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쥐는 잡아야 한다

윤근택 2014. 12. 5. 19:06

 

쥐는 잡아야 한다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하여간, 쥐는 잡아야 한다. 이 겨울, 내 농장에 문제가 생겼다. 창고에다 못다 깎은 생감을 수십 박스 쌓아 두었고, 건고추 여러 포대도 두었고, 무도 얼지 말라고 여러 포대 보관하고 있는데, 쥐새끼들이 설쳐서 아주 난장판을 만들어 두었다. 저 콘크리트 다리에는 탈곡한 벼 포대를 쌓아두었는데, 거기도 쥐새끼들이 설친다. 또, 못다 옮긴 생감을 야적(野積)해 두었는데, 거기도 쥐새끼들이 난장판을 만들어 두었다. 짜증나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해서, 시내 농약방에서 쥐약을 사다가 이곳저곳에다 놓긴 했는데, 놈들이 먹고 뒈질 때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사실 이번에 놓은 쥐약의 메커니즘은, 그 약을 먹은 쥐새끼들의 눈을 멀게 함으로써 결국은 굶어 뒈지게 하는 거란다. 그런데 더욱 난감한 것은, 오늘 아침 내가 기거하는 농막(農幕) 안에까지 한 놈이 들어 와 밤새 온갖 저지레를 다 해 두었더라는 거. 정말로 짜증나는 일이다.

쥐들은 자기 노력으로 먹이를 장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로지 도둑질로만 자기네 배를 채우는 얌체족이다. 남이 봄부터 가을까지 땀 흘려 재배한 곡식을 생짜로 취하곤 한다. 곡식을 그렇게 먹더라도, 내 어린 것들인 강아지들처럼 밥그릇을 닦듯 곱게 먹어대면 좋으련만, 그런 법도 없다. 조금씩 갉아먹다가는 싫증을 내는지 팽개쳐버리기 일쑤다. 곡식만 축내는 것도 아니다. 천정 속 전선(戰線)의 피복이나, 가스레인지로 연결된 고무 가스 호스 등을 갉으면 어쩌나 한걱정이다. 한마디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동물이다.

문득, 지난날을 떠올린다. 행상(行商) 가운데는 쥐약과 이약[蝨藥] 전문 상인도 있었다. 그들은 마을을 돌며, 외마디인양 외치곤 하였다.

“이약! 쥐약! 이약! 쥐약!”

당시엔 쥐만 득실댔던 게 아니라 몸에 이도 스멀스멀 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또, 나라 전체가 주기적으로 날을 잡아 이른바 ‘전국 쥐약 놓는 날’ 행사도 하곤 하였다. 당시 학생들이었던 우리는 그렇게 쥐약을 놓아 잡은 쥐의 꼬리를 담임선생님께 과제물인양 제출하여야만 했다. 그러면 담임은 그 쥐꼬리 개수에 걸맞은 학용품을 선물해주기까지 하였다. 그랬던 ‘쥐잡기 행사’가 요즘 들어서는 아니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시 ‘전국 쥐잡기 날’ 행사가 부활되었으면 참 좋겠다. 사실 정월 대보름에 논둑 밭둑 태우기 행사도 했는데, 그걸 ‘쥐불놀이’라고 하였다.

쥐는 설치류(齧齒類) 내지 쥐과(쥐科)로 분류되는 동물이다. 남극과 뉴질랜드를 제외한 전 대륙에 분포한다고 하며, 지금으로부터 3600만 년 이전 ‘에오세’에 나타난 동물이라고 한다. 설치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포유동물 가운데 3/4을 차지할 만치 그 개체수가 많다지 않은가. 번식이 잘 됨을 반증한다. 실제로 약 220속 1800종에 달한다고 한다. 쥐들의 임신기간을 살펴보니, 종류별로 다소 차이가 있었다. 사향쥐 22~30일, 붉은 쥐 23~26일, 집쥐 21일, 생쥐와 대륙밭쥐 17~20일. 더울 흥미로운 사실은, 집쥐나 밭쥐는 출산 후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발정을 하고, 교미를 하고, 임신을 한다는 거. 그리고 집쥐는 1회에 6~9마리, 1년에 6~회 출산을 한단다. 그러니 내가 이 농장의 농산물을 얼마나 그것들로 인해 축을 내겠냐고? 하여간, 쥐틀을 놓든 약을 놓든 보이는 족족 잡을 수밖에.

쥐를 일컬어 ‘설치동물(齧齒動物)’이라고 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 여기서 말하는 ‘齧(설)’은 물다, 깨물다, 침식하다, 씹다, 갉아 먹다 등의 뜻을 지닌다. 나는 그 가운데서도 맨 후자 ‘갉아먹다’에 유의한다. 실제로 쥐들이 지닌 아래 위 두 쌍의 앞니는 한평생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점이, 천성적으로 딱딱한 물체를 쉼 없이 갉을 수밖에 없도록 한 게 사실이다. 잠시라도 앞니를 그렇게 갈지 않으면 곧 죽음이니... . 왜 하느님께서는 설치류한테다 그러한 이빨을 주셨는지?

쥐가 우리네 인간한테 끼치는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1347년 발생하여 4년간 전 유럽을 강타한 페스트. 설치류의 몸에 기생하는 벼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설치류인 쥐가 중간 매개자였던 셈이다. 그때 유럽 인구 1/3에 해당하는 7천 500만의 흑사병 사망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흑사병으로 말미암아 백년전쟁도 중단되었고, 노동력 감소로 이어져 장원제도니 봉건제도니 하는 것도 무너지게 되었고, 미신이 성행하게도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쥐는 살모넬라,쓰쓰가무시, 리케차, 두창 등을 일으키며, 아메바이질, 선모층증 등도 유발한다고 한다. 나아가서, 쥐는 불결함, 불쾌감, 공포증, 야간소음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니 온 국민이 나서서 함께 날을 잡아 쥐약을 놓는 게 효과적일 것 같은데... .

쥐는 십이간지의 첫 번째 동물이기는 하다. 다산, 재물, 풍요를 상징하며 근면과 성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근면과 성실’이란 말에는 끝끝내 동의할 수가 없다. 특히, 내가 농부이며 창고가 딸린 농막에 사는 사람인 관계로, 쥐를 아주 미워한다. 자립은커녕 남이 수고롭게 지어둔 집에 사글세도 내지 않고 ‘들어얹혀’ 사는 게 꼴불견인다. 늦가을까지는 잡초와 병충(病蟲)과 전쟁을 벌였지만, 겨우내 쥐들을 소탕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일을 행할 것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하였으니, 그 놈들이 못 알아듣도록 우리끼리만 이렇게 이야기함이 옳겠지! 이러한 나의 결의를 두고, 그것들은 어느 구멍에 숨어 ‘찍!찍!’대며 다음과 같이 나를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 왜 이러세요? 쥐 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는 말 모르세요?”

이에 대한 나의 대꾸 없을 리 만무하다.

“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일 뿐이야!”

사실 그 말은 로마의 계관시인 호라티우스(B.C. 65~B.C.8)의 시 구절을, 중국인들이 한문으로 의역(意譯)한 것으로 알려진다.

‘산들이 산고(産苦) 끝에 우스꽝스런 생쥐 한 마리를 낳았다.’

세상의 그 많은 쥐새끼들아, 이젠 됐냐고? 너희는 그저 뒈져 마땅한, 우스꽝스런 생쥐일 뿐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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