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음악 이야기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27)

윤근택 2014. 11. 24. 00:40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27)                     

 

- 부부간에 금실(琴瑟)이 무척 좋았던 작곡가-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그는 그 많은 음악인들과 달리, 부부간에 금실(琴瑟)이 무척 좋았던 작곡가다. 여기서 琴瑟이 뜻하는 바, 거문고()비파()가 잘 어울려 조화로운 음향을 만들어 내듯, 부부가 서로 잘 어울리는 걸 이른다. 금실의 본디말이 금슬이란다. 아울러, 그는 말 그대로 부창부수(夫唱婦隨)를 즐겨 했던 작곡가다. 남편이 노래 부르고 부인이 따라 불렀던 이다. 아니, 자신은 늘 피아노 반주를 하고, 그의 아내는 늘 그 반주에 맞춰 성악을 했다. 둘 다 음악가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소프라노 성악가였던 그의 아내는 그 누구도 아닌 남편의 피아노 반주로만 노래 불렀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작곡가인 남편의 훌륭한 내조자(內助者)이기도 하였지만, 남편이 적은 가곡을 직접 불러 널리 알리는 홍보대사이기도 하였다.

   그가 대체 누굴까? 아름다운 피요르드, 빙하로 만들어진 U자 계곡이 많기로 유명한 산림국(山林國) 노르웨이의 작곡가다. 1874년 그는 고작 31세가 되었을 적에 이미 국가로부터 종신연금을 받아, 작곡에만 전념할만큼 비교적 유복한 작곡가이기도 하다. 해서, 그는 자기 조국 노르웨이를 위해 일생을 바쳐 작곡을 했던 이며,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정말 그가 누구냐고? 바로  에르바르드 하게루프 그리그(Edward Hagerup Grieg, 1843~1907). 사실 우리는 그의 풀네임보다는 그리그로 더 알고 지낸다. 그의 조상은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로 이주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는 스칸디나비아 기질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단다. 그는 베르겐에서 태어났고, 또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피아노 초보를 익혔다. 그러다가 당시 노르웨이 바이올린 주자 올레 볼이란 이가 권유하여 15세가 되던 해에 라이프찌히 음악원에 들어가게 된다. 그의 음악은 멘델스죤과 슈만의 로만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미 첫 단락에서 그의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살짝 적었지만, 그는 같은 나라 출신인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시에다 곡들 붙인 나 그대를 사랑해를 적어, 연인이었던 소프라노 가수 니나 하게루프에게 바친다. 그 가곡을 니나가 불러 널리 알림으로써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들 내외는 속된 말로, 늘 찰싹 붙어 지냈다. 그의 아내 니나는 아름다운 피요르드가 내려다 보이는 숲 속에 전원주택을 지어, 그곳에서 지내자고 제의하게 된다. 그리그는 아내의 뜻을 전폭적으로 따른다. 그들 숲 속 전원주택의 이름도 그의 아내 니나가 정했다. 트롤 드 하우겐이 그것이다. 트롤요정을 뜻하며, 하우겐은 아마도 하우스()를 일컫는 듯하다. 해서, 요정의 집이 되는 셈이다. 본디 그 곳의 지명은 메르렌의 언덕이었지만, 요즘은 그들 부부가 살던 통나무집이 여태 온전히 남은 점,민족주의 작곡가를 기림 등의 이유를 들어, 아예 트롤 드 하우겐이란 지명을 쓴다지 않은가. 실제로 그들 부부는 그 통나무집에 거의 틀어박혀 지내다시피 하였단다. 그리그는 오로지 작곡에만 전념하였고, 그의 아내는 오로지 남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 불렀다니, 작가인 내가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그러했던 그리그는 그 유명한 페르 귄트 조곡을 적게 된다. 많은 음악평론가들은, 그들 부부가 오솔길을 나란히 걸으며 악상을 떠올렸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하곤 한다. 페르 귄트 조곡은 자기 조국 노르웨이의 대문호인 H. 입센 5막 극시(劇詩)를 바탕으로 적은 곡이다. 입센의 그 작품 속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노르웨이 어느 산골 마을. 몰락한 지주의 아들 페르 귄트. 그는 어머니의 절실한 소원에도 불구하고, 집안을 재건하는 일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 그는 몽상가였다. 그는 같은 마을 처녀 솔베이지와 약혼한 사이였다. 그는 산속 마왕(魔王)의 딸과 결탁하여 영혼을 팔고, 돈과 권력을 찾아 세계여행을 떠난다. 약혼자한테는,(내가 한 때 내 아내한테 말했듯) 돈 많이많이 벌어올 테니 . 약속을 했을 것은 뻔하다. 그는 미국과 아프리카에서 노예상을 하여 큰돈을 벌게 되고, 추장의 딸 아니트라를 농락하고 거드름을 피우다가 여자로부터 버림을 당한다. 그러고는 정신이상자로 몰려 입원까지 강요당한다. 그는 오랜 방황을 끝내고, 귀국코자 배에 오른다. 설상가상으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지는 바람에 알거지가 되고 만신창이가 되어 자기가 살던 오두막집에 당도한다. 그의 모친 오제는 이미 세상을 떠나버렸고, 그곳에서 노모를 봉양하던 옛 애인 솔베이지도 백발이 되어 있다. 그는 솔베이지 팔에 안겨 슬프디 슬픈 노래를 부른다. 솔베이지도 슬프디 슬픈 노래로 화답한다.솔베이지의 품에서 페르 귄트는 숨을 거둔다.

    그리그가 적은 두 개의 관현악용 조곡은 그래서 탄생한다. 그는 각각 4곡으로 된 모음곡으로 편곡하게 되는데, 2조곡의 제4곡이 그 유명한 솔베이지의 노래. 사실 나는 10여 년 전, 유모차라는 수필을 적어 <<月刊文學>>에 발표한 바도 있는데, 그 글에서도 나 자신을 페르 귄트, 아내를 솔베이지에 빗댄 적 있다. 하여간, 솔베이지의 노래는 한국인 좋아하는 음악 100위 안에 들 것이다. 그리그 하면 솔베이지의 노래, 솔베이지의 노래 하면 그리그.

  이제 그 솔베이지의 노래를 우리말로 풀어서 적어보는 것으로 이번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 그러나 그대는 내 임일세 내 임일세/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쓸쓸하게 홀로 늘 고대함 그 몇 해인가/ ! 나는 그리워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페르 귄트도 갔고, 솔베이지도 갔다. 그 원작자 입센도 갔다. 페르 귄트 조곡을 적었던 그리그도 갔다. 그가 이승에서 누린 나이는 64세였다. 그는 피요르드가 발 아래 내려다 보이는 그곳, 언덕 바위에 묻혔다. 그곳은 둘 내외가 다정스레 살던 통나무집 근처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이자 소프라노 성악가였던 니나도 뒤따라가서 남편의 무덤 속에 묻혔다.

   끝으로, 나의 신실한 애독자님들께는 덤으로 드릴 게 있다. 꽤 오래 전에 적어 <<月刊文學>>에 발표한 나의 수필작품, 유모차도 이 글과 곁들여 읽으시면, 좀더 맛깔스러울 것 같아서 . 여기를 클릭해 보세요. 유모차/ 과거 <월간문학>에 실린 글임 http://cafe.daum.net/Hwa201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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