사(?) 양인(兩人)이다.

이제 두서 없는 이야기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역량 있는 수필작가들께서는 자기 전문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연작 수필로로도 적어 버릇하심이 어떨까 한다. 각 부제의 수필마다 결미에다 여운을 남김으로써, 다음 호와 다음다음 호를 독자들로 하여금 기다리게 하는 작품이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고. 그렇다. 나는 지금 여운이란 어휘까지를 썼다. 참말로, 고 윤오영 수필작가의 편편 수필처럼 여운을 남기는 수필을 적어 보아야 하지 않겠나.

끝으로, 나의 애독자 여러분께 감히 약속 드린다. 위 두 번째 단락에서 열거했던 나의 여러 연작 수필들의 후속작들 잊지 않고 언젠가는 이어갈 테니, 인내심 있게 기다려 주시기를. 특히, 무려 35만여 건이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누적 조회한 문장수련,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내 적어나가겠다고 약속 드린다. 다행스레, 한 동안 다운되었던 한국디지털도서관 홈페이지도 복구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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