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작

수레바퀴를 갈고

윤근택 2015. 1. 17. 00:51

 

            

                                        수레바퀴를 갈고 

                                                 윤요셉 (수필가/수필평론가)

 

      내 농장에서 쓰는 손수레의 한쪽 바퀴가 벌써 오래전부터 또 펑크가 나 있는 등 망가져 있었음에도 여태 미련스레 그대로 부리다가, 오늘에야 시내 바퀴전문가게에서 고작 일만 원에 새것으로 사와서 갈았다. 짐을 싣고 시험삼아 밀어보니, 한결 부드럽고 편하다. 왜 진작에 바퀴를 갈지 않았던고?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문득 세상의 모든 수레바퀴를 새삼 생각하게 된다. 자동차바퀴·손수레바퀴·자전거바퀴·도르래 등등. 인원과 물자의 수송에 필수불가결한 게 바퀴 아닌가. 이처럼 편리한 도구를 우리네 인류조상들은 어떻게 고안해낼 수 있었을까? 맨 처음, 산 위에서 굴러 내리는 바윗돌을 보고서 바퀴를 고안했을지도 모른다. 모난 바윗돌보다는 둥그스름한 바윗돌일수록 데굴데굴 굴러 멀리 내려가는 걸 보고서, 그걸 응용해서 바퀴를 만들지 않았을까? 아니면, 통나무가 산비탈 아래로 굴러가는 걸 보고 응용했을 수도 있고. 문헌을 살펴본즉,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바퀴는 통나무에서 응용된 것으로, 기원전 3500년 경으로 추정되는 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 출토되었다는데, 둥근 통나무를 잘라 둥글게 만든 원판바퀴란다. 그 이후 기원 전 2500년경에 이르러서는 널빤지를 잘라 맞추어 가장자리를 둥글게 다듬고, 여기에다 2장 가로판을 덧대 만든 합판바퀴를 썼단다. 이 합판바퀴는 바퀴둘레에다 가죽을 덧대고 구리못으로 박은 게 특징이란다. 그 가죽이야말로 타이어의 원조(元祖)인 셈이다. 또 그렇듯 합판을 어긋어긋 붙인 것이 바로 바퀴살의 기원인 셈이다.

     어쨌든, 그렇게 고안된 수레바퀴는 더 이상 인류의 생활에 없어서는 아니 될 존재가 되어왔을 것이다. []의 잔등에 올라타거나 싣는 대신, 차츰 말이 끄는 수레를 이용하게 되었을 것은 뻔하고. 수레바퀴의 바퀴둘레는 가급적 쉬이 닳지 않는 재질로 덧붙이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해서, 쇠판으로, 통고무로, 타이어로 더욱더욱 발전해 나왔을 것이다. 다음은, ‘바퀴살에 관한 사항이다. 두꺼운 원판을 그대로 쓰자니, 그 무게로 인하여 짐을 많이 싣지 못하거나 속도를 많이 내지 못하게 되니까, 새로 고안된 것이 바로 바퀴살아니었겠는가. 따지고 보면, 그 많은 수레바퀴는 예외 없이 차축(車軸)을 중심으로 두 개의 동심원(同心圓)을 지닌다. 그 두 개의 동심원은, 차축에 끼워지는 안쪽 작디작은 원과 땅 등에 닿아 구르는 바깥쪽 큰 원 즉 바퀴둘레’. 이들 두 동심원을 한 몸체로 만들어주는 게 대개 바퀴살이다. 자전거의 경우, 바퀴살은 가는[] 철사로 되어 있음에도 그것들이 하중을 견디어, 부러지거나 휘는 일이 거의 없다. 하여, ‘(rim)’ 내지 (wheel)’이 일그러지는 일도 거의 없다. 지난날 중학교시절, 물리시간에 선생님은 그 원리를 쉽게 설명해주었다.

     그 많은 바퀴살이 아주 균제(均齊)롭게 자기 자리를 지키기에 지탱 가능하며, 바퀴 아래로 누르는 힘(하중)이 아닌, 위로 당기는 힘(인장력)이 더 작용하기에 온전히 지탱해.”

      지금 생각해보아도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요컨대, 육중한 하중에도 자전거 바퀴가 폭삭 주저앉지 않는 것은, 아래쪽 바퀴살의 버팀보다는 위쪽 바퀴살의 당김덕분이다. 달리 말해, 대척점에 있는 바퀴살이 휠 양이면 반대쪽에서 당겨준다는 뜻이다. 수레바퀴를 온전하게 수레바퀴 구실을 하도록 하는 게 바퀴살이라는 거. 바퀴살들이 보여주는 합력(合力)힘의 분산이 우리네 사회생활의 귀중한 교훈이기까지 하다.

      수레바퀴에 관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법륜(法輪)’이다. 법륜은 고대 인도 사회의 무기였던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윤보(輪寶)’, 달마 차크랴(dharma-cakra ; 달마의 물레)’로부터 출발한다. 전륜성왕이란, 자신의 전차바퀴를 어느 곳으로든 굴릴 수 있는, 즉 어디를 가건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통치자를 이른다. 부처님이야말로 교법(敎法)의 수레바퀴를 굴려 중생의 모든 번뇌를 굴복시키고 앞으로나아간다고 한다. 기실, 중생의 환상과 미신을 부수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그걸 두고, ‘달마 차크랴에 비유하여 법륜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느 한 사람,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모든 곳에서 중생을 교화한다고 보면 된다. 불가(佛家)에서 쓰이는 법륜의 문양은 8개의 수레바퀴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8정도(八正道)’를 상징한단다. 그러한 법륜은, 인도 최초 통일국가를 이룬 마우리아제국(공작제국;공작새 조련사한테 팔려갔던 찬드라굽타가 시조임.)의 손자이자 제3대왕인 아소카왕에 이르면,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된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아소카왕은 불교를 그 어느 왕보다 숭상하였다. 그래서인지아소카왕사자상에는 법륜이 새겨져 있고, 인도인들은 부처님의 법륜이란 말보다는 아소카의 법륜이란 말을 더 즐겨 쓴다는 거 아닌가. 그러한 연유로 인도는 영국에서 독립하자, 아소카왕사자상에 새겨진 그 법륜을 본따서 국기(國旗) 문양을 만들게 된다. 그것은 ()의 윤회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 국기 속 수레바퀴는 24개의 바퀴살을 지니고 있다. 하루 24시간의 의미도 나타낸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보면, 24절기에도 해당하는 것이겠고. 그랬던 국기 속 법륜은, 19477, 간디 수상이 입법회의에 부쳐 청색 문장(紋章)으로 바꾸게 되었단다. 아무튼, 현재 인도의 국기에는 아소카의 법의 수레바퀴가 들어있다.

      수레바퀴와 관련해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운명의 수레바퀴(Rota Fortunae)’. 여러 가지 상황에 비유적으로 두루 쓰이는 이 말. 이 말은,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다람쥐 쳇바퀴 돌 듯’,‘물레나 바퀴는 쓸쓰리 쓰르르 흥겹게 돌아도 사람의 한 세상 시름에 돈다오.’ 등을 서양식으로 아우르는 말이다. ‘Rota Fortunae(운명의 수레바퀴)’ 의 기원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행운을 뜻하는 ’fortune‘이 여기서 유래한다.). 그녀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관장하면서 그것을 영원히 돌리고 있다는데, 바퀴가 부단히 굴러가면서 사람 또한 다음 단계로 전전(輾轉)‘하게 된다니... . 운명의 수레바퀴를 가시적(可視的)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있으니, 1)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란 책에 실린 삽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 그림을 보게 되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는 수레바퀴 한가운데에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자리한다. 바퀴테두리에는 네 명의 인간이 12,3,6,9시 방향에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9시 방향에는 열심히 12시 방향을 향해 기어오르는 인간 모습, 12시 방향에는 열심히 바퀴를 기어올라 영광스럽게 왕관을 반듯하게 쓰고 권위의 상징인 지팡이를 짚고 권좌에 앉은 인간 모습, 3시 방향에는 거꾸로 떨어지면서 머리에 썼던 왕관마저 벗기고 마는 인간 모습, 그리고 6시 방향에는 수레바퀴에 깔린 채 신음하며 위를 쳐다보는 인간 모습. 그 그림은 운명의 4계절 즉, ·여름·가을·겨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 그림은 시지프스의 신화‘, 새옹지마의 고사, ’쳇바퀴 속 다람쥐등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나아가서, 호롱불 아래서 내 어머니가 밤 내내 잣던 물레를 떠올리게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서양문학에서는 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기초로 한 작품이나 작품 속 대사도 많음을 기억해낸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Unterm Rat(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주인공은, “지치면 안 돼. 수레바퀴 밑에 깔릴지도 모르니까!”라고 독백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운명의 수레바퀴살을 부수어야 한다는 구절이 있다.

      , 위와 같이 너절하게 펼쳐둔 나의 이야기를 규합(糾合)할 단계가 된 듯하다. 우리네 인류조상들은 썰매 다음에 수레바퀴를 고안해내어 실생활에 널리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자 더욱 윤택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네 조상들은 당신들이 고안해서 설치한 수레바퀴가 쉼 없이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온갖 생각· 사색· 철학 등을 감아올렸던 것도 사실이다. 수레바퀴 또한 여타 물체와 마찬가지로 관성(慣性)을 지녔기에, 멈추어진 상태에서는 계속 멈추어지기를, 돌고 있는 상태에서는 계속 돌기를 원할 것이다. 여태껏 내 농장 한 모퉁이에 내팽개쳐 두었던 손수레의 펑크 난 수레바퀴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레 자체가 녹슬어가든 말든 멈추어 서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어코 새 수레바퀴를 갈았다. 아무래도 수레바퀴 본연의 모습은 뱅글뱅글 도는 데 있을 성싶어 그리 하였다. 흔히들 역사의 수레바퀴는 회귀 내지 순환 내지 반복이이라고 한다. 하지만, 녹슨 채 한 자리에 내팽개치지 않은 한, 구르기만 한다면 어찌 되었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믿음을 새삼 가지게 된다. 이 글을 적는 동안 이 점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이것은 커다란 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어떤 수레바퀴든 축()에서 빠져 달아나거나 펑크가 나면, 그 길로 끝이라는 점도 새삼깨닫게 된다. 그 바퀴살이 절대적으로 가지런해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말 하면 잔소리일 테고.

 

        1)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일명 보이른의 노래’. 젊은 성직자들이 라틴어와, 일부는 독일어로 쓴 중세기 세속적 시집이며 관능적 연애시, 술의  노래, 반교회적 풍자시로 구성되어 있다. 베네딕트보이에른 수도원에서 발견된 13세기말 수사본(手寫本). 후일 카를 오르프(Carl Orff,1895~1982)가 동일 이름의곡을 적었다. 그 가운데 ‘O Fortuna(,운명의 여신이여)’는 유명하다.

     아래는 하이퍼 링크되어, 음악 들을 수 있다.

       Carmina burana-Carl Orff(카르미나 부라나-카를 오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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