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 = 6.022×1023 /mol
NA = 6.022×1023 /mol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낮에 심심하여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EBS’를 틀게 되었다. 화면 좌측 상단에는 잔글씨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로 되어 있었다. 과학과 철학이 대체 무슨 관계이기에? 그러나 강사인 그분의 강의를 잠시 듣고 있노라니, 금세 빨려들었다. 학창시절에 마냥 복잡하고 어렵답다고만 여겼던 화학 분야. 그러한 화학에 관해, 그분은 귀에 속속 들어올 수 있도록, 맛깔스런 화술(話術)로 들려주었던 것이다. 학창시절 내가 진작에 그분을 통해 화학을 익혔더라면... .
이 글을 쓰기에 앞서, 그 강사의 약력 등을 인터넷 매체를 통해 잠시 살펴보았다. 그분은 ‘장하석(1967~, 서울 )박사’였다. 그분의 집안은 학자, 박사 등이 많이 배출된 명문집안이기도 하였으며, 그분은 국내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유학길에 올라, ‘과학철학’이란 학문을 익혔고, 런던대학의 교수이며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석좌교수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무튼, 뒤늦게나마 그분의 강의를 듣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특히, 글감이 쪼들리던 이 수필작가한테 귀중한 자료를 주었으니... .
낮에 텔레비전을 통해 들은 그분의 명강의(名講義)는 ‘아보가드로(Amedeo Avogadro,이탈리아,1776~1856)’의 생애와 업적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였다. 아보가드로는 <<단체분자의 상대적 질량>>이란 논문을 통해 이렇게 밝힌다.
‘홑원소물질이나 화합물을 막론하고 여러 가지 기체를 구성하는 극한의 미립자를 분자(molecule; 작은 입자)라고 한다.’
아보가드로가 그 논문을 통해 이 지구상에서 최초로 ‘분자설(分子說)’을 주창한 셈이다. 사실 아보가드로 이전에 ‘돌튼’이 ‘원자설’을 밝혔으나, 그 이론으로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고 한다. 그 무렵 ‘보일’은 ‘기체의 압력과 부피의 관계’를, ‘샤를’과 ‘게이뤼삭’은 ‘기체의 온도와 부피와 관계’ 등을 연구했으나, 아보가드로가 이 분자설 가설(假說)을 내세움으로써 그들 학자들이 여태 해결치 못하였던 그 동안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한 업적이 있다는 거 아닌가. 그는 1몰(mol)의 기초 단위체(분자·원자·전자·이온·유리기 등) 속에 들어있는 입자수 즉, 분자수에 관해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운다.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분자가 들어있다.’
그는 쉼 없는 실측(?) 등을 통해 그것을 입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당시 그의 논문은 난해해서 제대로 이해하는 학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60여년이 흐른 1860년에 ‘카니차로 (S. Cannizzaro)’가 학술대회에서, 그의 스승인 아보가드로의 그 논문을 이해하기 쉽게 해석하여(?) 발표함으로써 드디어 빛을 보게 되었단다. 내가 이 글의 제목으로 삼은 공식,‘NA = 6.022×1023 /mol’은 그렇게 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를 두고 ‘아보가드로수(Avogadro's number)’라고 하며, ‘NA’에 쓰인 작은 문자 ‘A’는 아보카드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문자라는 거 아닌가.
아무튼, 그의 크나큰 업적은, 각종 화합물을 ‘원소’로만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을 ‘분자’의 개념으로 확대함으로써 해결하였다는데... . EBS 강사 장하석 박사는 물 즉, ‘H2O’를 예로 들어 설명해주었다. 돌튼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화학결합 방식’이었고, 아보가드로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2H2O’의 설명하려고 들었단다. 그러나 그것 역시 해명이 아니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잠시 화합물의 결합방식에 관해 복습하고 넘어가기로 하자. 편의상 도식화 한다. 화합은 A+B→ AB, 분해는 AB→A+B, 치환은 AB+C→AC+B, 복분해는 AB+CD→AD+CB. 이러한 화학변화는 본디의 물질과는 전혀 성질이 다른 물질이 생성되는 과정을 이르며, 그 예로 산화반응, 전기분해, 중화작용 등이 있다. 또 공유결합은 화학결합 가운데 각각 내어놓는 전자를 원자들이 공유하는 형태를 일컬으며, 이온결합은 양이온과 음이온이 인력(引力)에 의해 결합하는 형태를 일컫는다. 이온결합의 가장 좋은 예는 소금 즉 ‘NaCl’이다. 이를 다시, 양성이 강한 금속물질 ‘Na+’와 음성이 강한 비금속물질 ‘Cl-’의 결합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무기화합물’로서는 물 즉, ‘H2O’의 모형을 도저히 규명해 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즉, 돌튼 이론으로도 아보가드로의 가설으로도 물의 정체를 명쾌히 밝혀낼 수 없었다고 장하석 박사는 말했다. 그러다가 유기화합물 연구가들이 수 없는 ‘유기화합물’에 대한 갖가지 모형을 연구해내다가 드디어 무기화물의 대표격인 ‘H2O’의 결합방식의 비밀을 찾게 되었단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느라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은, 그가 그 복잡한 논문을 쓰고 세상을 뜬 지 4년이 지난 1860년에야 그의 제자를 통해 비로소 진실로 밝혀졌으니... . 아보가드로를 두고, 분자설로 하여 모든 화합물의 정체를 규명하는 기초를 닦은 이라고들 한다.
나의 신실한 독자님들이시여! 내가, 학창시절 수학을 비롯한 물리학,화학 등의 기초지식이 거의 꽝이었던 내가 이러한 글을 쓴다는 게 우습지 않은가. 사실 아보가드로의 이론 등에 관해서는 독자님들께서 나보다 더 많이 알 것이다. 그러함에도 내가 굳이 이처럼 머리 아픈 화학 이야기까지 꺼낼 때는 색다른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살펴본 바, 아보가드로는 법률을 익혀 종교법학박사를 취득하고, 대학 강단에서 법학을 강의했던 이였다. 그러했던 그는 순전히 독학으로 물리학과 화학을 익혀 그 분야의 학자가 되었고, 이번엔 법학이 아닌 물리학과 화학을 강의했다는 거 아닌가. 나아가서, 그가 이탈리아 사람이면서도 여러 나라의 국어에도 능통하였고, 첫 논문조차도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적어 발표했다고 한다. 그 뿐만도 아니다. 그는 라틴문학에도 조예가 상당히 깊었다고 한다.
이제 엄연히 수필작가의 자리로 되돌아와 꼿꼿이 컴퓨터 앞에 앉은 나. 아보가드로를 통해 몇 가지 사항을 되짚어보게 된다. 그는 어떤 궁금증에 관해 오랜 실험 내지 실증(實證)을 통해, ‘같은 온도와 압력에서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같은 부피 속에는 같은 수의 분자가 들어있다.’를 명쾌히 얻어낸, 위대한 화학자가 되었다. 그는 그 무렵 같은 분야를 연구하던 학자들의 이론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포섭(包攝)하였다. 이 점도 내가 크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 여태 나는 그 많은 수필이론가들과 그 많은 수필작가들의 이론이나 작품을 가급적 읽지 않으려고 부러 애써 왔으니... . 그 무엇보다도, 아보가드로한테서 크게 배울 점은, 그가 살아생전에는 빛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사실. 훌륭한 후학(後學), ‘카니차로 (S. Cannizzaro)’를 두었기에, 비록 60여년의 세월이 흐르긴 하였지만,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지 아니한가. 그런 걸 보더라도, 내가 나의 그 많은 수필작품들을, 지금 당장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투덜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물론, 조바심을 부리거나 허세 부리기를 좋아하는 제법 많은 문필가(文筆家)들도 아보가드로의 사례를 새겨봄 직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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