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근택 2014. 12. 30. 06:07

 

문장수련(66)

- 재편집 내지 재구성(resttructure)의 대가(大家)-

 

윤요셉(수필가/수필평론가)

 

이번 호에는 본인이 e메일로 신작(新作) 등을 주기적으로 부치는 몇몇 분한테 쓴 e메일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옮겨다 붙이는 것으로 갈음한다.

 

 

문득 제가 어떠한 수필작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위 제목에서 이미 밝혔듯, ‘재편집 내지 재구성(restructre)의 대가(大家)’가 아닐까 하고서요.

지난밤에 제가 띄운 ‘훈문정음...’의 도입부를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네요. 아래에 있어요.

또 문득 겹쳐지는 한 인물이 있네요. 그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프랑스, 1887~1968)’인데요, 그는 다다이즘 미술작가지요. 어느날 자신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어 현상 전시회에 참여했는데, 그는 어느 남자 화장실에서 소변기를 뚝 떼다가 ‘샘(fountain)’이란 이름을 붙이고, 출품자의 이름도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으로 속여 출품했죠.

그랬더니, 다들 전시회 진열대 위에서 그 작품을 치우라고 했다지요. 한마디로, “저 변기 집어 치워.”라고들 고함쳤죠. 해서, 진열대에서 치워지게 되었다는데... .

후일 많은 비평가들은 그의 작품을 ‘레디 메이드(ready made)’ 즉, ‘기성품을 활용한...’으로 평가했으니!

저야말로 그 마르셀 뒤샹에 비견될 수필작가 아닌가요?

 

1. ‘훈민정음 기본자음 오음(五音)에 관해’의 도입부

 

‘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지식에, 그것도 살아있는 지식에 목말라하는 나. 아마도 철이 이제야 드나 보다. 인터넷 검색창에다 내가 평소 궁금해 했던 사항을 ‘검색어’로 입력해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면 웬만한 사항은 친절하게, 속속들이 알려주곤 한다. 그렇게 한 꼬투리 내지 한 꼭지를 잡고 나면, 그 검색어와 연관된 여러 정보를 덤으로 얻는 즐거움까지 자주자주 맛보게 된다. 한마디로, 그것은 희열이다. 전율이다. 해서, 나는 현존(現存)하는 그 숱한 수필작가들 가운데서도 단연 최다작(最多作)의 수필작가의 자리를 차지하는 편이다.

이번엔 또 어떤 신기한 자료를 챙겼냐고? 바로 훈민정음 자음 가운데 기본음이라고 할 수 있는 오음(五音)에 관한 사항이었다. 모르긴 하여도, 그 글을 적은 분은 학자이거나 그 분야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깊이 파고든 분인 것 같다. 미리 밝혀두건대, 원문출처는 ‘DAUM’ 블로그 ‘오두의 한글나라’이다. 편의상, 아래는 내가 그 글을 토대로 재편집하였다. ‘

2. 또 다른 제 작품 가운데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봐’

그 작품도 ‘재편집 내지 재구성’의 냄새가 물씬하지 않아요?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봐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낮에 딴에는 온 정열 다해 ‘농부 수필가가 쓰는 음악 이야기’ 연재수필제6회분 원고를 쓰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휴대전화 벨이 울었다. 표시창에 뜬 번호로, 건 이가 누군지를 단박에 알았다. 그는 지난 직장에서 내가 아꼈던 입사 후배이자 직속부하직원이었다. 그는 평소 말투로 안부를 물어왔다.

“뭣 하는교? 또 글 쓴다고 골방에 앉아 있는교? 나는 지금 ‘거제수(巨濟水’를 받으러 산에 왔는데요.”

그의 전화 덕분에, 나는 잠시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며 봄바람에 눈[目]도 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책상맡으로 돌아와 쓰던 작품을 마저 썼다. 사실 매번 그런 일이 반복되지만, 한 편을 적고 나면 또 뭘 써야 하나 막막해진다. 그러다가 다음 글감을 엉뚱한 데서, 그것도 아주 사소한 데서 낚게 된다. 오늘밤에는 낮에 그가 선물해준(?) 글감으로 이야기를 엮느라 밤 내내 말썽 없이 지샐 수 있게 생겼다.

거제수, 그것은 자작나무과(‐科)에 속하는 거제수(巨濟樹),자작나무,사스래나무 등에서 채취하는 물을 일컫는다. 사실 봄철에 나무가 수액(樹液)을 쫙쫙 뽑아 올릴 적에 드릴 등으로 수간(樹幹)을 뚫어, 숫제 그 수액을 강탈하는 행위다. 독자님들께서는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펼쳐가면, 자연보호니 나무사랑이니 하는 쪽으로 몰아갈 거라고 예측할는지 모르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우리가 그러한 상투적이며 결말이 빤히 보이는 글에 얼마나 질렸더냐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는 대학에서 임학(林學)을 전공하였다. 전공과목에는 ‘조림학(造林學)’과 ‘삼림보호학(森林保護學)’도 있었지만, ‘목재이용학(木材利用學)’도 엄연히 있었다는 사실. 종국적으로 우리네가 이용하기 위해 숲을 가꾼다는 뜻이다. 그러니 거제수가 되었든, 고로쇠물이 되었든 몸에 이롭다면 뽑아 먹는 게 옳다. 그처럼 모든 영광은 인간이 차지해야 한다. 그렇게 차지한 영광을 끝내는 하느님께 모두 돌려드려야겠지만. 내가 신앙인인 까닭에 이런 생각까지 덧보탠다.

거제수, ‘巨濟水(거제수)’라고도 쓰지만,’拒災水(거재수)’라고도 쓴다. 전자(前者)는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게 자라는 나무인데 거기서 얻은 수액’이란 뜻을 지녔다. 후자(後者)는 ‘재앙을 물리쳐 주는 수액’이란 뜻을 지녔다. 후자 쪽에 좀 더 가까운 다른 말로는 ‘곡우물(穀雨‐)’도 있다. 대체로, 절기상 곡우 전후의 거제수가 약효도 뛰어나고 그 양(量)도 많은 것으로 되어 있다. 3월말에서 4월 10일까지가 채취적기로 되어 있다. 이 거제수는 고로쇠물보다 빼어난 물로도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수액의 황제’로도 통한다. 혈액을 맑게 하고, 신진대사를 활성화 하며,염증이나 상처를 낫게 하고, 아토피를 낫게 하며, 이뇨작용을 하고, 신경통을 완화하며, 위장병을 다스리는 등 갖가지 효능이 있다고 전한다. 그러니 구하지 못해서 문제이지 마셔볼 만한 물임에 틀림없다. 거제수는 온도에 대단히 민감하다고 한다. 처음엔 아무런 맛이 없다가, 조금 상하면 단맛이 조금 생겨나고, 조금 더 상하면 연한 흰색을 띠며 더 달다고 하니 독자님들께서도 이 점 참고하실 만하다.

본디 먹는 이야기만 하면 사람이 추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번엔 자작나무에 관해 다른 이야기도 해보아야겠다. 왜 ‘자작’이란 이름이 붙었느냐고? 그 껍질이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렇다면 하필이면 불과 관련시켜 나무이름을 붙인 데는 무슨 곡절이 있다는 뜻이 아닌가. 사실 내가 하고많은 제목을 다 두고서 ‘자작나무 껍질을 태워 봐’ 하고 붙인 이유도 있었을 게 아닌가. 자작나무는 왁스물질, 즉 밀랍성분이 많은 나무다. 특히 창호지처럼 하얗게, 얇게 벗겨지는 껍질에는 왁스성분이 많다. 그러기에 설령 물에 젖었을지라도 불에 잘 탄다. 그래서 옛날옛적에 호롱불이나 양촛불 대신 자작나무껍질로 불을 밝혔단다. 그렇게 촛불을 밝히는 것을 상서로운 일로 여겨, 고대 중국에서는 귀중한 행사 때에 자주 행했다고 전한다. 우리네가 결혼식을 일컬어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그것이 곧 자작나무껍질로 불을 밝힌다는 의미란다. 물론 이때 쓰는 ‘華‐‘는 ‘자작나무’를 일컫는다. ‘樺‐‘와 동자(同字)이니 ‘樺燭’으로 써도 된다는 사실. 공교롭게도, 자작나무의 꽃말조차 ‘당신을 기다립니다.’다. 또 독자님들께 덤으로 알려드릴 게 있다. 그 하나는 첫날밤의 신혼방을 일컬어 ‘화촉동방(華燭洞房)’이라고 한다는 거. 또 하나는 중국의 시 가운데 ‘손님 돌아가는 길에 자작나무에 불을 붙여 길을 밝혔는데 그 향이 좋다’는 구절이 든 시도 있다는 거.

독자님들께서도 자작나무를 생각하면 이내 핀란드라는 나라가 떠오를것이다. 워낙 텔레비전 등에서 광고를 많이 해서. 바로 ‘자일리톨’이다. 핀란드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당분은 칼로리가 없고, 산(酸)을 만들지 않아 치아를 망가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걸로 껌을 만든 게 우리가 즐겨 씹는 자일리톨껌이 아니던가. 여기서 또 하나의 덤을 드려야겠다. 캐나다의 국기 문양은? 바로 단풍 잎 한 장이다. 그 나라에는 사탕단풍이 있고, 그들은 그 단풍나무에서 사탕을 추출하여 시럽을 만들어 즐긴다. 그러기에 국기에조차 그 단풍나무 문양을 새겨넣었다. 이처럼 나무는 인간한테 이로움만 준다는 것도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시길.

나는 자작나무를 생각할 적마다 러시아도 떠올린다. 영화 ‘의사 지바고’에서 끝없이 펼쳐진 설원(雪原)과 거기 늠름하게 섰던 나무들. 그게 바로 자작나무숲이었다. 영화 속 ‘라라’의 모습과 그 백옥(白玉) 같던 자작나무의 수피(樹皮)가 왜 그리도 자주자주 겹쳐지던지. 그 얼음궁전(?) 둘레에 섰던 자작나무들. 사실 영화 ‘차이코프스키’에도 그러한 경치가 배경이라는데, 아쉽게도 그 영화는 여태 본 적 없다. 자작나무는 추위를 잘 견디는 강한 수종이다. 그리고 수피가 그렇게 고울 수가 없다. 그래서 요즘 들어 조경수로도 대접을 톡톡히 받는 나무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 국어교과서에서 만난 정비석의 수필, ‘산정무한(山情無限)’. 정비석 선생은 그 수피 고움으로 자작나무를 수중공주(樹中公主)로까지 묘사했던 걸 여태 기억한다. 정말 피부가 하얗디하얀 공주 같다. 그래서일까, ‘원종호’라는 사진작가는 저 강원도 횡성 어느 산자락에다 20여 년 전 자작나무 12,000여 그루 심고, 그 숲속에다 ‘미술관 자작나무숲’이란 미술관을 짓고 사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게 되었다. 그는 온 데다 자작나무 사진으로만 장식해두기까지 하였다.

자작나무와 관련해서 제법 귀중한 사실을 하나 빼먹을 뻔했다. 위에서도 언뜻 소개하였지만, 왁스 성분 등으로 하여 방부와 방습이 잘된다고 한다. 게다가 재질이 아주 단단하다고 한다. 경주 천마총 출토 그림의 재료를 조사해본즉,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종이로 밝혀졌단다. 팔만대장경의 재료도 자작나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 수목학을 강의했던 나의 은사님은 견해를 달리 했다. 팔만대장경에 쓰인 나무는 오리나무였다고. 어쨌든, 자작나무의 견고함과 아름다움과 내구성만은 확인된 셈이다. 많은 이들이 자작나무 가구를 꼽고 있다는 것도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뒷받침한다.

이젠 자작나무에 관해서 내가 알고 지내는 사실을 얼추 털어낸 듯하다.그러니 슬슬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세상에 어느 나무든 우리네 인간들한테 이로움을 주지 않는 나무가 없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존재가 나무다. 그런 점에서도 애당초부터 수필작가가 될 생각이었던 내가 다른 학문이 아닌 임학을 익힌 게 여간 자랑스럽지 않다. 나무는 천하의 황제들도 숭앙했다는 사실. 동서고금 황제들은 왕관과 혁대 등에다 나무 문양과 나뭇잎 문양으로 장식해 왔으니까. 이 무슨 뚱딴지 같은 말이냐고? 왕관에는 ‘날 出’이 위아래로 이어지는데 그것이 바로 ‘가지 달린 나무’를 나타낸다고 한다. 또, 왕관과 혁대 등에 팔랑대는 ‘영락(瓔珞)’은 영락(零落)없이 나뭇잎이라는 거. 한편, 아라비아의 문양으로 일컬어지는 ‘아라베스크’마저도 이제야 곰곰 생각해보니 덩굴 즉, 나뭇잎이었다는 것을. 그러니 거기서 더 보태서 이야기할 게 뭣 있냐고!

‘올해는 자작나무 껍질을 잔뜩 벗겨 말려 볼까? 그리고 그것을 비벼 언제 한번 불을 환히 밝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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