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수련(64)
문장수련(64)
-문장을 희롱하라-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이번 호에도 본인의 지난 여름 기발표작(旣發表作; 인터넷 매체 발표작)을 텍스트로 삼아, 다음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요컨대, ‘문장을 여하히 희롱하느냐’의 문제다.
ㅇ 함께 살펴볼 사항들
1. 음운학(音韻學)에 대한 소양
2. 구도미(構圖美; structure)
3. 문장의 알참[충실성]
4. 기타 문장 희롱
일단, 당해 작품을 일독(一讀)해 보자.
초롱꽃
①이 연수원 정원의 돌둑 틈새에 초롱꽃은 피었다. 이슬을 함초롬히 머금고 피었다. ②사실 이 글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잠시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초롱꽃은 피었다’로 정할 수 있었다. ③소년시절, 내가 무척이나 좋아했던 흑인 테너 색소폰 주자(奏者),실 오스틴(Sil Austin). 그의 연주곡 가운데는 내가 즐겨 들었던 ‘장미는 피었다(Oh, rose, my rose)’도 있었으며, 누군가가 자못 감각적으로 그 제목을 번안하였음을 알기에. ④즉, 그는 ‘-이’란 주격조사를 쓰지 않고, ‘-은’이란 주격보조사를 씀으로써 노랫말에 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된 듯 느끼게 하였다는 뜻이다. ⑤나는 무척 오래 되고, 바늘에 의해 긁혀 잡음이 나는 ‘LP판’을 통해 그 연주곡을 내내 들으며 이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까지 할 것이다.
⑥초롱꽃은 피었다. 흡사 지초롱(紙초롱) 또는 사초롱(紗초롱; 깁초롱) 같이 생겼기에,일찍이 ‘초롱꽃’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아니, 우리네 선조들은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그 풀꽃의 모양을 본 따서 초롱[燈籠]을 고안해 내었는지도 모를 일. 세상천지 어느 꽃인들 아름답지 않은 꽃이 있으랴만, 초롱꽃은 이쁘기도 하거니와 그 생김새도 특이하다. 청사초롱(靑紗초롱)의 장식인양 레이스(lace)를 단 듯하기도 하고, 가위로 들쭉날쭉 그 초롱의 아래 터진 끝을 다섯 차례 자른 듯도 한 초롱꽃. 그 안에 수술과 암술이 마치 종(鐘)의 불알인양, 아니 촛불인양 달고 있다. 꽃자루는 마치 초롱의 자루처럼 여겨진다. 초롱꽃의 꽃대와 꽃자루를 보노라니, 하인인 ‘등롱꾼(燈籠꾼)’이 초롱의 자루를 잡은 채 앞장서서 귀인(貴人)의 밤 나들이를 돕는 것이 연상되기도 한다.
⑦6월부터 시작하여 8월에 이르기까지 한 차례 피어나는 꽃. 이들 무리를 일컬어 초롱꽃목(초롱꽃目) 초롱꽃과(초롱꽃科)의 식물이라고 하였다. 어떤 학자는 ‘초롱꽃과’라고 하지 않고 ‘도라지과’로 분류하기도 한다. 어쨌든,그 독특한 통꽃 모양을 통해 한 군(群)으로 묶은 것이다. 이들 무리는 세계적으로는 50속 650여 종에 달하며,국내에는 9속 24종에 달한다고 하였다. 내가 아는 바, 도라지· 애기도라지·둥근잔대·숫잔대·말잔대·층층잔대·왕잔대· 더덕 등이 모두 초롱꽃과에 속한다. ⑧지난날 내가 2년여 동안 직장일로 머물렀던 울릉도. 그곳에는 초롱꽃이 지천이었다. 그쪽 분들은 그 초롱꽃을 ‘모시대’ 또는 ‘모시딱지’라고 불렀으며, 봄날 어린 잎은 좋은 봄나물로 쓴다고 자랑하곤 하였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모시대가 바로 섬초롱꽃이다. 초롱꽃이되,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길들여진 변종(變種)을 일컫는다. 섬에서 자라는 동식물 앞에다 ‘섬-‘이란 접두사가 붙인다는 사실. 마찬가지 이치로, ‘제주찔레’처럼 ‘제주-‘를 붙인 식물은 ‘제주도’에서 자생함을 나타낸다. 또 ‘춘양목’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자생하는 우수 형질의 소나무를 일컫는다.
⑨이제 내 이야기는 조심스레 초롱꽃 가운데서도 가장 빼어난 자태의 초롱꽃 이야기로 옮겨간다. 바로 ‘금강초롱(金剛초롱)’이 그것이다. 금강산에 자생하는 자주빛 감도는 초롱꽃을 이른다. 북한 당국은 나름대로 천연기념물 제233호로 지정해 두었다고 한다. 이 금강초롱이야말로 우리네 ‘청사초롱’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귀한 식물이면, 그에 관한 전설도 있을 것은 뻔하지 않겠나. ⑩김태정 박사의 저서, <<우리 꽃 이야기>>는 이러한 때에 원색사진과 함께 전설까지 전해주어 나한테 큰 도움이 되곤 한다. 그분이 저서에서 소개한 대로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겨와 보겠다.
‘금강산 어느 마을에 살던 부모 없는 오누이 이야기가 있다. 오빠는 재간 있는 석공으로서 바윗돌을 다듬어 금강산을 명산으로 만들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3년 후에 돌아오기로 약속하고 누이와 헤어져 금강산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기다리는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는 오빠를 찾아 길을 떠나 금강산을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가 캄캄한 밤이 되었다. 이럴 때 초롱불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며 소녀는 무섭고 슬퍼서 울었다. 그런데 소녀의 눈물이 떨어진 곳마다 초롱처럼 생긴 고운 꽃이 피어나 빨간 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소녀는 꽃송이를 꺾어들고 불빛이 비치는 곳으로 따라가니 거기에는 바위를 다듬다가 쓰러진 사랑하는 오빠가 있었다. 이때 갑자기 초롱꽃이 흔들리며 향기가 풍겨 나오더니 오빠가 스르르 눈을 뜨는 것이었다. 그 후부터 오누이는 금강산 구경을 왔던 사람들이 길을 잃거나 지쳤을 때 이 꽃을 꺾어 들라고 금강산 곳곳에 초롱꽃을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⑪사실 초롱꽃은, 특히 금강초롱은 우리네 옛 조명기구 ‘초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창호지 또는 유리 또는 깁[紗]으로 바람막이를 하여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였던 그것. 그 가운데서도 청사초롱은 아주 특별하다. 본디는 조선 후기 왕세손만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단, 상민(商民)들은 혼례식에서만 허락되었단다. 청사(靑紗;푸른 깁)와 홍사(紅紗;붉은 깁)를 상단과 하단에 각각 붙여 만든 초롱. 청사는 음(陰)을 나타내며 홍사는 양(陽)을 나타내어 신랑각시가 화합과 조화를 이루라는 의미가 녹아 있단다. 즉, 그들의 새 출발을 축복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러기에 청사초롱 이미지의 금강초롱의 꽃말조차 ‘각시와 신랑’ 또는 ‘기뻐하는 마음’인가 보다. 조선조 이익(李瀷)이란 분이 대나무 틀로 만든 사초롱(紗초롱;깁초롱)을 고안해 내었단다. 비싼 밀초(蜜炒) 대신 서민들이 손쉽게 구해 쓰는 아주까리기름, 들기름 등을 이용한 기름등잔을 바람에 꺼지지 않게 고안한 물품이었단다. 사실 요즘 우리는 청사초롱을 흔히디 흔하게 보는 편이다. 각종 행사 때에 거리에 내거는 청사초롱, 고풍(古風)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고급 음식점 등에 내거는 청사초롱 등등. 하지만, 그 초롱 안에는 촛불이나 기름등잔 대신 백열전등이 들어있기 일쑤다. 바람에 흔들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게 초롱의 참 맛이지만… . 아니, 더러는 위태위태하다가 꺼뜨려 다시금 불을 밝혀야 제 맛이건만… .
⑫ ‘초롱’에 관해서 내가 남겨 둔 이야기를 마저 들려드려야겠다. 나는 두 딸을 얻었다. 나는 큰딸아이 이름을 ‘초롱’으로 지어주었다. 기왕에 나의 성(姓)이 ‘윤(尹)’이니 조화로울 것 같았다. 사실 모든 모음과 ‘ㄴ’·’ㅇ’·’ㄹ’·’ㅁ’네 개의 자음이 유성음(有聲音)이라서 물 흐르듯 남 듣기에 좋은 소리라지 않던가. 실제로 나의 성인 ‘윤’은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 모두가 유성음이다. 거기다가 ‘초롱’까지 보태면… . 우리 내외는 녀석을 ‘윤초롱’으로 부르지 않고, ‘눈초롱’으로 부르곤 하였다. 여성의 매력은 ‘초롱초롱한 눈’에 있다고 믿었던 나. 덧붙여, 남들을 위해 밤을 환히 밝혀주는 ‘초롱’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녀석은 이름 덕분인지 둘레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일이 많으며, 눈이 비교적 초롱초롱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년(成年)에 이르자, 애비가 지어준 이름 대신에 작명가로부터 ‘현지’라는 한자 이름을 받아 개명하여, 호적에까지 바꾸긴 하였지만… .
⑬초롱에 얽혀진 내 추억담 등을 얼추 다 들려 드린 셈이다. 사실 어린 날 ‘호야’와 ‘호롱’과 ‘등잔불’ 등에 대한 추억 퍽이나 많지만, 막무가내 과거회귀적인 사항만 추억할 수도 없는 일. 그러나 나는 밤낮없이 밝은 전등 아래, 실내에서 근무하는 관계로 오히려 눈이 침침해지는 일이 잦다. 이러한 때에오늘 이른 아침 출근길에서 마주친 초롱꽃은 반갑기 그지 없었다. “초롱꽃!” 그 이름만 불러 보아도 가슴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 같다. 실제로 초롱꽃과에 속하는 식물들 대개는 우리한테 이롭다. 울릉도 주민들은 초롱꽃을 ‘모싯대’로 부르며 여린 잎을 나물로 무쳐 먹는다. 도라지는, 특히 산도라지는 기관지에 아주 유용한 식물이라고 한다. 어느 제약회사가 개발한, ‘용각산’의 주원료라고도 한다. 층층잔대는 사삼(沙蔘)이라고 부르며 거담·진해·해독에 쓰인다. 그리고 더덕은 더 이상 추켜세울 것도 업다. 고추장을 발라 구이를 하면 이내 밥도둑, 술도둑이 된다. 모두 제각기 독특한 모양과 독특한 개수의 초롱을 들고 앞을 환히 밝히는 식물들이다. 그것들은 우리네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앞길을 밝혀주는 길라잡이인 듯하다.
⑭끝으로, 이젠 실 오스틴의 연주곡, ‘장미는 피었다(Oh, rose, my rose)’를 꺼도 되겠다.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자, 이제 위에 제시한 사항들 하나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음운학(音韻學)에 대한 소양 : 글쓴이는 초·중 시절 이미 음운학의 기초를 제대로 닦았다.
가) 토씨[조사]에 대한 충분한 이해
④즉, 그는 ‘-이’란 주격조사를 쓰지 않고, ‘-은’이란 주격보조사를 씀으로써 노랫말에 더 많은 이야기가 함축된 듯 느끼게 하였다는 뜻이다.
* 글쓴이는 토씨 하나를 어떻게 부려 쓸까에 관해서도 실 오스틴의 연주곡인 ‘장미는 피었다’를 이 글을 쓰기 위해 자연스럽게 불러들임으로써 해결했음을 알 수 있다.
나) 유성음에 대한 이해 : 글쓴이는 유성음에 기초하여 딸아이들의 이름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에서 유성음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었던 이는 시인 김윤식이다. 그는 자신의 필명을 ‘김영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의 필명 가운데 ‘ㄱ’을 제외한 모든 모음과 자음이 유성음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 그러기에 그의 필명을 소리 내어 부르다 보면,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듯 하다.
⑫ ‘초롱’에 관해서 내가 남겨 둔 이야기를 마저 들려드려야겠다. 나는 두 딸을 얻었다. 나는 큰딸아이 이름을 ‘초롱’으로 지어주었다. 기왕에 나의 성(姓)이 ‘윤(尹)’이니 조화로울 것 같았다. 사실 모든 모음과 ‘ㄴ’·’ㅇ’·’ㄹ’·’ㅁ’네 개의 자음이 유성음(有聲音)이라서 물 흐르듯 남 듣기에 좋은 소리라지 않던가. 실제로 나의 성인 ‘윤’은 초성(初聲)· 중성(中聲)· 종성(終聲) 모두가 유성음이다. 거기다가 ‘초롱’까지 보태면… . 우리 내외는 녀석을 ‘윤초롱’으로 부르지 않고, ‘눈초롱’으로 부르곤 하였다. 여성의 매력은 ‘초롱초롱한 눈’에 있다고 믿었던 나. 덧붙여, 남들을 위해 밤을 환히 밝혀주는 ‘초롱’이 되길 바랐던 것이다. 녀석은 이름 덕분인지 둘레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일이 많으며, 눈이 비교적 초롱초롱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성년(成年)에 이르자, 애비가 지어준 이름 대신에 작명가로부터 ‘현지’라는 한자 이름을 받아 개명하여, 호적에까지 바꾸긴 하였지만… .
2. 구도미(構圖美; structure)
나는 늘 주장해 왔다, ‘산문은 단락의 문학’이라고. 사실 이 주장은 ‘윌리엄 와트’의 ‘좋은 글 12개 척도’에 기초한 것이기도 하다. 한편, 김봉군(金奉郡)의 <<文章技術論>>에 제시된 단락의 네 가지 원리 즉, 강조성·일관성·통일성·완결성과도 관련이 있다. 그리고 ‘리드’가 주장한, “단락은 생각의 덩어리다.‘라는 말과도 상당히 관련 있다. 그 많은 주장 가운데서도 ’한 단락 내에서는 중심 문장이 하나여야 한다.‘는 점을 간과(看過)할 수가 없다.
글쓴이는 위에 소개한 작품의 단락마다 오롯이 한 덩어리가 되는 이야기를 펼쳤음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구도미’라고 일컬어도 좋을 것이다. 자연, 쭉덩이가 아닌 알찬 문장이 되었다. 독자들로 하여금 제법 많은 내용을 한 편의 짧은 글로 알게 하지 않았는가. 가끔씩 애독자들로부터 듣는 말, “윤선생은 도대체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가 바로 이러한 구도미에서 비롯되었음을.
3. 문장의 알참[충실성]
위 ‘2’와 밀접한 관계다. ‘단락은 생각의 덩어리다.’를 환기해 주기 바란다. 한 편의 수필에서 예화(例話;에피소드)가 몇 개여야 적정한지는 아직 자신 있게 말하지는 못하겠으나, 자신이 알았던 사항이나 글을 쓰면서 알게 된 사항(자료를 챙기는 등으로 새로 알게 된 사항)들을 최대한 쏟아붇되,그것이 마치 용접 자국이 너덜너덜한 것처럼 되어서는 아니 된다. 내가 평소 주장한 ‘천의무봉(天衣無縫)’을 다시 기억하여야 한다. 즉, 천사가 입은 날개옷은 솔기[裁縫線]이 없다는 사실.
4. 기타 문장 희롱
가) 너무 아름다운 말로 꾸미다 보면 작품 망친다 : 건조체로 도입함.
①이 연수원 정원의 돌둑 틈새에 초롱꽃은 피었다. 이슬을 함초롬히 머금고 피었다.
나) 독자들을 의식한, 전문 수필작가의 여유 내지 오만 : 중압감으로 인하여, 자기가 적는 글에 자신이 끌려가서는 아니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문장을 휘어잡고 끌고 가야 한다.
②사실 이 글 제목을 무엇으로 정할까 잠시 잠깐 고민했으나, 이내 ‘초롱꽃은 피었다’로 정할 수 있었다.
⑤나는 무척 오래 되고, 바늘에 의해 긁혀 잡음이 나는 ‘LP판’을 통해 그 연주곡을 내내 들으며 이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까지 할 것이다.
⑭끝으로, 이젠 실 오스틴의 연주곡, ‘장미는 피었다(Oh, rose, my rose)’를 꺼도 되겠다.
다) 한 작품을 다 쓸 동안, 관련된 음악을 내내 듣는 여유
⑤나는 무척 오래 되고, 바늘에 의해 긁혀 잡음이 나는 ‘LP판’을 통해 그 연주곡을 내내 들으며 이 글을 시작하고 마무리까지 할 것이다.
⑭끝으로, 이젠 실 오스틴의 연주곡, ‘장미는 피었다(Oh, rose, my rose)’를 꺼도 되겠다.
라) 자신의 과거 경험 등을 필요할 적마다 제대로 머릿속, 그 곳간에서 불러올 줄 알아야 한다.
⑧지난날 내가 2년여 동안 직장일로 머물렀던 울릉도. 그곳에는 초롱꽃이 지천이었다. 그쪽 분들은 그 초롱꽃을 ‘모시대’ 또는 ‘모시딱지’라고 불렀으며, 봄날 어린 잎은 좋은 봄나물로 쓴다고 자랑하곤 하였다.
⑪사실 초롱꽃은, 특히 금강초롱은 우리네 옛 조명기구 ‘초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창호지 또는 유리 또는 깁[紗]으로 바람막이를 하여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였던 그것. 그 가운데서도 청사초롱은 아주 특별하다.
마) 솔직함이 오히려 ‘아는 체’를 이긴다.
* 때로는 전문가의 입을 빌려 사실을 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글쓴이는 ‘지식의 평준화’를 생각하며, 최근에 ‘꼴라주 형태의 수필’ 도 자주 써왔다.
⑩김태정 박사의 저서, <<우리 꽃 이야기>>는 이러한 때에 원색사진과 함께 전설까지 전해주어 나한테 큰 도움이 되곤 한다. 그분이 저서에서 소개한 대로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옮겨와 보겠다.
(다음 호 계속)
* 이 글은 본인의 블로그,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이 글은 본인의 카페 이슬아지 에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