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29)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29)
- 세계 최연소 레코딩 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연주가 -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또 새로운 뮤지션을 알게 된다는 거. 그것은 나한테 희열을 갖다 준다. 늘 귀에 익숙했고, 프로야구 경기장이나 어느 광고 삽입곡 등에서 자주 울려 퍼지던 그 연주곡. 아주 빠르고 흥겹게 연주되던 그 곡, 바이올린과 드럼의 비트가 아주 인상적이던 그 곡. 드디어 그 곡명, ‘콘트라단자(Contradanza)‘와, 그 곡들 연주하는 뮤지션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우선, ’콘트라단자‘는 150여 년 전 영국에서 유행했던 민속 무곡을 일컫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은, 그 뮤지션에 대한 소개다.
그는 13세 때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녹음함으로써 ‘세계 최연소 레코딩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연주가’다. 그리고 그는 전자 바이올린 하나로(?) EMI와 계약하여, ‘The Violin Player’란 앨범을 발매함으로써 정식 데뷔하였다. 그의 음악은 상업적으로 대단히 성공하여, 2006년 4월 기준으로, 영국이 선정한 ’영국 30대 부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현란한 무대, 관능적인 의상(衣裳),팝(pop)과 락(rock)과 클래식(classic)이 혼합된 음악 연주 등으로 아주 유명하다. 그는 자신의 음악장르에 관해, ’바이올린 테크노 어쿠스틱 퓨전 음악‘라고 제법 여러 어휘를 혼합해서 말한다. 사실 그가 자신의 음악 장르를 그처럼 긴 수식어로 말할 만도 하다. 그의 연주곡을 듣고 있노라면, 그의 수식어가 전혀 손색없음을 금세 알게 된다. 풀이하면, 이렇다. 그는 전자바이올린으로,컴퓨터와 신시사이저 등의 첨단기기를 이용해서 기존의 음원을 변주하거나 섞는 방식인 ’테크노(techno)‘를 취하며, 앰프를 사용치 않고 생음악으로 들려주는 연주인 ‘어쿠스틱(acoustic)’도 택하고, 서로 다른 두 종류 즉, 클래식과 팝 등의 것을 섞어서 새롭게 만드는 ‘퓨전(fusion)’까지를 곁들인 음악을 연주한다. 그는 ‘클로스오버(cross-over) 음악’을 하는 이라고 보면 된다.
이쯤 해두고, 그가 누구인지 화끈하게 밝혀야겠다. 그가 바로 ‘바네사 메이(Vanessa Mae,싱가포르 태생, 영국 국적, 태국 여권 소지자이며 태국 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선수, 1978~)’이다. 위 괄호 속 약력을 보더라도 그는 제법 복잡한, 그가 자신의 음악세계를 칭하는 말 대로 ‘테크노 어쿠스틱 퓨전’인 이다. 그는 태국인 아버지 ‘바라쁘롱 바나꼬른’과 중국인 어머니 ‘파멜라 탄’ 사이에 태어난 딸이다. 그의 본명은 제법이나 길다. ‘바네사 메이 바나꼬른 니콜슨’. 그의 이름 가운데 맨 나중에 붙은 ‘니콜슨’은 잠시 후에 밝히겠지만, 그에게 가족사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쪽에서는 그를 ‘천메이(陳美)’라고 부른단다.
‘바네사 메이’는 3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하게 되었다. 그랬던 그는 양친이 갈라서게 되어, 4세 때에 어머니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하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인 ‘그레이엄 니콜슨’과 재혼하게 된다. ‘바네사 메이’의 풀네임 끝에 ‘니콜슨’은 그렇게 해서 붙여진 것이다. 내가 왜 마치 남의 가족사를 뒷조사하듯 이렇게 적느냐고? 그의 의붓아버지 니콜슨의 음악 이해 내지 자녀 사랑이 상당히 컸으리라는 추측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경매가 150000파운드 (현재 우리 돈 2억 7000여만 원에 해당함.)를 들여 의붓딸한테 ‘과다니니(Guadagnini)’ 바이올린을 선물해주기까지 했다지 않은가. ‘과다니니’는 이탈리아의 바이올린, 첼로 제작자의 이름이며 그 가문을 나타낸다고 한다. 1761년부터 20세기 초까지 약 200년간 명품 바이올린을 만든, 세계 3대 바이올린 제작사. 그는 피아노의 귀재이기도 하였지만, 5세 때부터는 바이올린 연주에도 대단한 실력을 보이게 된다. 그는 8세가 되던 해부터 피아노 연주로 각종 상을 받게 되지만,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중국 베이징 중앙음악원 교수 ‘린야오지’와 영국 런던 왕립음악원 교수 ‘펠릭스 안드리예프스키’ 양인(兩人)한테 사사받는다.
1989년 그가 10세에 불과했던 어린 나이에 영국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콘서트를 하게 되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1990년 그가 11세에 불과한 나이에 첫 앨범 <<Violin>>을 내면서 클래식 바이올린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는 1992년 그가 13세가 되던 해에, 위에서 이미 한 차례 적은 바 있지만,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세계 최연소에 레코딩하여 기네스북에 오르게 된다. 1995년 그가 16세가 되던 해 드디어 <<The Violin Player>> 라는 첫 번째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영국 30대 부자’ 안에 든 것은 그때부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그는 그 앨범에 수록된 연주곡들을 일컬어, ’바이올린 테크노 어쿠스틱 퓨전 음악‘이라고 했다. 그 앨범에 수록된 곡 가운데, 위 첫 단락에서 소개한 ’콘트라단자‘도 있으며,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여름‘을 오롯이 ’바네사 메이‘ 자신의 버전으로(?) 연주한 ’스톰(Storm)‘도 있다. 이들 두 연주곡 공히 현대적 감성이다. ’아주 빠르고 흥겹게 연주되며, 전자바이올린과 드럼의 비트가 인상적‘이라고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콘트라단자‘의 경우, 음악적으로는 8마디의 주요 동기가 반복되는 게 특징이다.
나는 이 글을 적는 동안에도 ‘팝 아티스트’인 ‘바네사 메이’, 그의 전자바이올린 연주실황을 인터넷 동영상으로 거듭거듭 보았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 숫제 희롱하였다. 현란한 몸놀림으로 청중들을 아예 뇌쇄(惱殺)하였다. 여러 음악비평가들은 그것이 기획사 등의 상업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비난하기도 한단다. 하지만, 나는 그가 추구하는,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음악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나는 그가 자신 있게 자기의 음악세계를 남들한테 소개하고 있다는 걸 지나쳐 들을 수가 없다. 바로 ’바이올린 테크노 어쿠스틱 퓨전 음악‘이라는 그의 말. 30여 년째 수필작가 행세(?)를 하는 나. 나는 과연 나의 수필작품 세계를 그녀처럼 어떤 수식어로 남들한테 소개할 수 있을까 하고서. 그저 막막하기만 한 걸.
끝으로, 그의 연주곡을 아래와 같이 링크하면서 글 줄인다. 당해 블로그 주인한테 힘 안들이고 옮겨 옴에 관해 미안함을 전한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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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디지털도서관 본인의 서재,
한국디지털도서관 윤근택서도 다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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